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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r 14. 2017

이제 남편는 나를 달래주지 않는다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4

  “이쯤에서 끝내자”    


  남편과 연애 할 때였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작은 아주 사소한 오해였는데, 결국 난 저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선명히 떠오르진 않지만, 그때 남편은 밤 11시에 택시를 타고 집 앞에 찾아와서, 3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를 남겼고, 결국 난 못 이기는 척하고 나가서 그의 사과를 받아줬던 것 같다. 내가 이 일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연애 때 '싸움 에피소드'로도 떠올리지 못하는 건. 아마도 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쯤에서 끝내자”  


  결혼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 상황은 아주 자세히 기억이 난다. 시작은 사소한 '돈 관리'에 대한 의견 차이였는데, 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난 저렇게 말했다. 그리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저 말에 대해 남편이 어떻게 답하고 행동했는지 말이다. 약 10초 동안 침묵하던 그는, 외투를 입고 현관으로 가면서 내게 말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알았어"


  지금이야 이불킥하고 싶은 기억이지만, 난 저때 남편의 말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분노했다. 그러면서 소리 질렀다. 소름 돋는 아침 드라마 대사로.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남편을 포함한 나의 전 남자 친구들과의 연애를 떠올려봤다. 생각해보니, 그때의 난 한결같았다. 상대방에게 화가 나거나, 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순간적으로 발생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방출하곤 했다. 진짜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끝에는 이별에 대한 암시도 빼놓지 않았다. 당시 싸움과 갈등이 나로 인해 시작되기도 했지만, 일단 나는 나의 감정과 기분이 우선이었다. 어쩌면 암묵적으로 '남자라면 여자를 이해하고 받아줘야 한다'라는, 불평등하고 웃긴 발상을 강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남자 침구들은 나를 잘 달래줬고,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게 먼저 사과해 주곤 했다. 남편도 그랬다. 소개받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성격 좋다는 칭찬이 마르지 않았던 남편의 경우에는, 더 그랬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들 다 한다는 크고 작은 싸움도 거의 없었으니까.


  그랬던 그가, 남편이 되자 서서히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미처 몰랐던 서로의 모습과 생각으로, 갈등과 싸움이 많아지면서, 남편의 여유로운 미소는 사라졌다. 그리고 화가 날 때면,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의 일방적인 감정을 방출할 때면, 남편의 반응은 더욱 싸늘해졌다. 남편은 연애 시절에 내가 알던 그 성격 좋고 이해심 많은 남자가 아닌, 굉장히 단호하고 따지길 좋아하는 남자였다. 본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승복하고 사과했지만, 누구의 잘못이라 말하기 예매한, 서로의 다른 가치관과 생각에 대한 문제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수다스러운 여자들보다 더 수다스럽게,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곤 했다. 그러니 나를 달래주고나, 먼저 사과하거나, 무장적 이해해주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아마도,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결혼과 연애를 혼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연애 때처럼, 남편의 자상함과 애정을 잔뜩 받고 사는 여자를 발견할 때면, 나의 결혼이 잘못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곧 인정한다. 내가 선택한 결혼은, 판타지 로맨스가 아닌, 생활 밀착형 스토리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가끔 싸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너는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냐고'. '너는 왜 연애 때와는 다른 행동을 하냐고'라며 남편을 다그칠 때가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

  그런데 이젠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들이 진짜 있는 것일까. 그저 우린 서로를 통해 이해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저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서, 그래서 결혼하고, 함께 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 남자도 나한테 바랬던 것들이 참 많겠지. 하긴, 냉정히 생각해 봤을 때. 남편에게 나란 여잔. 쿨한 척, 똘똘한 척 하지만, 막상 가까이해보면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젠 남편이 당연히 나를 달래주겠지, 라는 생각은 줄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과하고, 남편을 달래주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우리가 싸웠을 때, 내가 미안할 때, 그래서 침묵이 길어질 때, 내가 먼저 말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밥은?”  

“안 자?”  

“언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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