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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31. 2019

결혼, 싸움이 시작되다 (1)

숙취와 립글로스, 누가 더 잘못한 걸까

*이미지 출처: 드라마 <아는 와이프>



  1월에 결혼했다. 포근한 봄을 피해 한겨울에 식을 올리기로 한 건. 순전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해야 할 결혼, 성수기를 피하면 조금 더 싸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전략은 실패했다. 시댁이 있는 부산의 예식장은 겨울에도 생각만큼 저렴하지 않았고. 고심 끝에 선택한 예식장은 다른 곳보다 저렴한 대신, 다른 곳보다 대여시간이 야박했다. 덕분에 우리의 예식은 2배 속도로 진행됐다. 뭐든지 빨리빨리. 오죽하면 결혼식이 끝난 후에 “휴, 드디어 해치웠네”라는 말이 신부 입에서 걸걸하게 터져 나왔을까.


  예식과 폐백을 끝내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은 두 개의 식장에서 30분 간격으로 결혼을 끝낸 커플들의 손님들로,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덕분에 식을 마친 커플들은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빼고 하객을 찾으러 다녔고. 오다가다 마주치는 같은 처지의 신랑 신부 눈에는, 우리처럼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결혼식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만 초대하여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처음에 양가 부모님께 이런 얘기를 꺼내자. 각각     


  “내가 뿌린 축의금이 얼만데?”

  “내 손님들은 어쩌라고?”    


  와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놈에 축의금 회수와 얼굴도장 찍기. 어휴. 이런 의미 없는 결혼식을 할 바에는 그냥 둘이 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틀에 박힌 결혼식을 선택했다.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건. 그도 나도 결혼식에 큰 의미를 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여느 커플들과 달리 결혼식에 대한 의견 대립이나 다툼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하고 즐거웠다.    




  후다닥 결혼식을 끝내고 예식장을 빠져나오자. 남편 친구가 예약해 준 BMW 오픈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식에 대한 낭만이 없던 것과 달리, 줄곧 오픈카에 대해 상상했었다. 언젠가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오픈카를 타고 달리고 싶었다. 그 장소로 부산을 떠올린 적은 없지만, 나의 상상과 부합되는 조건을 지닌 도시였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상상 속의 계절이 겨울이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눈 대신 칼바람이 성행하는 부산이라니. 이렇게 나의 위시리스트가 이뤄질 줄은 몰랐다.


  남편과 나는 한복을 입고 오픈카에 올랐다. 묵직한 저음을 내며 시동이 켜졌다. 자동차 키만 꽂으면 동네 떠나가라 징징거리던 남편의 소나타 3과는 달랐다. 부드럽게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이제 우리의 앞날처럼 시원하게 달릴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좋은 차는 소나타 3보다도 속력을 내지 못했다. 하필이면 도로로 나간 시간이 저녁 6시였다. 이 시간 센텀과 해운대 주변 도로는 서울 도심의 정체와 맞먹을 정도로, 꽉 막혀있었다. 나, 이거 참. 덕분에 칼바람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급속 냉각을 한 듯. 순식간에 얼굴이 얼어버렸다.


  훌쩍훌쩍. 얼굴이 얼고 손이 빨갛게 마비가 되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내 가방에는 휴지는커녕 종이 한 장이 없었다. 축의금으로 들어온 지폐가 보였다.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돈 대신 인중을 포기하기로 한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인중을 책임졌던 핑크 베이지 파운데이션이 지워졌다. 그때였다. 컹컹. 남편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화장을 한 남편의 얼굴, 아니 인중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치명적인 오타가 있는 광고 문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했다. 이건 광고가 아닌 얼굴이었고. 우린 오늘 결혼을 했으니까. 그러나 우린 이런 와중에도 웃음이 터졌다.    


  “으하하. 오빠 인중 봐요.”

  “크크큭. 하루 씨만 그런 게 아니네요?”

  “근데 우린 진짜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다들 결혼 준비하면서 많이 싸운다는데, 우린 이렇게 잘 끝냈잖아요.”  


  이 상황마저 행복해서 키득거리던 우린 예상하지 못했다. 48시간 뒤부터 우리가 싸우게 될 거란 사실을. 그것도 먼 이국땅에서 치열하게 싸우게 될거란 사실을 말이다.    




  신혼여행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예상보다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뛰고 또 뛰었다. 전날 남편은 오픈카로 드라이브를 마친 후,  친구들을 만났다. 그는 축하해줘서 고맙다며, 친구들이 주는 모든 술을 받아마셨다. 소주 반 병 이상 마시면 취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초장부터 소주 1병을 마셨고, 자리를 일어날 때쯤에는 소주 3병을 비워냈다. 불안했다. 술병 나서 다음날 신혼여행을 못 갈 뻔했다는 친구들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트콤의 결정적인 장면을 보는 것처럼 웃어댔다. 내겐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것이다.


  비행기 표를 발급받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속상했다. 자꾸만 출국장으로 시선이 쏠렸다. 면세점에서 부모님 선물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계속 “화장실 좀”, “담배 좀” 하면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숙취였다. 이해하려 했지만 심기가 불편했다. 그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혼자 배낭 두 개와 캐리어 두 개를 옮겼다. 하필이면,앞뒤로 찰싹 붙어 있는 커플들 뿐이었다. 1박 2일 여행을 떠날 때조차 PPT로 계획표를 만들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걸까. 남편을 바라보는 눈에 점점 가늘고 매섭게 변했다.찌릿. 찍.


  그리다 터질 게 터져버렸다.


  “나 딴 건 몰라도 입*** 립글로스는 사야 한다니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탑승장으로 가자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렸다. 나는 면세점에 가야 했다. 부모님 선물은 포기했지만, 립글로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평소 화장을 잘 안 하는 대 립글로스는 꼭 발랐다. 내가 나를 꾸미는 건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배낭여행이라 할지라도. 립글로스는 꼭 있어야 했다. 게다가 가방에는 마지막 날 선상 레스토랑에 입고 갈 원피스가 있었다. 더욱더 늘 쓰던 그 브랜드의 그 색상의 립글로스가 없어선 안 됐다.


  “비행기 놓치면 어쩌려고요?”    


  그의 표정과 말투는 비행기를 놓치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것 같았다. 연애할 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비행기 탑승까지 20분 정도의 여유 있었고. 이런 논쟁이 아니라면, 립글로스 하나쯤은 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홀로 캐리어와 배낭을 옮기던 내 모습과, 전날 그만 마시라고 해도 꾸역꾸역 주는 술을  받아마신 남편의 모습이, 분할 화면으로 그려졌다. 울컥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사지 말라고?”    


  툭 하고 튀어나왔다. 반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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