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하학 (6): 비가역적 삶의 위안

첨예한 사고(思考) 일지

by Molly
비가역성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디쯤에 있었을까?"


이 질문은 거의 반사적이다. 발을 내디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신이 서 있는 곳의 기울기가 예상보다 너무 가팔라 당황스러울 때, 혹은 주위의 풍경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거를 탐색한다. 그러나 삶의 아주 국소적인 부분에서조차 우리는 완전히 동등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과정들은 대개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다.


가역적인 과정은 대체로 이론적인 이상이다. 현실에서의 모든 과정은 작은 마찰, 미세한 손실, 불가피한 흔적을 남기며 진행된다. 삶의 과정도 비슷하다; 선택은 기록을 남기고,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이미 표면은 약간 변형되어 그 변화는 우리의 감각을 왜곡한다. 그래서 과거로의 회귀는 흔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선택지이지만 기하학적으로 불가한 경로에 가깝다.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표면의 조건으로 발생하는 움직임의 규칙이 이미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잘못 발을 디뎠을 때(위의 논의를 고려하면 '잘못'이라기보다도, 발을 디뎠는데 자신에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를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되돌아가는 길은 없지만, 다시 선택할 기회는 있다.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순간을 다시 맞을 수 없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비슷한 순간은 또 찾아온다. 그때 이전의 경험이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전의 결정을 복원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감각을 토대로 새로운 결정 규칙을 다르게 정의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미래는 과거를 갱신하려는 시도이지, 단순히 복구하는 과정이 아니다.


두 가지 경로

삶의 표면 위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경로가 있다. 하나는 발산하는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순환하는 경로이다. 발산하는 경로는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민감한 궤적이다. 선택 하나가 장기적으로 구조를 바꾸고, 그 선택은 일종의 초기조건이 된다. 이러한 발산은 우리 삶의 비가역성에 크게 기여한다. 우리는 매 선택마다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며, 우리가 발산적인 경로를 걷는다는 것은 완벽히 한 점으로 수렴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반면 순환하는 경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진을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같은 감정의 골짜기를 돌고,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하학적으로 순환은 단순한 정체가 아니다. 나선형 궤적처럼, 순환은 종종 미세한 상승 혹은 미세한 하강을 동반한다.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높이에 도달해 있다. 만약 삶의 많은 국면이 순환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내부 구조의 반복적인 형태를 체험해 가는 과정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반복은 결함을 드러내고, 이는 우리에게 미세한 수정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두 경로를 구분하지 못할 때 생긴다. 발산하는 경로를 순환처럼 오해하면, 우리는 변화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 반대로 반복적인 국면을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실패처럼 느끼면, 우리는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갖게 된다. 삶은 둘이 섞여 있다. 어떤 선택은 발산적이고 어떤 순간은 순환적이다. 놀랍게도 복잡한 궤적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원대한 미래 전망이 아니라, 현재의 국소적 정보이다.


현재에 대한 찬미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과거를 후회하지 말라"는 말은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과거를 도로로 삼아 미래를 달릴 수 없다는 한계에 가깝다.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 역시 미래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미래는 현재의 국소적 기울기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지금 이 순간의 미세한 방향이다. 과거의 계곡이 어떠했는지, 미래의 산맥이 얼마나 험한지보다, 지금 발끝의 기울기가 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삶의 기하학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찬미와도 같다. 과거는 수정할 수 없다; 삶의 기하학적 형태는 계속 변화한다. 우리가 매일 조금씩 바꿀 수 있는 결정과 선택들이 전체 지형을 변화시키는 근원이다. 이 점에서 보면 미래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여전히 변화할 수 있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것이 되돌릴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