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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y 14. 2018

금요일, 결혼하길 잘했다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 - 18

 

“오늘 퇴근하고 회식이나 할까? 다들 약속 없지?”    

 

   ….    

 

 “전 약속 있는데요.”

  “누구랑?”

  “금요일마다 남편이랑 약속 있어요.”     

  

  이렇게 대답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6시 31분. 휴대폰을 확인했다. 역시나 남편에게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나 출발했어. 우리 오늘 뭐 먹을까?” 




  금요일은 무조건 같이 밥 먹자,라고 남편과 약속한 적은 없다. 그냥 통한 것 같다. 평일에는 함께 밥 먹을 시간이 없으니, 금요일 저녁은 어떻게든 남편(아내)과 밥을 먹어야겠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약속을 잡지 말자. 이것 또한 협의한 적은 없으나. 각자가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주 금요일은 우리 ‘데이트 날’이 됐다.    
   

  “부부가 밥 먹는 게 무슨 데이트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는 마주 앉아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평화가 곧 데이트다. 주중에도 함께 야식을 먹거나. 산책을 가거나. 잠들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편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남편도 나도 코를 골며 자는 버릇이 있어서, 어떻게든 먼저 잠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늦게 잠드는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쑤셔 넣어야 하니까.


  “그래서, 데이트하는 금요일 저녁엔
    뭘 먹는데?”    


  이런 질문은 부담된다. 뭔가 특별한 메뉴를 말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데이트라고, 금요일이라고, 다를 건 없다. 귀찮으면 외식하고, 피곤하면 시켜먹고, 냉장고에 식재료가 많거나 생활비가 없으면 요리를 한다. 메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게 핵심이다.


  사실 음식 맛은 계절, 요리, 장소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금요일 음식 맛은 기분에 좌우된다. 그래서 메뉴 선택은 ‘오늘의 기분’을 따른다. 이를 위해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었던 서로의 사건, 사고, 일정을 체크해본다.     

  바쁘고 스트레스가 심했다면 매운 갈비, 아귀찜, 닭발과 같은 입 안과 정신이 얼얼해지는 메뉴를, 개운하게 마무리가 됐다면 삼겹살, 양고기, 소고기 같은 반짝반짝 기름진 메뉴를, 축하하고 싶을 때는 알리오 올리오, 스테이크, 샐러드 같은 ‘쨍그랑’ 와인 잔 소리를 내기 좋은 메뉴를 선택한다.            


  고민, 상사 욕, 계획하는 일에 대한 얘기를 하며 저녁을 먹는다. 많은 얘기를 꺼내지만, 식욕이 떨어지게 할 주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면,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함께.




  금요일은 좀 많이 먹는다. 하지만 절대 식사로 ‘먹기’를 끝내진 않는다. 무조건 2차를 해야 한다. 우린 둘 다 술보다 달달한 디저트에 헤벌쭉, 기분 좋아지는 타입이다. 그래서 집에서 요리한 날은 근처 카페거리로, 외식한 날은 마트로 향한다. 부드러운 빵 사이에 우유 생크림이 가득한 디저트를 찾아서. 매번 새로운 걸 먹자고 하지만, 결국은 우유 생크림이다.

  빵 또는 케이크가 담긴 봉투 상자는 한 손에 조심히 들고, 다른 한 손은 남편의 손을 잡는다. 요즘 미세먼지가 심각한데, 이 순 밤하늘은 괜히 맑아 보인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커피와 디저트를 펼쳐놓고, 텔레비전을 켠다. 1차로 식사할 때, 서로의 일상에 있었던 하이라이트를 공유했으니. 대화는 충분하다. 그래서 밤 11시에는 ‘나 혼자 산다’나 ‘하트 시그널’을 말없이 본다. 그러다가 키득키득. 결정적 장면에서 누군가 소리 내어 웃으면, 나머지 한 사람도 따라 웃는다. 키득, 푸하, 키득, 하하.

   ‘1 코노미’가 유행이지만, 이렇게 함께일 때 더 좋은 순간도 있다고 느낀다.       




  어느덧 밤 12시가 지난다. 주중에는 한 밤중이지만, 금요일은 그럴 수 없다.

  둘 다 순서대로 씻고 나와 다시 거실에 모인다. 그리고 이번엔 영화를 본다. 그러나 이 지점부터는 완전한 개인플레이다. 졸리거나 영화가 재미없는 사람은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영화를 끝까지 본다.


  사실 자정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는 ‘상대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시간이다. 같이 살다 보면 닮아가는 것 같은데, 확고한 서로 다른 취향은 바뀌지 않는다. 남편이 SF영화, 야구, 축구를 좋아하는 게 그렇고. 내가 스릴러 영화, 라디오 듣기,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게 그렇다. 이건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럴 때는 유행을 따른다. 혼자인 게 편할 때도 있으니까.   


  서로 미워 죽겠다고 싸우는 날도 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결혼을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금요일은 ‘결혼하길 잘했다’란 생각이 든다. 
  남편과 먹는 맛있는 음식은, 내게 늘 완벽한 금요일을 만들어 준다.  



남편은 밥먹고 나는 다이어트 식단을 먹는, 요즘 금요일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가장 걱정했던 것도 금요일 저녁식사였다. 요즘은 남편만 밥을 차려주고 나는 그 앞에 앉아 삶은 계란을 먹으며 두유를 마신다. 그래서 ‘음식 맛’이 기분에 좌우된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지겨운 계란과 두유가 남편과 마주 앉아 먹으며, 참 맛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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