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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r 26. 2017

계획적인 남편의 '청소법'과 집착하는 아내의 '요리법'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6


 머리가 남편을 이해하라고 하기 전에,

 몸과 입이 먼저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결혼했지만, 애초에 결혼 옹호자는 아니었다. 감정에 치우쳐 수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남자와 여자가 공식적으로 한 집에 산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나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가족을 만들고, 남편에게 기대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과연 나에게 가능할까? 나이 때문에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하고, 그 후에 만난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었지만, 두려웠다. 더 고백하자면 난 과거 남자 친구들에게 ‘희생정신이 불가능한 이기적인 여자’란 소리도 줄곧 들어왔었다.

  

  그래서 결혼 후 남편과 더 자주 싸웠던 것 같다. 머리가 남편을 이해해 보라고 설득하기 전에, 내 몸과 입이 '넌 그게 문제'라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하기 싫었던

                 너의 괴상함


 결혼 전 30여년 간 따로 살아온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달랐는데, 특히 ‘살림’이 그랬다.

 남편과 나는 맞벌이 부부인 탓에 처음부터 합의해서 살림을 나눴다. 남편은 청소,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정리. 나는 요리, 설거지, 냉장고 정리, 빨래 등을 맡았다. 그런데 이게 나를 미치게 했다. 왜냐면 남편은 지나치게 계획적이고, 나는 지나치게 (오만가지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계획적인 남편의 '청소법'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 대청소한다. 매주 수요일 그리고 주말. 대학생 때부터 자취하면서, 늘 이렇게 청소해 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야근과 회식으로 늦게 집에 들어오더라도, 꼭 청소했다. 20평 남짓 작은 아파트지만, 청소하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의 청소법은 이랬다.

  1. 가벼운 가구나 의자는 다른 공간으로 옮긴다.

  2. 청소기 돌린다.

  3. 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4. 바닥을 닦으며, 청소기가 처리하지 못한 먼지와 머리카락을 모은다.

  5. 다시 청소기를 돌린다.

  6. 가구를  닦는다.

  7. 이 과정을 거실-안방-옷방-부엌 순서로 반복한다.

  8. 모든 패브릭을 차례로 들고 밖으로 나가 먼지를 털어낸다.


  어떤 날은 진짜 피곤해 보여서, 내가 대신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본인의 일이란다. 남편은 무엇이든 계획대로 차근차근 완벽하게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가끔 그가 내게        


  “스팀 청소기 살까? 마지 단계에 스팀 청소기까지 돌리면 더 완벽할 텐데. 그치?”    

  

  하는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대답하기 무섭다



  

 남편이 청소하기 전에

 빨래를 정리하겠다고 가볍게 대답했었다


  물론 남편의 저런 계획적인 청소로 인해 우리 집은 365일 중 360일은 깔끔하다. 그러나 그의 청소법은 가끔 우리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남편은 본인이 청소하기 전에, 내가 주말에 널어둔 빨래를 정리하길 원했다. 그래야 청소 후에 집 안에 먼지가 덜 생긴다는 거다. 처음에 남편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인가 싶어 ‘알았어’라고 대답했었는데, 이게 내겐 함정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야근하지 않는 편이다. 이유는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지하도 아닌데 그 흔한 쪽창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라도 좀 쳐다보고 싶은데, 사방이 벽이고, 불이라도 꺼지면, 암흑이다. 이렇다 보니, 야근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노트북을 챙겨서 집으로 간다. 가끔은 수요일에도 그럴 때가 있다.    

  수요일에 일을 들고 집에 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남편은 청소를 하려고 하니까. 1시간 30분 동안. 무엇보다, 남편이 청소하기 전에 내가 빨래 정리를 마쳐야 하니까. 남편은 당연히 우리가 계획한 대로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난 융통성(?) 있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 초반에는 남편에게

    

  “나 이거 급한데, 오늘 밤까지 마무리해야 해”  

  

  하며 귀엽게 엄살도 부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빨리 빨래 좀 정리해줘, 나도 빨리 청소하고 조용히 해줄게."


  그럼 난 빨래를 정리하고, 남편의 청소 순서에 따라 불편하게 공간을 이동하다가, 새벽까지 일하는 상황이 생긴다. 물론 인정한다. 청소를 안 했어도 난 새벽까지 일했을 거다. 덜 피곤한 상태로.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말할 때도 있었다.     


  “오빠 나 오늘 빨래 못해. 오빠도 청소 내일 해. 나 이 일 내일까지 제출해야 해.” 

  “알았어. 하루야 빨리 빨래 좀 정리해. 나도 빨리 움직일게"

    

   이 사람 뭐지? 싶어서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그깟 청소가 뭐라고! 난 이거부터 해야 해. 청소? 그게 지금 중요해?” 

   “우리 결혼하면서 계획하고 약속했잖아. 수요일 날 청소랑 빨래하기로. 너도 힘들겠지만, 나도 야근하고 와서 청소하는 거 힘들어. 그래도 나는 우리가 기본 생활패턴을 충실하게 지켜나갔으면 좋겠어.” 

    

  남편이 ‘계획적인 남자’란 건 연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땐 남편의 계획적인 행동이 사랑스럽게 보이던 시기였다. 우리가 처음 속초로 여행을 가기로 했을 때, 노트북을 들고 내게 찾아와 ‘속초 여행 계획표’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 파일을 보여줬을 땐, 어쩜 저렇게 내가 두서없이 꺼낸 이야기를 계획표로 잘 정리해 왔을까. 이런 게 사랑인가 보다.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보니, 그는 그냥 ‘계획적인 로봇’ 일뿐이었다.  

  여행은 파워포인트 파일로 정리, 생활비는 엑셀로 정리, 쇼핑 목록은 휴대폰 메모장으로 정리, 물건은 사용빈도수에 따라 정리.

  그는 그냥 정리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상한 남자였다.     



  집착하는 아내의 '요리법'


  반대로 남편은 내가 요리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요리하는 과정을 아주 싫어했다. 이유는 내가 한 번씩 오만가지에 집착해서 넘치는 상차림을 만들고, 그 뒤에도 불필요하게 긴 시간을 부엌 정리에 쏟으며, 나중에는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탓이다.


  난 요리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여자다. 그건 집착이 심해서다. 뭔가 메뉴가 생각나면, 그 요리와 어울리는 짝꿍까지 고민한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 하려고 소고기를 샀다가, 샐러드도 있어야 할 것 같아, 샐러드 재료를 산다. 그러다 보면 그 두 요리 옆에 호박 수프가 있으면 상차림이 예뻐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단호박과 생크림도 바구니에 담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갑자기 집에 남아 있는 크림 스파게티 소스가 떠오른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 아 맞다. 그 소스 밑에 있는 오래된 과일도 있는데, 와인 사서 샹그리아로 만들어야겠다.

 

  결국 그날 식탁에는 샐러드, 호박 수프, 스테이크, 크림 파스타, 샹그리아 와인과 밖에서 사 온 딸기 케이크까지 차려진다. 남들이 보면 무슨 파티를 하는 줄 알 거다(이건 뭐 푸드파이터도 아니도....).    

  혼자 상상했던 상차림 이미지와 냉장고를 비워야겠다는 집착으로, 저 많은 메뉴를 기꺼이 두 시간 넘게 서서 만든 것이다. 그래 놓고 남편에게 말한다.          


  “어때? 맛있어? 오빤 진짜 결혼 잘했다. 나 같은 여자가 어딨니? 아, 힘들어 죽겠네!”    

  

  그럼 남편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하루야. 오늘 저녁 식사. 너무 맛있어. 근데, 앞으로는 이렇게 안 했으면 좋겠어.”

  “왜?”

  “너 힘드니까. 그리고 난 네가 좀 더 의미 있는데 시간을 썼으면 좋겠어.”

  "오빠 진짜 말 서운하게 한다. 내가 지금 괜한 짓을 한다는 거야?"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 가끔 음식 할 때 보면, 혼자 뭔가에 집착해서

   무슨 잔칫상을 차리는 것 같아."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린 또 싸우게 된다.   

 

  그런데, 난. 저렇게 싸운 후에도 이상한 집착을 끝내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에는 남은 호박으로 호박볶음, 남은 소고기로 뭇국, 샹그리아 와인에 남은 과일로 갈비 양념까지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자정까지 요리를 하는 거다. 매번은 아니지만, 한 번씩 ‘집착의 요리’를 한다. 어떤 날은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를 다 쓰겠다며, 반찬을 7가지나 만든 적도 있다. 밤 11시까지.

  인정하기 싫지만, 가끔 나도 ‘이건 좀 미친 짓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린 지금

  괴상한 청소와 요리를 안 하게 됐을까?


  남편은 아직도 저렇게 매주 청소하고, 난 가끔 저렇게 요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어제 볶음밥을 하고 남겨둔 스팸, 양파, 버섯으로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파스타를 먹고 난 후에는, 그래도 남아 있을 버섯과 어제 산 두부로 된장찌개를 만들어 둘 쓸 예정이다. 또 언제 요리가 끝날지.

  그리고 지금, 남편은 어제 대청소를 했음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나의 머리카락과 먼지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줍고 있다. 하루 종일, 책을 보면 틈만 나면 저런다.


  갈수록 서로의 괴상한 요리와 청소에 대해 별 말 없는 거 보니, 익숙해진 것 같다. 




  instagram.com/lizmar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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