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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Jan 12. 2021

층간소음은 싫지만, 아파트에는 살고 싶어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으나.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게 있다. 바로 층간소음이다.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층간소음이 심각했다. 경기도에서 나름 학군이 괜찮은 곳이라 알려진 동네라 그런지. 작은 평수임에도 윗집 옆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모든 집에 아이 둘쯤 있었다. 게다가 대각선으로 있는 밑 집의 경우 두 아이와 반려견 네 마리가 함께 살았다. 아침에는 개들 짖는 소리에 깨고, 저녁에는 윗집 삼 남매 발소리에 두통이 일고, 주말에는 사람 여럿 초대하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소음으로 날카로워졌다.

     

  공동주택이니 어쩔 수 없다. 너도 아이 낳아 키워봐라. 관리실에 층간소음에 대한 민원을 넣을 때마다 들어야 했던 답변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반년쯤 됐을 때는 스피커를 설치할 정도였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였다. 내가 겪는 층간소음 너희들도 당해봐라, 이런 마음. 은근 효과가 있었다. 다다닥 거리다가도 벽에 있는 스피커로 헤비메탈 음악을 켜면 조용해졌으니까.

      

  다행스럽게도 스피커를 설치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 둘과 반려견 네 마리를 키우던 집이 이사 갔다. 나를 빼고도 주변 민원이 심각했다고 한다. 하긴, 주인이 집을 비우면 종일 짖어대는 것은 기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대며 달려들곤 했으니. 어린아이를 둔 집에서는 마주치는 자체가 고욕일 터였다.


  그런데 훗날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해 들은 얘기는 전혀 달랐다. 주변 항의가 이사를 결정한 이유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교육환경이 좋은 곳보다 자녀와 반려견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전원주택으로 갔단다. 떠나보내고 나니 마주칠 때마다 눈살을 찌푸렸던 게 신경 쓰였으나, 가끔 방송에서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반려견 탓에 눈물을 보이는 견주를 볼 때면 그들이 떠올랐다.

     

  그 집이 떠나자 도망갔던 고요한 아침이 돌아왔다. 세 마리의 닥스훈트와 한 마리의 비숑 프리제의 엉망진창 합창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덜 예민해질 수 있었다. 층간소음에 한결 관대해진 것이다. 늦은 밤이 아니고는 윗집과 아랫집에서 쏟아내는 소음을 참았다. 한데 어느 날부턴가 아랫집 소음이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날이 늘었다.

     

  그쯤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여자와 마주쳤다. 나는 그녀와 마주치면 쓴소리를 할 작정이었다. 사람을 초대하는 건 당신 자유지만 제발 열 시 넘어서는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런데 여자의 얼굴을 보자. 꺼내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어디서 멱살을 잡힌 것처럼 목이 축 늘어난 티셔츠에 보풀이 일어날 냉장고 바지를 입고 있던 그녀는, 옷차림만큼이나 얼굴도 수척했다. 푹 꺼진 눈 밑은 거무튀튀하고 입술을 하얀 각질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천장에 붙은 귀신이라도 본 건지. 그녀의 시선은 허공에 꽂혀있었다. 소심한 나는 곁눈질로 살피다가 입을 닫아버렸다.

    

  그 뒤에도 소음은 계속됐다. 어떤 날은 손님으로 온 아이들과 그 집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고 구르는 소리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박장대소하는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런저런 걱정들로 불면증을 앓던 나는 터질 게 터졌다. 할 수만 있다면 이사 간 네 마리의 개를 데려와 그 집에 들여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그날 잠을 놓친 탓에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다음날 관리실에 연락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공동주택이면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관리실 직원은 어제 다른 동에서는 새벽 시간에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놀았던 집도 있었다며, 소름돋는 동문서답으로 나를 위로했다.

     

  관리실에서 전보다 강력하게 얘기한 것인지. 그 후로 여전히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굴리는 소음이 들리긴 했으나, 전보다 양호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흘렀을까.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집 앞에 나갔다가 또 아랫집 여자와 마주쳤다. 여잔 전과 마찬가지로 행색과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종이상자를 정리하는 내 뒤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으나.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주말에 놀러 오면 안 돼? 나 독박 육아라 너무 힘들어. 와서 애들끼리 놀게 하고 우린 한잔하면서 수다 떨자. 응? 와라! 제발!”     


  누군가에게 사정하는 목소리였다.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제까지 내가 당한 소음의 원인이 그녀의 간곡한 초대들로 인한 것이라니. 당황스러웠으나 그 모습에서 육아 중인 친구들이 겹쳐 보였다. 아기와 단둘이 집에 있는 게 답답하다며 자주 좀 놀러 오라던 친구들. 여잔 고된 육아로 우울증 비슷한 것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사정을 알게 되자. 나를 괴롭게 했던 소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됐다.

     

  분리수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랫소리가 들렸다. 또 아랫집이었다. 아이들이 집을 비운 오전 시간. 그녀는 혼자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어떤 곡인지 알 수 없으나. 성악이었다. 전공이 노래인지. 취미로 해왔던 건지 알 수 없으나 수준급이었다. 설거지하며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장난감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좁은 거실 중앙에서 두 손을 내저으며 노래하고 있을 여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요즘은 활달한 삼 남매가 있던 윗집도 이사 가고 아랫집도 코로나 탓인지 전처럼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다. 그저 가끔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게 전부다.

  

  새삼 아파트란 공간이 요사스럽게 느껴진다. 내 집이라고 하기엔 얄팍한 벽과 바닥을 너무 많은 이들과 공유한다. 한데 혼자가 편하다면서도, 갈수록 촘촘하게 사람들로 채워진 아파트만 선호하게 된다. 이건 마치 혼자가 편하지만, 혼자는 너무 외롭다며 칭얼대는 꼴이다.


  기분 탓일까.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닥스훈트 세 마리와 비숑 프리제 한 마리가 날 선 이를 드러내며 짖어도,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 듣다 보니 여자의 노래가 꽤 괜찮게 느껴진다. 밤에 불러도 참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딱 여기까지였음 한다. 돌연 파이팅 넘치게 노래방 기계를 들여와 부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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