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사고(事故) 일지
지난 세 편의 글은 밀가루 반죽 위에서 최적점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 논의는 대체로 공간(spatial)적인 측면으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길 것이다: 삶의 궤적은 시간적인 면에서 어떻게 구체화(specify)되어야 하는가?
시간의 측면에서
바로 이전 글의 논의를 이어가 보면, 삶의 궤적은 두 가지 시간과 관련한 파라미터로 구체화되는 면이 있다. 첫째는 전환(transition)을 얼마나 자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며, 둘째는 전환한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혹자는 오랜 시간 고민하여 결단을 내린 다음에는 방향을 잘 바꾸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빠르게 결단을 내리되 짧은 간격으로 그 방향성을 재검토하며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잠깐 곁가지의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의 주위에서는 위 두 가지 성향의 극단에 있는 사례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본인이 내린 결정을 자책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그 방향으로 나아감에 헌신(dedicate)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끊임없이 자기 반성하며 시시각각마다 방향키를 고쳐 잡는 사람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둘 다 장단이 있고, 현대 사회에서 적절하게 피벗(pivot)하는 것과 오랫동안 확신을 가지는 일에 헌신하는 것 둘 다 미덕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다시 기존의 논의로 돌아와서 전환한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나아갈지는 삶의 궤적 상에서의 속도를 결정짓는 거의 유일한 변수이다. 그리고 이는 방향 전환과는 독립적으로 동작한다. 다시 말해 삶의 속도가 빠른 사람은 방향 전환을 끊임없이 할 수도 있지만, 아주 깊이 고민한 방향으로 빠르고 오랫동안 나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빠르게 나아가는 것에 대한 논의는, 방향 전환의 결단 내리는 빈도에 대한 논의와 차별화되는 면이 있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 미덕은 아니기 때문이다.
빨리 가기 전략
쇼트트랙 경기에서 김동성 선수의 빨리 가기 전략(초반에 스퍼트를 내어 1바퀴 이상을 추월해 버린 것)을 연상해 보라. 삶은 쇼트트랙 서킷과 두 가지 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첫째는 삶에는 결승선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은 같은 서킷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삶의 모양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삶의 기하학 (3), 비교의 무용함에 대한 논의를 참고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빠른 속도는 무용한가? 그렇지 않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그 순간에 국소적인 최적점에서 허우적대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얕은 웅덩이를 벗어나 더 나은 최적점으로 나아갈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도 동등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속도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속도에 변주를 주는 것은 어디에 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개인의 철학 그 자체라기보다는 최적화를 위한 공학의 영역에 가깝다. 최적화 또한 중요한 미덕이기에, 인간 삶에서의 의지가 갖는 힘은 이때 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궤적 그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를 보인다면 그 또한 몹시 존경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