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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May 17. 2017

결혼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11


 꿈? 그건 그냥 밤에 꿈으로 꿔!    


  나는 ‘1인 가구’에 대한 꿈이 있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는, 바스락거리는 하얀색 침구를 씌운 침대를 두고. 빈티지 스타일이지만 절대 빈티 안 나는 소파와 원목 가구들로 거실을 채우고. 밤엔 이 모든 것들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조명까지.

  그러나 자취생활을 13년이나 했던 남편의 말은 이랬다.     


  “침대와 책상만으로도 방이 꽉 차는 고시원 같은 원룸에 살다가. 가구가 필요한 넓은 원룸으로 옮겼을 때도 참았어.” 

  “뭘?”

  “취업하면 바로 결혼할 것 같았거든. 그래서 침대는 무료 배송되는 3만 원짜리로 샀고, 책상은 연구실에서 버린 거 주워왔고, 냉장고는 선배가 이사할 때 버리는 거 받았고. 나는 진짜, 금방 결혼할 줄 알았어. 근데 세상에나, 그것들을 5년이나 썼다!”    


  그러면서 남편은 말을 이었다.    


  “가구도 그렇지만. 내가 빨리 결혼하고 싶었던 이유는 ‘주말’ 때문이었어.”

  “왜?”

  “월요일 출근이 부담되니까. 주말에 혼자 집에서 쉴 때도 많았어. 그런데 언젠가 금요일 날 야구장에 갔다가. 토요일 일요일 모두 집에 틀어박혀 있었거든. 그리고 월요일 날 출근했는데, 나 완전 깜짝 놀랐잖아.” 

  “왜?”

  “야구장에서 응원한다고 소리 질러서 목이 쉬었는데. 그걸 월요일 날 아침에 출근해서 상사한데 인사할 때 알게 됐어. 

  “왜?”

 “주말에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몰랐거든.”

  “....!”

  “내가 그때 느꼈다니까!”

  “....?”

  “혼자 사는 게 좀 외롭다는 걸. 그래서 그 후로는 목 상태도 확인할 겸, 잠들기 전에 벽이랑 대화를 시도하곤 했는데....:

  “아휴. 거기까지!”

  “아무튼 그렇게 처절하게 혼자 살면서, 꿈이 생겼어.”

  “뭔데?”

  “결혼하면 아내랑 둘이 야구장 가고, 아이가 생기면 셋이 야구장 가고, 아이가 결혼하면 넷이 야구장 가고...”

  “그건 그냥 밤에 꿈으로 꾸면 안 될까?”        

 




  4시간이나 앉아있어야 한다고?    


  우리 부부는 결혼 2주년이 훌쩍 지날 때까지 야구장을 가지 않았다. 나라고 왜!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함께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특히 남편이 야구 채널을 켜놓고 소파에 널브러져, 심심한 아이의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냥 같이 가줄까?’ 했지만       


  “아까 나 낮잠 자기 전부터 야구 보지 않았어? 뭐야? 다른 경기야?”

  “아니. 아직 안 끝났어.”

  “뭐? 3시간 넘은 것 같은데?”

  “원래 4시간 정도 해.”

  “....”    


  그 좋아하는 영화도 제 아무리 스토리가 죽여줘도, 2시간이 넘어가면 온몸이 뻐근해지는 나다. 그런데 관심도 없는 야구를 야외에 앉아 4시간이나 봐야 한다고? 상상도 하기 싫은걸?

   

  “넌 뭐? 넌 내가 좋아하는 야구장 한 번 같이 가준 적 있어?”    


  어떤 일이 발단됐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말다툼하던 중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넌 항상 나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라는 주제로 항변하고 있을 때였다. 내 말을 다 들은 남편은 잠시 침묵하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또박또박. 모든 글자에 힘을 주어 저렇게 말했다.  




 그래! 가자 가! 일단 가보자!     


  그리하여 우린 결혼 2년 6개월 만에 야구장을 갔다. 더운 여름에 갔다가는, 공개적인 곳에서 남편과 싸울 것 같아서. 그나마 미풍이라도 맞을 수 있는 5월에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드디어 5월 3일. 나는 야구장을 만나러 갔다.     


  그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창을 열었을 때, 적당한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긴, 친구 중에는 야구장을 즐기는 여자 사람들도 꽤 많았다. 듣기로는 실제 경기장에 가면 응원, 치킨, 맥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지. 그럴 일 없겠지만, 영화만큼은 아니겠지만, 뭔가 내게 새롭고 신선한 기분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오빠! 친구들이 그러는데, 야구장에 치킨이랑 김밥 가져가야 한다며? 앞에서 파는 것보다, 직접 사는 게 낫겠지?”    


  일어나자마자 반소매 티셔츠에 가을 조끼와 검은 청바지를 입고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남편이 나를 훑어보다 물었다.

    

  “하루야. 그렇게 입으면 덥지 않겠어?” 

  “오빠! 아직 봄이고! 난 여자고! 거긴 야외야!”      


  들뜬 마음에 아파트 상가와 대형 마트를 오고, 가고, 뛰었다. 가방 안은 순살 치킨, 김밥, 과자 등으로 채워졌다. 이러고 보니 진짜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잠깐 밖에 나와 뛰었을 뿐인데. 이마와 등에는 물기가 차올랐다. 땀인가?

  



가깝지만 뜨거웠던 첫 좌석     


  나중에 야구장에 출발하면서 날씨를 확인해보니, 그 날은 봄이라 말하기엔 너무 뜨거운 날씨였다. 그래도 뭐, 어차피 그늘 밑에서 야구를 볼 텐데 큰 문제야? 나는 야구 모자를 머리 위에 눌러쓰고 거울을 확인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봄봄봄하며 나갔는데 뜨끈뜨끈한 여름이었다.


  그렇게 2년 6개월의 시간 끝에 야구장에 보였다. 고향이 수원이고, 오랜 시간 수원에 살았던 적도 있지만, 야구장은 처음이었다. 어디선가 야구장 앞에서 파는 치킨을 별로라는 댓글을 보고, 미리 준비해 왔지만 주차 후 야구장까지 걸어가는 10분 거리에는 수많은 김밥가게와 치킨집이 있었다. 난 도대체 아침에 왜 동네 주변을 날뛰었을까.    


 경기는 2시부터 시작이고, 우린 1시 50분에 도착했다. 그러나 입장하기 전부터 200미터 이상 길게 늘어선 줄이 나를 당황시켰다. 표만 확인하고 입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직원이 가방을 확인하는 시간들 때문인지,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2층까지 입장하는데 20분 이상 소요됐다. 남편은 기다리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관람했고, 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지루함을 달랬다.    


  “오빠 맥주! 응? 여기도 줄이네!” 


 야구장에서는 시원한 맥주가 진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편의점을 향했다. 그러나 야구장 입장처럼 긴 줄을 서야만 했다. 야구장에 입장하기 전부터 인내심이 바닥으로 툭, 떨어질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나의 표정을 살펴보던 남편은 본인이 사 오겠다며, 내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다.    

  

직사광선을 직선으로 2시간 넘게 받았던 자리.

  드디어 관중의 함성이 터지는 장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의 좌석은 어디인가. 기분 좋게 자리로 갔다. 그런데! 좌석을 보자마자 비명이 터질 뻔했다. 이유는 남편이 예약한 좌석은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직선으로 떨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후, 후, 후. 누군가 그랬다. 화내기 전에 일단 3초간 심호흡을 해 보라고.  

   

  “어때?”    


  그때 남편이 맥주를 사 들고 왔다.     


  “너무 뜨겁다.”

  “여기 비싼 자리야. 너 데리고 야구장에 오는 게 처음이라서, 내가 일부러 잘 보이는 자리로 예약했어! 봐봐! 진짜 가깝지?”

  “응. 정말 가까운데. 너무 뜨겁다.”






 야구에 빠진 당신의 추억, 그려보기 


  이날 경기는 롯데와 KT, KT와 롯데였다. 남편은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정확히 연습 유니폼이라던데)을 챙겨 입었다.


몸과 마음 모두 경기장을 향해 있던 남편.  

  남편에게 ‘야구’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향수라고 했다. 아버님이 사업으로 바빠지기 전까지는, 주말마다 가족 모두가 롯데 유니폼을 입고, 간단한 도시락을 들고, 야구장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가족 나들이로 야구장을 생각한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아이처럼 신난 남편의 모습이 이상하면서도 이해가 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보다 작고 밝은 남자아이였을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은 남편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렸을 적 남편의 얼굴을 낡은 앨범에서 본 기억이 있어, 금방 상상되고 바로 그려졌다. 산만하고 호기심 많았던 곱슬머리의 키 작은 남자아이. 아마도 야구장에 혼자 뛰어다니다가 길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며 어머님을 찾는 일을, 여러번 했을 거다.


  난 ‘나 몰라 스포츠 병’을 앓고 있다. 매번 설명을 들어도 이해 못하고, 이해했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스포츠의 모든 것. 이런 내게 남편은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야구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설명해 줬지만, 이번에도 나는 ‘아 몰라’라고 할 뿐이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허벅지를 태우는 직사광선과 검은색 바지뿐이었다. 그때 옆좌석에 앉은 여자가 남자 친구의 청바지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긴 바지 입고 야구장 올 생각을 했어?”    


  나한테 말하는 건가 싶었다.


  야구장의 함성과 유머에는 나름 메시지와 유머가 있었다.     


  “넌 내게 반했어! 강. 민. 호!”

  “오! 빠!라고 불러다오~”

  “대~호~ 대~ 호~”

  “마! 마! 마! 마!”    


  이건 다 누가 만든 구호이고, 응원가일까? 팀에서 직접? 아니면 팬들이? 아, 그렇지 각 팀마다 응원단이 있으니까. 응원단에서? 경기 틈틈이 궁금증이 번쩍거렸지만.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상태였다. 그저 KT 관중석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을 보면서, 맥주를 들이켤 뿐이었다.  평소라면 맥주 1병도 못 마시는 나지만, 50분 만에 1병을 비우고, 무서운 낮술에 취해서는 남편의 어깨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마! 한~병~더!”




  패배로 예상됩니다만     


  미지근한 물로 한 시간을 더 버텼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오빠. 난 도저히 안 되겠어. 나가서 기다릴 테니까. 다 보고 나와.”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외식을 갈 때면, 아빠는 꼭 먼저 밥그릇을 비운 후에 ‘다 먹고 나와’라고 했었다. 그때 그 말이 참 싫었다. 근데 내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올 줄이야.




  나의 칭얼거림에 참다못한 남편이 자리를 옮기자며 일어섰다.     


  우린 그렇게 선수들의 모습은 훨씬 멀리 보이지만, 그늘이 가까이에 있는 자리로 옮겼다. 그제야 주변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야구장은 연인, 친구, 가족끼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롯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전광판 숫자를 봐도 그렇고 오늘 남편이 응원하는 팀은 패배할 예정인 듯했다.

    

  “오늘 진 거지?”

  “아냐! 야구는 끝까지 봐야 해.”

  “다들 응원하는 목소리도 작아졌고. 다들 졌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오늘 응원단이 안 와서 그런 거야.”    


 반면 반대편 관중석은 갈수록 힘이 넘쳐났다. 결국 이날 남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나의 예상대로 그가 입고 온 유니폼의 팀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시들시들하던 남편이 출입구를 빠져나오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어! 우리 저기 가보자! 응?”    


  그가 끌고 간 곳에는 선수들이 타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해 본 적 없는 덕후질을 30대에 하는 건가? 창피했지만, 4시간도 버텼는데 이걸 못 버텨? 남편의 손을 잡고 사람들의 틈을 파고들어 선수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선수들은 지친 표정으로 하나 둘 버스로 올라탔다. 한 사람 한 사람 나올 때마다. 남편과 사람들은 구호와 응원가를 다시 외쳤다. 그중에서도 어떤 아이는 목이 터지라고 선수들의 이름을 지르고 응원가를 질러서인지. 옆에 있던 아빠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빠 퇴근하고 들어올 때도 좀 이렇게 반겨봐라!”




  또 갈 마음은 없지만    


  다음날 친정 부모님과 조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9살 조카가 내게 물었다.    

  

  "고모! 열사병이 뭔지 알아?"

  "오~ 어려운 단어네. 그거 무슨 뜻이야?"

  "더운 곳에 오래 있으면 생기는 병인데. 심하면 죽을 수도 있데."

  "진짜? 그래서 어제 고모가 죽을 뻔했나 봐."

  "왜?"

  "어제 고모부한테 끌려서 야구장 갔거든. 어제 엄청 더웠잖아. 나 거기서 4시간이나 있었어."

  “헐. 야구장은 지옥인가 보네. 난 절대 가지 말아야지.”    

  “그러게 나도 다신 안 가려고.”    


  운전 중이던 남편이 나를 잠시 째려봤지만, 난 진심을 꾹 눌러 담은 농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저녁 경기 가면 시원해.”

  “.... 응....”


남편은 버리라고 했지만, 난 나의 첫 작품을 버릴 수 없었다.


  또 갈 마음은 없지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건 시원한 에어컨 앞에 앉아서, 못 그리는 그림 실력으로, 남편의 얼굴을 못나게 그리는 거다. 이건 내가 결혼하면 하고싶었던 일이다. 
  남편 얼굴 그려보기. 손수. 못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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