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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pr 04. 2017

서로 다른 드라마를 꿈꾸는 일상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7

‘공중파, 주말 드라마’처럼

                   살고 싶은 남편     

   

  주말 저녁 8시. 별다른 일정이 없는 이면,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가족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다. 채널은 늘 똑같다. KBS.

  요즘엔 <아버지가 이상해>란 드라마에, 이상하게 빠져있는 중이다. 정확히는 남편만.     


  결혼하기 전까지, 내가 섭렵한 주말 가족 드라마는 두 편뿐이었다. <목욕탕집 남자들>과 <소문난 칠공주>. 그나마 이 두 편도 나의 의지보다는 엄마에게 붙들려 같이 봤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가끔 주말 드라마를 보긴 했지만, 흥미롭지 않았다. 딱 1회만 봐도 예상되는 스토리(어떤 드라마는 잠깐 오디오만 들어도 인물 관계도가 다 그려진다), 결국엔 가족의 사랑을 깨닫는 이야기가, 내겐 지루했으니까.


  이런 나와 달리, 남편은 주말 가족드라마 마니아다. 경상도 사람인 그는 대학을 들어갈 때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았다. 보통, 저런 경우, 주말에는 친구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고 밖에서 시간을 보낼 것 같은데, 남편은 남들이 하는 저것들을 초저녁에  끝나고 들어가, 주말 저녁에는 가족 드라마를 보고, 일요일 아침에도 가족 드라마를 봤다고 한다.    

  매번 똑같은 스토리, 결국엔 해피엔딩. 나는 이런 것들이 너무 진부해서 싫은데, 남편은 저런 이유로 가족드라마를 좋아한다.


  물론 그의 취향을 존중한다. 그러나 가끔 드라마에서, 대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는 장면에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라고 남편이 말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까칠한 말투로 묻는다.     


  “오빤 나랑 둘 사는 게 싫어?”          

 



  ‘케이블, 미리 시리즈’

                     살고 싶은 아내       


  주말에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고 없을 때면, 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드라마에 빠져든다. 매주 방송을 기다리는 게 질색이라, 주로 종영된 드라마를 선택한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케이블 채널이나 종편에서 했던 작품들이다.

  최근에는 <시그널>, <보이스>, <또 오해영>, <도깨비>, <청춘시대> 등을 봤다. 이 중에서 남편과 함께 본 드라마는 <시그널> 뿐이다.      

  나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해피엔딩보다는 열린 결말을 선호한다.     


  잠깐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 보면, 나는 <500일의 썸머>란 영화를 매년 두 번씩 본다. 그 영화에서 ‘나쁜년’으로 나오는 여자 주인공도 좋고, ‘찌질남’으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결실’이 아닌 ‘새로운 사랑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해피엔딩이 마음에 든다. 나는 로맨스에 있어서는, 영화 같은 영화보다, 현실 같은 영화가 더 매력적이라 믿는다.    


  이 외에도 일본 드라마, 미국 드라마 등. 이런저런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를 즐긴다. 장르에 편식은 없는데, 유독 가족 이야기에만 관심이 없다.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탓인지, 어제도 우린 이런 대화를 했다.     


  “오빠, 드라마 <보이스> 재밌더라.”

  “무슨 내용인데?”

  “한 형사가 자신의 아내를 죽인 사이코패스를...”

  “야, 넌 쫌! 따뜻한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어?”

  “응, 없어. 그래서 그 형사가 말이야...”    


  나는 가끔 내 삶에 드라마 <김과장> 속 남궁민 같은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고, 드라마 <도깨비> 속 공유 같은 도깨비가 나타났으면 좋겠고, 드라마 <시그널>에서처럼 우연히 과거의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무전기를 줍고 싶다.           




 두 개의 드라마

 하나의 클라이맥스를 만드는 결혼 


 우린 이렇게 취향이 다르다. 근데 연애 때는 몰랐다.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장르가 다른지. 아마도 그때는 우리 둘 다 서로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본인의 취향을 숨겼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에는, 돌아가면서 상대방이 보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봤다. 평일에는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 남편이 좋아하는 가족드라마를 시청한 후.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한다.

  감상평이 너무 달라서, 간혹 괜한 말씨름을 할 때가 있지만, 어쨌든 서로 다른 장르를 함께한다.  


  결혼도 비슷한 것 같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로 다른 장에서, 관련 없이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떻게든 하나의 행복한 결말로 끌고 가기 위해, 두 사람이 부단히 노력하는 것. 이런 게 아닐까 싶다.



instagram.com/lizmar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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