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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r 17. 2017

임신을 거부했던 아내와  아이를 원했던 남편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5

  “딱 6개월 어때?”  

  “딱 좋다. 6개월!”    


  딱 6개월로 정했었다. 결혼 후 신혼을 즐기는 시간을.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아이를 갖자고 계획했었다. 그리고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정말 딱 6개월이 지났을 때, 남편은 "이제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자"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혼하면 혼자일 때보다 안정적일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입사한 지 3달 밖에 안된 회사, 전세자금 대출 9,000만 원, 무엇보다 아직도 어두운 터널에 있는 것 같은 ‘나의 미래와 삶’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임신하는 순간, 고민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떠밀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미루고 싶었다.     


  “딱 6개월만 더 이렇게 지내자”  

  “이유가 뭔데?”    


   임신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난 좀 과하게 포장해서, 설명했다. 일단, 임신하면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출산 휴가를 줄 것 같다. 그러나 이제까지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6개 월 이상은 어렵다. 그럼 난 떠밀려서 퇴사를 하게 된다. 물론 회사로 복귀할 수도 있지만, 야근이 잦은 당신의 일상을 볼 때, 회사 분위기를 볼 때, 가까운 곳에 시댁도 친정도 없는 우리에게, 맞벌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근데 지금 당신 혼자 대출금, 육아비용, 생활비를 감당하는 건, 큰 부담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바꿔야 한다면, 난 너무 불행해질 것 같다.  

 나만 생각하고, 내가 바라본 입장만 정리해 대답했다.

     

 그 날 우린 새벽까지 말다툼했는데, 남편은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했다.    

 

 “넌 진짜 너무 이기적이야”  

  



  그렇게 우린 임신을 6개월 더 미뤘다. 가끔 남편은 자신이 장남이자 장손이라 부모님이 우리의 2세를 기다리는 것 같다는 등. 다양한 이유를 내밀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위해 너와 결혼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린, 나이만 먹었지, 준비가 안됐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책임’이다. 특히 ‘일단 낳으면, 어떻게든 다 키우게 되어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경멸스럽다고 화를 냈다.   


  사실, 나중에 남편에게 솔직하게 고백했지만, 난 ‘준비가 안 된 임신’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나의 오빠는 20대 초반에, 혼전임신으로 동갑내기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일단 낳으면 어떻게든, 우리가 키워볼게’라며 완강하게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태어난 조카는 너무 예뻤지만, 정작 어린 부부는, 이 상황을 감당하기 버거워했고, 자주 다퉜다. 그 덕분에 양쪽 집 안 어른들은 자식들 다 키워 놓고, 취미활동을 시작하려던 때에,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희생에도 오빠네 부부는 결국 1년 만에 이혼했다. 그 후 조카는 친정엄마가 맡아 키웠고, 나도 가끔 학부모 역할을 해야 했다. 지금은 9살이 된 나의 조카는, 엄마는 없지만, 꽤 괜찮은 어린이로 성장했고. 우리 가족은 오빠의 이혼 뒤에 오히려 더 화목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 가족 모두가, 수많은 아픈 일을 견뎌야 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고, 남편과 나는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검사도 받고, 나는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고, 남편은 금연을 위해 노력했다.   

  결혼 초반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회사도 불안하고, 대출금은 부담스럽고, 여전히 내 미래는 어두웠다. 굳이 변화된 것이 있다면, 남편과 나의 관계였다. 결혼 초반에는 잦은 다툼과 갈등으로, 이렇게 평생 사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심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린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을 줄여가고, 상대를 위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고, 결정적으로 우린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 잘되는 일에는, 늘 응원을 해주는 관계가 됐다(그렇다고 싸우지 않는 건 아니다. 요즘도 가끔 싸운다). 임신으로 인해 포기되는 것들은 많겠지만, 남편처럼 좋은 파트너가 옆에 있다면, 누군가를 책임지고, 나 자신도 잃지 않는, 그런 가족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지낸 지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우연히 ‘임신을 계획하고 1년 이상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 난임이다’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솔직히 임신을 준비하면서, 너무 금방 생길 것 같아 걱정했었지. 혹시 우리가 난임 부부가 될 거란 걱정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 남편과 나는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처음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접수 담당자가 내게 ‘어떤 것 때문에 진료를 받으시려는 거죠?’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 입으로 ‘난임’이란 단어를 먼저 꺼내기 싫었서 ‘임신 관련해서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좀 받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다시 물어왔다. "정확히 임신 관련 어떤 부분이요?"라고. 이 말에 내가 우물쭈물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요. 아직 임신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려던 찰나, 그녀가 나의 말을 자르고 "토요일 1시까지 오세요. 난임 전문 교수님으로 예약해 드릴 테니까" 라고 말했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둘 다 검사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임신이 안 되는 건, 단지 스트레스 문제인가요?”    

 

 그러자 여자 의사가 냉랭한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스트레스라고 말하면, 의사는 편하죠. 근데 솔직히 의사도 그 원인을 모를 때가 많아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임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이고,  

  환자분은 이 내용을 잘 듣고, 고민해 보시면 됩니다”    


   사무적인 것 같지만, 솔직함이 느껴지는 그 의사의 답변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임신을 거부하던 아내와 아이를 원하던 남편이, 이제는 같은 고민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도 아이가 생길까? 그러나 우린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서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해 줬지만, 우린 일단은 시간이 날 때마다 신나게 여행을 가고, 흥미로운 영화를 보고, 소문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이 아까운 시간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보내는 것보다, 최대한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며, 노력해 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어떤 날은 힘들고 우울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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