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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03. 2019

때로는 솔직함이 관계를 성장시킨다

따분한 23일 차

* 이미지 출처: 영화 <써니>

 

  '나'와 나는 친구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오래된 친구.

   

  그녀와 난 비슷한 취향을 가졌으나,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생각을 품고 산다. 예를 들면 한때 우린 ‘에곤 실레’ 작품을 좋아했다. 잘생겼고 재능이 있었지만, 성공을 위해 연인을 버렸던 화가. 하나는 그를 ‘파격적인 예술가’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를 ‘지독히도 이기적인 인간’으로 분류했다.    


  “예술은 예술로 봐야지”    


  그녀는 설득했지만, 나는 작품이 좋다고, 작가의 삶까지 ‘예술’로 포장하는 건 싫다고 했다. ‘작품이 작가의 전부’라는 것과 ‘작품과 작가의 삶은 별개’라는 것. 돌이켜보면 하나와 나의 관계도 비슷했다.    




  하나가 ‘친구의 일이라면 일단 달려오는 아이’였다면,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일단 내 일을 처리하고 친구를 만나는 아이’였다. 재현이란 친구는 우리를 이렇게 비유했다.     


  “하나는 너무 뜨거운 사람이고, 하루는 너무 차가운 사람이야.”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재현이가 하나에게 빌려 간 30만 원을 15년째 갚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15년 전에 나는 재현이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재현이가 차가운 사람인 것 같았다. 아버지의 부도로 휴학하고,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에게 30만 원을 빌려달라는 건. 가까운 친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부탁은 아니니까.

  어쨌든 하나에게는 재현이와 나를 포함한 다양한 많은 친구가 있었고. 그녀는 어떤 친구에게나 기꺼이 달려갔다.

    

  그러나 늘 밝고 상냥한 하나도 짜증 내고 화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그녀는 나의 ‘약속 취소’ 또는 ‘집에 빨리 갈래’와 같은 반응을 싫어했다. 나도 그럴 때마다 날을 세우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장시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걸 힘들어했다. 기가 빨린다고 할까. 빠르게 피곤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북적북적한 분위기와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이건 20대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한 집에 모여 잠들고. 다음날 해장국을 함께 먹었다. 하지만 나는 택시비가 술값만큼 들더라도, 되도록 집에 갔고, 혼자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그때마다 하나는 내게 괴짜 같다, 이기적이다,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는 말로 비꼬았고. 나는 대꾸 없이 인상을 썼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한 친구는 우리 사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야 니들 꼭 연인 같다!”     


  닦달하는 여자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자. 생각해보니 '연인의 싸움''우리의 싸움'은 좀 닮아있었다.     




  하나에게는 친구가 많았고. 나는 불편한 관계를 질색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이는 진작에 끊어져야 했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니.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하나가 나의 결혼식에서 눈물을 흘렸단 것이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은 그녀를 발견한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는 ‘친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함’이 있긴 했다.  


   학창시절 우린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냈고. 하나는 모두와 친했다. 그녀와는 쉬는 시간에 같이 떠들고. 함께 밥을 먹는 정도의 사이였다. 다만 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나가 우리 동네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둘이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만나, 함께 떡볶이를 먹고, 공원에서 수다를 떨고, 또 어떤 날을 포장마차에서 술도 마셨다. 그러다 보니, 밝고 긍정적으로만 보이던 하나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 매번 더 좁은 곳으로의 이사, 가족의 갈등과 상처, 학업중단을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까지. 지난 3년간 한 번도 털어놓은 적 없던 얘기들이었다. 이상했다. 이 아이는 이런 와중에 왜 맨날 웃는 걸까.    


  “운다고 달라지는 거 없잖아. 난 행복해지고 싶단 말이야.”     


  하나는 자신이 웃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그녀가 보기보다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 내가 힘든 일이 생겨서 울자. 옆에 있던 그녀가 더 크게 울었다. 그 모습을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이번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네가 우니까. 나까지 존나 슬퍼서, 눈물이 막 터진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참 고마웠다.     


  “야! 이 미친 지지배야! 넌 좀 네 일에나 실컷 울어! 맨날 참지 말고!”    


  훗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억이 될 걸 알면서도, 그날 우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며 위로한다는 건. 긴 유치함과 깊은 따뜻함 남는 일이었다. 우린 좋건 나쁘건 ‘큰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먼저 만났고, 전화했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회생활이 시작되자. 서로의 다른 성향이 점차 갈등으로 변했다. 특히 앞서 얘기한 ‘약속 취소’라던가. ‘나 먼저 집에 갈게’와 같은 행동이 그녀의 짜증과 비판으로 이어지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침묵으로 대응하던 나도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나는 이 상황이 점점 불편해졌다. 가까운 곳에서 야근이 많지 않은 회사에 다니는 하나가, 왕복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야근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로 꼬집어 표현하진 않았지만, 은연중에 나는    


  “나 진짜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좀 쉬고 싶단 말이야.”    


  라며 쏘아붙이곤 했다. 그렇게 우린 점점 멀어졌고. 각자 결혼한 후에는 반년을 연락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가 됐다.         

  그리고 지난달, 1년 만에 하나와 만났다. 여러 친구와 함께 말이다.     


  “나는 퇴근하고 오면 많이 늦으니까. 먼저 만나고 있어.”    


  금요일 저녁이었고, 퇴근하고 약속 장소로 가면 저녁 8시가 넘을 게 뻔했다. 직장인인 나를 배려해 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그러나 나로 인해 시간이 늦어지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런 제안을 했다. 그러자

    

  “다 같이 봐야지. 그냥 8시에 봐. 이하루 넌 빠질 생각하지 말고.”    


  또 하나였다. 음성지원이 되는 것도 아닌데, ‘빠질 생각하지 말고’란 문장에서 그녀의 말투가 연상됐다. 그러자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예상대로 모임 날 하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꼭 이러더라. 너만 남편 있고, 너만 바쁘고, 너만 피곤한 거 아니야!”    


  남편과 귀가 시간을 정해서 11시쯤 가겠다는 내게, 한 말이다. 나는 그 시기 이사 준비와 잦은 야근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솔직해졌다. 아주 차분하게.     


  “하나야. 난 네가 이럴 때마다, 좀 불편해. 나도 만나서 이렇게 대화하는 거 즐겁고 좋아. 그런데 나는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게 힘들고. 남편과의 약속도 중요해.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다음 모임에 나오는 것도 고민하게 될 것 같아.”    


  너무 솔직해서 어쩌면, 이제 그녀와의 친구사이는 완전히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런데 그녀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미안해. 불편할 정도로 마음이 그런지 몰랐어. 나는 네가 친구들 만나는 일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에 그랬던 건데, 네 마음이 불편했다면, 내가 미안해. 그런데 나는 오늘 너 만나려고. 친정엄마한테 아이까지 맡기고 왔거든. 그래서 그랬어.”    


  조곤조곤한 말투로 ‘미안하다’라니. 따져보니 이런 대화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비꼬는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뜻밖의 모습이었다. 잠시 당황한 나는     


  “너는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뭘 나한테까지 그렇게 신경 쓰고 그래.”    


  라는 엉뚱한 말을 뱉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래. 너니까 이렇게까지 하고 나온 거야. 너니까.”     


  라며 이상한 고백을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말에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 감정이 함께 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었다.    




  나는 그날 남편과의 약속대로 11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에 오는 내내 지난 몇 년간 내게 불편한 친구였던 하나에 대해 떠올려봤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이다. 어쩌면 ‘비밀을 공유하는 특별한 사이’와 ‘솔직한 사이는 전혀 다른 '인간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관계라고 투명한 건 아니었다. 진짜 투명한 관계는,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고 차분하게 전달하고. 그 솔직함이 좋건 나쁘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주고받는 관계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한 번씩 냉정하게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는 관계가 ‘솔직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하나와 나는 서로가 특별했지만, 솔직하지 못한 관계였는지도 모른다.     


  그 모임이 있고 얼마 후, 나는 오랜만에 하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여보세요”하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사과했다.    


  “나도 미안해”    


  하나가 깔깔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웃더니. 이런 식으로 내 사과를 받아줬다.     


  “야, 근데 너 진짜 어떻게 지냈어? 잘 지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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