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일주일 전,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된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이어졌다. 대부분 결혼식에 오지 못하겠다는 연락이었다. 딱히 서운하진 않았다. 결혼식 장소는 시댁이 있는 부산. 나라도 고민했을 거다. 누군가를 위해 하루를 온전히 내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결혼식 하루 전까지 올 사람과 오지 않을 사람 수가 추려졌다. 예상대로 청첩장을 받은 두 명 중 한 명은 오지 않는다. 그냥저냥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절친이라 부를 사람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는 나였다. 50%의 참석률도 꽤 만족스러웠다.
- 미안해서 어쩌지? 갑자기 오늘 출장이 생겼거든. 진짜 진짜 미안해.
결혼식 날 아침. 진아에게도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다. 남편과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였다. 나고 자라서 생활한 도시와는 너무도 먼 곳에서 하는 결혼식. 사실 굳이 와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데 오겠다는 이들이 있어 미안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한데 진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줬으면 했다. 아니. 당연히 올 거라 믿었다. 진아가 없는 내 결혼식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괜히 지방에서 결혼한다고 했나? 조금 후회스러웠다.
-어쩔 수 없지. 결혼식 끝나고 만나자. 출장 잘 다녀와.
담담한 척 답장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후에 보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내가 느낀 서운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린 20년 지기 친구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을 함께 먹고 자랐다. 마음껏 좁은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사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상대를 이해해줘야 할 관계다. 일이 중요해 내가 중요해 따위로 우정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나 진아는 외국으로 떠났다. 익숙한 헤어짐이다. 원래부터도 일본, 미국, 영국, 홍콩,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일해온 친구다. ‘잘 지내고 있을 거야’ 하다 보면 어느새 “나 한국 왔어!”라며 연락해 올 것이었다.
결혼 후 인간관계가 단출하게 정리됐다. 어쩌다 보니 결혼식에 오지 않은 대부분 사람과 멀어졌다. 남편과 함께 살다 보니 경조사가 두 배다. 되도록 모든 장례식은 간다. 하지만 결혼식과 돌잔치는 예외다. 우리가 결혼할 때 축의금을 내고 와준 지인, 축의금을 내고 오지 않은 지인, 축의금을 내지 않고 오지 않은 지인, 이렇게 구분해 응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는 탓이다.
먼 곳에서 하는 결혼식과 돌잔치에 초대한 친구가 있었다. 바빴지만 꾸역꾸역 참석해서 축의금도 다 냈다. 한데 내 결혼식에는 오지 않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 후가 문제다. 몇 년 전 그 친구가 또 연락해 왔다. 속내가 보였으나 확인하고 싶어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예전에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둘째 돌잔치 초대장을 보내더라. 답장 없이 바로 친구 목록에서 차단해 버렸다. 이렇게 허무한 관계라니.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게 그다지 없는 편인데, 아무것도 주지 않고 받기만 하려는 사람은 엄청 실망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되어 가는 동안에도 진아와는 달라진 게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주로 외국에서 생활하는 진아와는 시차도 있는지라. SNS로 서로의 소식을 접할 때가 많았다. 그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근황과 사진을 올린 진아의 SNS를 보고 있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었다. 언제쯤 한국에 올 것인지 묻기 위해 댓글을 쓰다가, 그 글을 보고 말았다.
- 내 결혼식 이후로 못 봤네. 우리 진아 완전 보고 싶다.
진아의 대학 동기가 쓴 댓글이었다. 여자 촉이 왜 여기서 발휘된 건지 모르겠으나. 내 손은 자연스럽게 진아 동기의 SNS를 클릭하고 있었다. 프로필을 보니 그녀는 나와 같은 날 결혼했다. 그러니까 진아는 어릴 적 친구인 내 결혼식이 아닌 대학 동기 결혼식을 택한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확인하기 위해 여자의 사진첩을 훔쳐봤다. 서울 유명 호텔에서 치러진 결혼식 사진에서 진아를 발견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진아를.
출장 때문에 오지 않은 것과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가느라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좁은 마음도 보여줄 수 있는 사이에서, 좁아진 마음 때문에 불편한 사이가 됐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모른 척했다. 그저 진아가 연락해 올 때면 티가 날 듯 말 듯하게 냉랭하게 대했다.
우리가 어쩌다 친해졌을까. 아무리 되짚어봐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진아와 친해진 계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조각조각 함께했던 터무니없던 일들이 생각날 뿐이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녀와 영화감독을 장래희망이라 적어냈던 내가 하던 놀이 말이다. 진아가 하얀 스케치북에 옷을 그리면, 나는 “우와. 나중에 내 영화 여주인공한테 입혀야겠다”라며 감탄을 한다거나. 내가 밤새 생각한 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진아는 “야! 그거 영화로 만들면 진짜 재밌겠다”라며 호응하는 식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진아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다. 나도 영화감독이 아니다. 멋모르던 어린이들은 꿈꾸던 것과 가능한 것을 구분해 나갔다. 진아는 외국에서 패션 디자인이 아닌 패션 마케팅을 전공한 후 직장인이 됐다. 나는 영화과가 아닌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글 쓰는 일을 했다. 더는 서로의 결정적 순간을 공유할 수 없었다. 시간을 나누던 친구는 소식을 전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동기 결혼식에 갔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와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동기와는 어른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 한 결혼식장을 선택해야 했던 그때, 아니 그 시기에, 진아는 자신의 삶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의 결혼식에 갔던 게 아닐까 싶다.
몇 달 전, 진아는 ‘잘 지내냐’는 말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예쁜 상자에 쌓여 있는 편지와 카세트테이프가 보였다. 이것들은 대체 뭘까.
- 기억나? 이거 우리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주고받은 편지랑 테이프야.
잊고 있었다. 우리가 저토록 많은 걸 주고받은 사이란 걸. 그제야 진아에게 실망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내게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받은 편지와 테이프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다. 여러 차례 이사 다니면서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자리만 차지하는 짐을 무심히 버릴 때 같이 버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분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난 진아에게 받은 편지와 테이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거니까. 진아가 내게 물었다.
-너도 아직 편지랑 테이프 가지고 있지?
-응. 근데 친정집에 있어.
거짓말을 했다. 당황해서가 아니다.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쯤에서 진아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버리기로 했다. 아니. 퉁치기로 했다.
이제 인정해야겠다. 우린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지만, 이제 서로에게 더욱더 중요한 사람과 순간이 있다는 것.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잊히기도 한다는 것. 더는 서로에게 진실만 말할 수 없다는 것. 가끔은 알고도 모른 척해줘야 한다는 것. 어쩌면 내가 우정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우정을 지켜주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