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사고(思考) 일지
평생을 살아가면서 꼭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갈망의 기원인 본인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혹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인지 체계적으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타임라인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몇 살까지는 A를 하고, 그다음에는 B를 하고.. 이는 아주 객관화가 뛰어난 사람의 스스로 동기부여되는(self-motivated) 계획이거나 높은 확률로 부모님의 소망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까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싶다, 언제까지는 취직하고 싶다 등등의 시간적 제약 속에 살아간다.
필자는 편의상 이를 주어진 퀘스트들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삶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피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다. 삶은 한 번 주어지는 것이고, 시간은 너무나 부족하다. 이러한 현실은 부당함이라는 감정까지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부당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시간선 위에 데드라인을 찍어 놓고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리라.
앞서 삶의 궤적을 순간순간의 최적점을 향한 여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맹점이 여기에 있다. 마치 우리가 완벽한 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간의 선택에서 특정한 경로(path)로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약(constraint) 속에 많이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적인 사정으로 바로 취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은 다른 선택들의 기회가 크게 제한된다. 이런 이유에서 삶의 초반부에 우리가 설 수 있다고 믿었던 경로는 대개 무궁무진할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제약들이 구체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경로는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결국 제약 조건들을 준수하며 살아가다 보면 여러 사람들의 궤적은 종종 보편적인 경로의 범위로 수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 의지가 역할할 수 있는 것은, 목표 지점의 설정이다. 결국 자신의 적합도를 적절히 정의하고 이를 최적화하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면, 제약 조건을 준수하면서 돌아가는 우회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표면 속에서 제약은 그 표면을 움푹 들어가게도 하고, 특정 방향으로 경사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어떤 경로로는 물리적으로 접근 불가능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적합도의 정의는 그 지형 위에 우리가 어디에 잠재적인 최적점을 설정할 것인가를 스스로 그리는 작업이다. 제약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을 정할 수 있다면, 표면의 곡률에 순응하면서도 길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삶은 두 가지 힘의 상호작용이다. 하나는 제약이 만드는 압력, 다른 하나는 목표가 만드는 방향성이다. 이제 시간 변수를 추가해 보자. 시간은 종종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마치 뒤에서 우리를 몰아붙이는 외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속도를 조정하는 매개 변수일뿐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속도의 크기보다 방향의 안정성이고, 방향이 잘 정해져 있다면 느리게 가도 도달할 수 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빠르게 가도 금세 미끄러져 내려간다.
삶의 태도는 결국 제약과 방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제약을 없애려 애쓸 필요는 없다. 대부분 제거할 수 없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삶은 성취들의 종합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이것이 시간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이 태도이다. 제약을 인정하되, 방향은 스스로 정한다. 속도에 조급해하지 않고, 기울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면서도,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