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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pr 20. 2017

냉전과 휴전 사이

여보, 우리 오늘 좀 싸울까?-9


  얼마 전, 우린 또 부부싸움을 했다. 늘 그렇듯 다툼은 사소한 지점에서 출발 ‘냉전’이란 종착역에 들어선 후에야,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었다. 그러나 이미 우린 상대에게 뱉어버린 칼날 같은 단어에 엉망이 된 후였다. 이쯤 되면, 내가 실수한 걸 알면서도 상대가 먼저 인정할 때까지, 나도 꼼짝하지 않겠다는 억척스러운 고집이 장착된다.    




  연애할 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이별할 땐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다. 그렇게 결혼한 후에는, 위와 같은 두 가지 마음과 더불어 한 가지 마음이 더 추가된다. 어쨌든 내 상처가 상대방의 상처보다 더 크다고 착각하는 마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크기를 줄여갈 수 있는 마음이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자신의 통증만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다행인 건. 둘 다 B형이라 그런가? 난리 치며 싸워도 돌아서서 혼자의 시간을 갖고 나면,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 다시 차분하게 대화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좀 달랐다. 상대방과 대화하고 싶어서 3일을 넘기지 못하던 우리의 침묵이 일주일 이상 이어졌기 때문이다. 집이 좁다 보니 움직일 때마다 서로의 어깨는 닿지만, 서로의 시선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를 유령처럼 대하던 어느 날. 회사에서 근무하는 시간에는 카톡도 잘 보내지 않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간 대화가 없어서일까. 진동과 함께 휴대폰 액정 보이는 남편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뭐랄까. 몇 년간 연락하지 않고 지낸 친구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 온 느낌?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게다가 사이도 썩 좋지 않았던 그런 친구.  

       

  “왜?”    


  회사에서 일하다 말고 사과하려고 연락한 건 아닐 테고. 궁금했지만 최대한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장모님께 전화받았어? 아버님이 병원에 계신 가봐.” 




  퇴근 후 우린 아빠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집으로부터 4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남편은 운전하며 앞만 보고,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들 돌려 창문에 비친 풍경만 응시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할 때쯤, 남편이 먼저 정적을 깼다.

    

  “뭘 좀 사 가야 할 것 같은데...”    


  긴 시간 입을 다물고 있어서인지,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아, 겨우 목청을 가담은 후 대답했다.    


  “일단 가자.”        


 병실로 들어서자 아빠가 누워있었다. 남편과 나를 발견한 아빠는 짜증 아닌 짜증을 냈다.    


  “니들 평일에 여길 왜 왔어? 주말에 오지”

  “오늘 장모님께 안부 전화드렸는데, 병원에 계시다고 해서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유난들이야!”

  “4일 전에 입원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주말쯤이나 전화하려고 했지. 니들 회사 다니느라 바쁘기도 하고.”    


 다쳐서 병원에 누워있는 아빠와 일주일 넘게 불편하게 지낸 남편의 대화를 듣다 보니, 미안함에 가까운 뜨거운 무안함이 솟구쳐 벌컥 화를 냈다.    


  “아빤!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늘 조심 좀 하랬잖아! 그리고 왜 입원했다고 전화를 안 해! 아휴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우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차가운 침묵은 아니었다. 서로에게 뿜어대던 싸늘한 기운은 사라졌으니까. 그래서 더 서먹했다. 병원에 출발할 때처럼 남편은 운전하며 앞을 바라봤고, 나는 고개를 돌려 창문만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때 내 눈 속으로 질주하듯 달려드는 풍경에, 조금 어지럽고, 조금 메슥거릴 뿐이었다.          




  집에 도착한 후, 우리 부부는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라면 서로 원하는 채널을 보기 위한 ‘리모컨 신경전’이 벌어질, 금요일 밤 9시였다. 그러나 우린 평소엔 관심도 없는 프로그램을 켜놓고 시청하는 척할 뿐이었다.    


  “출출하지 않아? 지금 몇 시지?”    


 뻔히 텔레비전 위에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있었지만, 남편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먼저 말을 걸었다.  

  

  “9시”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순간 나 단호한 내 목소리에 스스로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얼마간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거실에는 귀속까지 전달되지 않는, 텔레비전은 시끌시끌한 소음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이번엔 내가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    


  “뭐 좀 시키던가.”  

  "그럴까? 그럼 피자 먹을까? 아, 그리고 내일은 아버님 병원 몇 시에 갈까?



  

   우리의 문제로 냉전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우리들의 문제로 휴전을 시작했다. 이것이 연인과 부부의 큰 차이점 인지도 모르겠다. 예민해진 감정을 달래기 전에, 자연스럽게 앙금을 풀고, 함께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게 부부인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부를 파트너라고도 부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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