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루 May 07. 2017

작은 집에서 '미니멀 라이프'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10



  결혼하면 삶의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 줄 았았다.


  그러나 현실 속 결혼은,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2인분의 삶이 차려지는 일이다. 가족도 2배로 늘고, 행사도 2배로 늘고, 의무도 2배로 늘고, 해야 할 일도 2배로 늘어난다. 개인주의가 타고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바쁜 날들이 시작되는 거다.

  평균적으로 10시에 퇴근하는 남편도, 6시에 퇴근하는 나도. 결혼 후 여유가 줄어든 건 마찬가지다. 연애할 땐, 퇴근하고 만나서 데이트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퇴근 후 만나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청소, 관리비 정리, 분리수거, 장보기, 시댁과 친정 경조사 준비하기 등. 근데 정말 신기한 건. 연애할 때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같은데, 더 피곤하고 힘들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의견을 모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작 집에 필요한 것만 두고 살자’는 거다.



 

 결혼 전에는 이런 집을 상상했다. 북 카페 같은 거실, ㄷ자 부엌, 마네킹을 한쪽 구석에 세워둔 드레스 룸, 영화관 겸 작업실이 되는 서재, 심플한 패브릭 제품으로 멋을 더한 침실. 그리고 밤이면 창가에 끝내주는 야경이 그려지는 베란다. 방이 최소 3개가 있는 한강이 보이는 30평대 아파트. 어디까지나 상상이니까. 이런 신혼집을 꿈꿨었다.    


첫 번째 집. 우리 부부의 침실이자 서재였다.


  상상과 달리 우리 부부는, 경기도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또 다른 경기도의 작고 낡은 아파트로 1번 이사했다. 첫 집을 구할 때 남편과 나에겐 딱 9,000만 원이 있었다. 한강은커녕 서울 근처에 집을 구하기도 힘든 돈이었다. 우리가 가진 만큼의 돈을 대출받고 난 후에야, 오래된 신도시의 ‘20년 된 22평 복도식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부동산이 정신없이 오르기 직전의 이야기다.     


  첫 집은 우리가 들어간 순간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해, 1년 7개월 만에 6,000만 원이 올랐다. 그러자 집주인은 계약이 만료되면 집을 팔겠다고 부동산에 통보했다. ‘전에 살던 분들도 오래 살았다. 걱정하지 말라’ 던 부동산 사장님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남편과의 다툼 끝에 한 달 동안 셀프 인테리어를 했던 집이었다. 그렇게 꾸민 집을 레몬***라는 카페에 사진과 글을 올렸었다. 우리 부부 같은 커플이 많았던 건지. 그때 그 글은 수십만 명이 클릭했고, 100여 명의 예신들이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그 순간은 뿌듯했지만, 이로 인해 그 집은 내놓자마자 바로 팔렸다. 처음 집을 보러 온 사람이 3시간 만에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위해 주변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그땐 전세도 매매만큼 최소 5,000만 원이 오른 후였다. 돈도 없었지만, 매매 가격과 차이가 나지 않는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    

 

  그렇게 이사를 온 두 번째 집은 ‘20년이 넘은 21평 아파트’다. 이번엔 아무런 셀프 인테리어도 하지 않았다. 남의 집을 꾸미는데 돈을 쓰는 것도 싫었지만, 더는 집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우리 집엔 가구가 많지 않다. 심지어 그 흔한 결혼사진도 걸려있지 않다. 처음에는 집이 작아서, 잠시 욕심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금은 참 다행이라 느낀다. 이사를 준비할 때 우연히 ‘미니멀 라이프’에 관련된 책을 읽었었다. 그 후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가구도 몇 개는 버리고, 또 몇 개를 팔아버렸다. 덕분에 이사가 수월했다.


  

  비싼 아파트값 때문에 작은 집에 살기 시작했고, 또 이 비싼 아파트값 때문에 이사했고, 그리고 또 이 비싼 아파트값 때문에 맞벌이와 야근에 시달리는 삶을 살면서, 우리 부부는 ‘작은 집, 미니멀 라이프’로 삶의 패턴을 굳혔다.


  우리 집은 방송이나 책에 등장하는 ‘딱 트렁크를 채울 만큼의 짐’만 있는 텅 빈 집은 아니다. 거실엔 책장과 작은 소파 그리고 TV가 있고, 부엌에 식탁이, 옷 방에 붙박이장도 있고. 침실엔 침대와 화장대 그리고 책상이 있다. 그러나 가끔 지인들이 놀러 오면 이런 말을 한다.   


  “여기 21평 맞아? 넓어 보이는데?”    


  애초에 작은 가구를 적게 구매했다. 처음부터 가구를 적게 들여 놓은 것이, 넓어 보이는 진짜 이유다.





  남들은 황금연휴라고 해외여행을 중인 어제. 우리 부부는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봄맞이 대청소’를 했다.


  "니들은 맨날 청소만 하니?"


  매주 2번씩 청소를 하다 보니 '대청소한다'라고 하면 주변에선 유난이라고 한다. 그러나 수납장과 옷장 안까지 모두 정리하는 '계절 대청소'는 남편과 내겐 중요한 일이다.  

    

  이젠 인정하는 것. 나는 과거에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고 하면, 카드부터 꺼내 드는 사람이었다. 패션에는 꽝인 '패피(패션에 피해 주는 피플)'지만, 싸다고 사놓은 옷들은 늘 가득했다. 덕분에 옷장은 언제나 화산처럼 잠재적 폭발이 대기된 상태였다. 책도 그랬다. 제목만 마음에 들어도 일단 계산대로 가지고 갔다. 친정집에 책장만 세 개였지만, 내 방은 헌책장 입구처럼 늘 여기저기에 책들이 쌓여있었다. 결혼 후에는 깔끔한 성격의 남편과 작은 집 탓에 버리고 팔아버리고, 구매는 자제하게 됐다.

     

  그런데도 늘 집에는 불필요한 물건들이 생겨났다. 먹을 만큼만 사고, 먹을 만큼만 시키는 것 같은데, 냉장고에는 버려야 할 음식물이 꼭 생겼다. 책도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나머지는 전자책으로 구매하거나, 도서관을 이용했지만, 책장이 작아서인지 자리가 부족할 때가 있다.  옷도 그렇다. 필요할 때만 샀지만, 옷장은 금세 만석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청소를 할 때면 지난 몇 개 월동 안 쌓인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릴 수 있었다.    



  작년 겨울에 남편과 나는 각자 외투를 하나씩 구매하고, 나는 니트와 블라우스를 몇 개 샀던 것 같은데, 옷장은 숨쉬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모든 옷들을 꺼냈다. 그리고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을 따로 분리했다.


사진으로는 적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50벌이 넘는다. 이것들을 골라내고 다시 옷들을 정리하는데 2시간이 걸렸다.   


  의류 수거함으로 들고나가서 다시 확인했다. 주머니에 혹시나 숨겨둔 비상금은 없는지, 진짜 버리는 게 맞는지. 옷을 하나씩 수거함에 넣을 때마다, 속이 시원하면서, 결국은 입지도 않고 버릴 옷들에 돈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반성도 됐다.


  의류수거함에 옷을 넣는데 까지 3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11시쯤 브런치를 먹었지만, 다시 배가 고파져 남편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고 힘을 내서 옷장 정리를 마무리했다.


한결 가벼워진 옷장을 보며, 미용실에서 상한 머리칼을 잘라내고 나올 때, 그 기분을 느꼈다.


  봄맞이 대청소를 했던 어제는,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날이다.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해 마스크를 꼈지만, 목이 아팠다. 그래서 저녁은 종일 먼지와 뒤엉켜 수고한 우리 두 사람을 위한 메뉴를 준비했다.




  작은 집에서 가볍게 산다는 건. 우리 부부처럼 여러 가지로 여유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장점이 많다.

  먼저,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 쉽다. 우리가 청소를 자주 하는 이유는, 먼지에 예민하기 때문이지 물건이 널려있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 집은 조금만 치워도 정돈되어 보인다. 이렇다 보니, 남편과 나는 집에 오면 스트레스로 가라앉고 한결 가벼운 기분을 느낀다.    

  두 번째는 관리비가 적게 든다는 거다. 아파트 관리비도 그렇지만, 물건이 많은 경우 물건을 관리하기 위한 수납장 외에 다양한 품목에 돈을 쓰게 된다.

  세 번째는 전체적인 소비가 줄어든다. 이젠 단순히 '예쁘다' '갖고 싶다' 사는 물건이 많지 않다. 특히 부피가 큰 물건공간만 차지하고 버릴 때는 또 돈이 들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고민해서 물건을 산다.

  마지막으로 부부싸움 후에 금방 화해하게 된다. 집도 작고 딴짓하기 좋은 물건도 많지 않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싸워도 금방 화해하고 대화한다. 그리고 둘 다 이런 삶의 장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타인을 덜 의식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이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합리적인 삶일 수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좀 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점은 좀 씁쓸하긴 하다. 가끔.   




 

  지난 화요일. 우연히 메일을 확인하다가, 제가 브런치북 수상자 후보란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그 날은 마침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이었고, 떨리는 마음에 브런치에 접속했고, 제가 은상을 수상했단 걸 확인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놀랐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쓰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독자님들 그리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냉전과 휴전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