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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ug 07. 2020

이별에 앞서 정산해야 할 것들 (2)

이미지 출처: 영화 <소공녀>



  “나한테 민폐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지?”     




  그때까지 우리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 싸움을 준비 사람들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각자 안고 있는 가장 뾰족한 단어를 꺼내, 단숨에 날카로운 말로 바꿔 서로의 심장을 조준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한참 동안 책임지지 못할 경솔한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선가 둘 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입을 닫아버렸다. 내가 너보다 먼저 울지 않을 거야. 이런 표정으로.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건 나였다. 진짜 끝이야. 이별을 통보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서 고개를 숙이고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다만, 택시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백미러를 쳐다봤다. 돌아보지 않고도 그가 나를 잡으러 나오지 않았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참았던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며 엉엉 울었다. 그가 했던 이 말을 곱씹으면서(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말이었다).  


  “나 너한테 한 번도 비싼 곳, 비싼 음식, 비싼 술 사달라고 한 적 없어. 다 네가 하고 싶고 먹고 싶었던 거 아냐? 너 그때마다 미안하고 불편했을 내 마음은 생각해 봤어?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비참한 기분 따위, 헤아려 본 적 있느냐고!”      


  이기적이다. 변했다. 나도 너 따위 질린다. 네 이중성과 모순은 개차반 수준이다. 이런 말들은 견딜만했다. 그러나 모든 게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혼자만의 것이었다니. 노력과 배려가 상처가 됐다니. 꽤 견고하다 믿었던 진심이 파도를 두둘겨 맞은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나는 그게 너무 아팠다.


  얼마간의 냉전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미지근한 사과를 주고받았지만, 우린 예감했다. 멀지 않아 헤어지게 될 거란 걸. 서로에 대한 온도가 다시는 끓어오를 수 없단 걸.   

   

  예상대로였다. 일이 바쁘다. 작품 마감을 해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렇게 두 달쯤 흘렀을까. 어느 금요일 밤. 전날부터 연락이 없던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울리는 전화를 쳐다만 보고 받지 않았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주 조용한 이별이었다.      




  끝이라 생각한 끝은 끝이 아니었다.


  이런 말장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석 달 뒤였다.

     

  ‘내가 빌려준 책, 돌려줄래?’     


  기막혔다. 그가 보낸 문자다. 연애를 시작할 무렵 그가 빌려준 연애소설. 딱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몰입하는 척 눈을 번뜩이며 읽었던 책. 선물다운 선물을 해줄 수 없던 그에게 받은, 아니 빌린 유일한 물건. 잊고 있던 책을 꺼내 펼쳐봤다. 신중하게 친 밑줄과 꾹꾹 눌러쓴 글귀가 보였다. 내가 사랑하던 남자의 글씨체가 이렇게 밉상 맞게 생겼던가. 헤어짐을 받아들인 순간에도 밉지 않았는데, 문자 메시지를 읽고는 이유 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가진 걸 알았지만, 그 애착이 사랑보다 클 줄은 몰랐다. 일 년 넘게 만난 연인에게 끝끝내 받아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연애는 구천팔백 원짜리 책으로 인해 로맨스에서 코미디가 됐다.

    

  ‘버렸어. 새 책 사서 보낼 줄게.’     


  어차피 무너진 장르. 나도 구천팔백 원으로 그를 공격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서 보냈다. 주소는 그가 경멸하는 옆집 술주정뱅이 아저씨 집으로 적어서. 그리고 빌었다. 제발 아저씨가 그 책을 냄비 받침 따위로 함부로 쓰다가 그에게 돌려주길.

   


  

  그 후 나는 계절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풍족한 연애를 했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해대는 연애. 한데 오래가지 못했고, 끝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와 견줘도 될 만큼 최악이었다. 대체 문제가 뭘까. 이런 고민이 겹겹이 쌓여갈 때쯤, 그에게 연락이 왔다. 책을 보내고 일 년 반쯤 지난 후였다.      


  “날짜 좀 조율하려고.”     


  책으로 정산을 마친 그와 조율할 일이 또 생길 줄 몰랐다.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내던 지인이 병원에 입원했다며 병문안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함께 갈 새 여자 친구와 내가 마주치는 걸 원치 않는다며 말이다. 장르가 무너진 이별의 잔재가 남지 않아서였는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옆에 있는 사람을 위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한창 그를 열심히 사랑할 때, 나는 그의 작품보다 그런 행동을 더 좋아했었다.      


  날짜정한 후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예의상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런 얘기를 꺼냈다.      


  “그 책에 김치국물 묻어있더라.”

  “….”

  “이거 진짜 쓸데없는 얘긴데, 그때 나 좀 유치한 생각을 했어.”

  “뭔데?”

  “내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나쁜 인물한테 네 이름을 붙여주겠다, 뭐 그런.”     


  풉. 둘 다 웃음이 터져버렸다. 유치한 고백을 한 그에게 나도 조잡한 대꾸를 했다.     


  “써. 맘껏 써. 내 이름. 그 작품 대박 나서 전 국민이 내 이름을 욕으로 쓰도록.




  참 가난했고 치사했고 옹졸했던 연애였다.

  그러나 가장 솔직하고 완벽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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