첨예한 사고(思考) 일지
의사결정의 과정을 해부하다
지난 글에서, 사람들은 대개 순간순간마다 삶의 지형의 파악하고 결정 내리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의 의사결정은 무엇에 의존하는가? 대강 표현하면 현재 시점에서의 내가 바로 결정을 내리는 주체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의 나는 과거의 경험들과 성기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내가 겪어온 것들의 총체가 구성하는 현재의 '나'가 결정을 내린다.
밀가루 반죽의 은유는 삶과 관련한 여러 주제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분석의 틀이다. 의사결정의 과정에 적용해 보면, 현재 밀가루 반죽의 표면 위에서의 위치(좌표)와 그 좌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궤적(trajectory)이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변수인 셈이다.
필자는 이 변수의 개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압축적 논의를 하고자 한다. 만약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변수의 개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우리의 판단 과정은 간소화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오컴의 면도날을 참고하길 바란다).
궤적과 현재 위치의 관계
현재 내 삶의 위치는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의 궤적에 대한 정보를 내포하는가? 부분적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리매김을 인식함으로써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거쳐 왔을 합당한 궤적들을 추론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밀가루 표면에 서로 다른 움푹 들어간 지점이 있을 때, 두 지점 사이를 잇는 수많은 경로들 중 그럴듯한(plausible)한 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경로의 절대적인 수는 무한하지만, 그중에서도 개미가 물리적으로 지나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는 경로들을 제거하다 보면 몇 가지 그럴듯한 후보를 추리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의 경로를 단정 짓지는 못한다(unidentifiable).
따라서 이상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본인의 모든 역사를 고려해야 하는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현시점에서의 상황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효율과 정확성 사이에서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사람들은 현시점과 아주 가까운 과거 혹은 기억할 만한 일부 과거의 단편(snapshot)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내부적 규칙을 갖고 있다. 이는 효율과 정확성을 모두 챙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최적화된 결과이리라.
반대로 아주 효율적인 사람은 각 시점마다 의사결정을 내린다. 과거의 상황은 완벽하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사람은 순간순간마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고 끊임없이 전환(pivot)할 것이다. 수학적인 형태로는 거칠게 말하면 마르코프적인(markov process)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바라보는 큰 지향점이 올바르다면 위 세 가지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에 무관하게 국소적인(local) 최적 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다만 그것이 전체 전경에서 보았을 때 거시적인(global) 최적 점인지는 삶의 모든 경로를 탐험해 보지 않은 이상 알기 어렵다. 아마도 이 괴리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중요한 메시지
우리가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교훈은 최종적인 지향점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스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지점은 어디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순간순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해 비교적 덜 의존적으로 최적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지향점을 분명하게 설정하더라도 현재 내가 도달한 위치가 국소(local)적인 최적점인지, 거시적인 전경에서 가장 최적인(global) 점인지 구분하는 것은 대개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국소 최적점의 마치 요람 같은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멘텀과 같은 의지이다.
다음 글에서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겠지만, 모멘텀이 큰 사람은 마치 구슬을 빠르게 굴리는 것과 같아서 국소 최적점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비슷하게 국소 최적점에 일시적으로 갇혔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동력을 생산하다 보면 벗어날 개연성이 높아진다. 이는 거시적인 최적점(global optima)의 인식불가능성(unidentifiability)에 대한 실망스러운 결과 속에서도 인간 삶의 의지가 역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