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13일 차
그야말로 뜨겁다. 하루 한 명 또는 여러 명이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한다. 이제는 포털사이트에 누군가의 이름이 올라오면…. 설마, 또? 하며 가슴이 철렁한다. 매일 쏟아지는 소식에 불편한 마음이다. 하지만 악용되어 하루아침에 끝나 버릴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미투(#MeToo) 운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봤니?”
“봤어.”
“대박!”
“진짜!”
한 달 전에도, 어제도, 친구와 나의 반응은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공감의 정도였다. 처음 한 여검사가 직장 내 성추행을 밝힐 때는 ‘충격적인 사건’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우리 가까이에… 혹은 우리에게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됐다.
시기와 사건의 크기가 다를 뿐. 우리의 기억 속 어딘가에는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다 지난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가끔 생각나는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A는 24살에 중견기업 인턴이 됐다. 사실 그때 그녀는 어학연수를 떠날 참이었다. 취업이 쉽지 않기도 했지만, 인생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20대였기 때문이다. 1년간의 해외생활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자신 없었다. 그래서 어학연수를 준비하면서도 틈틈이 이력서를 넣었다. 어디 한 군데 걸리기만 해봐라! 마음속엔 이런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다 덜컥 합격한 곳이 한 중견기업 인턴이었다. 어학연수를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A가 일하게 된 팀은 남자가 많았다. 그것이 그녀가 ‘홍일점’이라 불려야 할 이유였던 것 같다.
화사한 색상의 원피스를 즐겨 있던 A는 무채색의 남자들 사이에서 튀는 존재였다. 몇몇 직원들은 ‘네가 팀 분위기를 살린다.’ 또는 ‘A 씨 남자 친구는 참 좋겠다.’라는 식의 불필요한 말을 던졌다.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칭찬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늘 예쁘고 꾸몄고 상냥한 태도로 사람을 대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때였다.
남자가 많은 팀이라 그런지. 아니면 10년 전이라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좀 거칠었다. 직급 대신 야, 너, 이 새끼야 같은 말들로 상대를 불렀고. 회식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장을 보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마시자. 취하자. 그렇게 시작된 회식이었다.
A는 주량이 약했다. 더 큰 문제는 술버릇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취하면 기분이 오락가락하곤 했다.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춤을 추고, 대부분의 취한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회식이 두려웠다. 술이 무섭게 싫었으니까.
그래서 회식 때마다 취한 척을 했다. 아주 얌전하게 말이다. 그날도 술 한 잔을 받아 마신 후, 양 볼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도 계속 술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더는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A가 취하지 않는다고. 다른 이들도 취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당시 회식장소는 바닥에 앉아야 하는 삼겹살집이었다. 치마를 입은 그녀는 불편한 자세로 앉아 앞치마로 다리를 덮고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술자리는 서서히 자리도 섞이고, 취한 사람들이 늘었다. 그녀는 적절한 타이밍에 회식 자리를 도망치려 했다. 취한 척하고 앉아서, 진짜 취한 사람들 받아 주는 게 고역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누군가 앞치마로 덮어둔 그녀의 다리에 손을 올렸다. 보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과장이었다. 처음에는 취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적당히 다리를 움직여 방향을 바꾸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과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A의 다리를 꽉 잡고, 앞치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의 거칠거칠한 손이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순간 A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훗날 한 여검사가 성추행당했던 순간이 환각이라 착각했다고 말했는데…. 딱 비슷한 기분이었다. 환각. 설마,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과장의 손이 치마 밑단으로 올라올 때쯤, A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갔다.
다음날 A는 과장에게
“어제 제 다리를 만지셨어요.”
라며 어렵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진짜? 내가? 나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나는데? A씨도 어제 취했잖아. 착각한 거 아냐? 비틀거리다가 부딪칠 수도 있고….”
미안해요. 사과부터 했어도, 때가 지고 얼룩이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 터였다. 그런데 그는 ‘술 탓’과 ‘네 탓’으로 돌렸다.
끝내 그에게 사과를 받지 못한 A. 하루하루 쌓여가는 억울한 감정들이, 명쾌했던 그녀의 일상을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당한 사람만 시간과 감정을 쏟아야 하는가. 불공평하게.
“신고해.”
“증거는?”
“어쩌겠니.”
많은 사람에게 받은 조언도 결국 소모적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랬다.
똥 밟은 셈 치자.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그녀가 바지를 즐겨 입게 된 시점 말이다.
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홀로 해외 생활을 한 탓일까. 취업은 꼭 한국에서 하고 싶었다. 이것이 두고두고 후회할 선택이란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첫 직장은 한국의 한 무역회사였다.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 탄탄한 회사라는 얘기를 듣고 선택한 곳이었다. 업무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시 퇴근이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야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애매하게 7시에서 8시쯤 퇴근하곤 했다.
그때 만난 ㄱ상무님을 만났다. 중년이었지만, 동안이었고, 패션 감각이 뛰어났고, 유머러스했고, 외국어 실력이 뛰어났다. 상무님은 유독 해외 출장이 잦았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마주친 건 10번이나 될까? 그랬던 것 같다.
그랬던 상무님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 건. 입사한 지 두 달이 됐을 때였다. 일본이었던가. 중국이었던가. 아무튼 아시아 어디론가 출장을 가 있던 상무는 B에게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업무적인 내용이었다. 서류를 메일로 보내 달라. 서류를 확인해 달라, 등의 사소한 잡무였다. 지금 생각하면 임원이 막내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게 이상한데? 하고 생각했을 텐데. 그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몰랐으니까. 사회생활이 처음이니까.
“B 씨 오늘 한국은 날씨도 좋다던데, 남자 친구랑 데이트 안 가요?”
와 같은 문자를 보냈지만 의심하지 못했다. 이런 모지리.
이상하다고 느낀 건 세 달이 지난 후였다. 유럽으로 출장을 간 상무는 어떤 날은 관광지 사진을 보냈고, 또 어떤 날은 음식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혼자 먹으려는 쓸쓸해 ㅠㅠ”
흠…. 입사 후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이었다. 도대체 저런 메시지에는 어떤 답변을 날려야 하는 거야?
“고생이십니다 ㅠㅠ”
20분 넘게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만들어진 적절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몇 분 후 답장이 왔다.
“B 씨랑 같이 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쓸쓸하지 않게…. 다음에 한국에서 같이 식사 한 번 하시죠^^”
응? 응? 응? 이건 마치 연애의 기폭제를 만들기 위한 썸남의 행동과도 같았다. 설마. B는 혹시 자신의 도끼병이 사회생활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네. 다음 회식 때는 꼭 상무님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5분 후, 띵~동.
“난 B 씨랑 단 둘이 보고 싶은데^^ 데이트 신청입니다”
유부남.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아버지. 밖에서 만났으면 그냥 아저씨. 회사에서는 17살 많은 세대 차이 확실한 상사. 그녀는 남자 친구가 있다고 말한 24살 신입. 그런데 뭐? 게다가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라니. B의 남자 친구를 무시한 걸까. B가 쉬운 걸까. 두려웠다. 상무님의 메시지로 인해 첫 직장생활의 즐거움이 산산이 조각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비결 좀 알려줘요^^ 그렇게 잘 먹고도 각선미가 미끈하고 탄탄한 비결이요. 비결이 아니라 그냥 타고난 건가?”
“내가 요즘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배에 왕자가 생겼네요. 누가 봐줬으면 좋겠는데, B 씨가 좀 봐줄래요?”
예상대로였다. 점점 대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더 무서웠던 건. 얼굴을 보고는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문자와 전화로만 했다. 이런 것도 변태의 한 카테고리일 텐데….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지.
“내가 다음 출장은 B 씨랑 같이 가는 거로 얘기해 뒀어. 이번에는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아. 같이 에펠탑도 볼 수 있겠다. 설레네^^”
이 메시지를 확인한 날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리와 과장이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끝까지 상무와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성적인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한 건 더더욱 아니고. 무엇보다 이런 경우 친근함의 표시라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극적인 저항이 아닌 소극적인 저항. 또는 증거가 없는 경우. 짐작만으로 덤볐다가는 자신에게 더 큰 불이익이 돌아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었다. 지인의 조언대로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단호박녀가 된 것 말이다. 차라리 내가 먼저 미친개처럼 굴면 미친개들이 나를 물지 않겠지. B는 이렇게 믿었다. 실제로 능글거리는 남자 상사에게 단호박으로 대처하면, 미움을 받을지언정. ‘여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아 편했다.
글로 이 얘기를 쓰는 건 처음이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일이지만 글로 정리하기 싫었던 까닭은, 나를 삐딱한 사람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친절함을 경계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착한 사람을 의심한다. 아마도 그 일 때문에….
10년쯤 전에, 지금은 사라진 회사의 매거진 팀에서 3개월 간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다. 대학을 막 졸업했던 시기. 나는 의욕이 넘쳤고….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좀 순진했다. 사람의 첫인상을 잘 믿었으니까.
그때 팀의 편집장은 30대 후반으로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이제부터는 편집장으로 쓰고 싶지 않으니. C 또는 그놈이라 부르겠다. C는 키가 작고 좀 통통했다. 얼굴은 좀 까만 편이었는데, 안경 탓인지 잘 웃는 탓인지. 굉장히 선해 보였다. 브라운 색상의 곰 인형(?) 같은 비주얼로, 무늬가 들어간 남방과 면바지를 즐겨 입었다.
“이거 내가 직접 찍어준 아내 사진이에요.”
입사한 날. 인사하는 내게 그놈은 책상 위에 있는 액자를 꺼내 보여줬다. 전문가에 가까운 사진 솜씨였다. 사진 속 여자는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눈이 컸다. 그리고 배가 꽤 나와 있었다. 행복한 미소로 사진을 쳐다보던 C가 말했다.
“3달 뒤에 출산해요.”
당시 팀은 나를 포함한 3명의 기자와 1명의 편집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명의 선배 기자 중 30대 초반이었던 P선배는 좀 까칠했다. 8살이나 어린 내게 늘 존댓말을 썼지만, 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루씨. P기자가 좀 쌀쌀맞지? 어려워 말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내게 물어봐요.”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안 건 지. 입사 3일이 되던 날. C가 내게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부터 나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C에게 물었다. 그놈은 가끔 퇴근 후에도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로 어려운 일은 없냐. 오늘 좀 힘들지 않았냐. 하는 등의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고마워했다. ‘참 친절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 달 반이 흐르고 드디어 내게도 인터뷰 기사가 주워졌다. 첫 인터뷰, 첫 기사. 무척 떨렸다. 당시 나의 인터뷰이는 한 배우였는데, C가 갑자기 그 기사의 사진을 본인이 직접 찍겠다고 했다.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있음에도 편집장이 직접 나선다는 게, 이상했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인턴 기자가 실수할까 봐. 배려하려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세상 참 따뜻한 줄 알았지.
열심히 준비했지만 어색하게 시작해서 투박하게 끝난 첫 인터뷰. 긴장한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와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퇴근 시간이기도 했고….
“하루씨. 오늘 고생했는데 같이 밥 먹고 가자. 내가 사줄게.”
괜찮다는 데도 붙드는 C와 나는 삼겹살집에 갔다. 식사하며 술도 마셨다. 그놈은 자신의 첫 직장에 관한 얘기부터. 회사와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C는 아내와 8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했다. 아내를 참 사랑한다고.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대단하다, 멋있으시네요, 와 같은 추임새를 넣어줬다.
“그런데, 아내를 여자로 사랑하는 건 아니야.”
술이 살짝 취한 C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은 또 다른 것 같아. 하루씨는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진짜 어른의 세계는 좀 달라. 아내와의 잠자리에선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아. 육체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야. 이럴 때 보면 인간은 진짜 동물인가 봐.”
정확한 말은 기억나진 않지만 대강 저런 얘기였다. 나는 그놈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지금 와서 후회되는 건. 그때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황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삼겹살집을 나온 나는 C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놈이 집에 가려는 나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하루씨. 오늘 집에 들어가지 말고, 나랑 같이 있자.”
지금 와서 후회되는 또 한 가지. “야 이 미친놈아!”라는 말 대신 “왜 이러세요!”하며 그놈의 손을 뿌리친 것이다.
그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상냥했던 C는 본색을 드러냈다. 거절한 내게 업무적인 불이익과 화풀이를 시작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터 기자에게 ‘기사를 이따위로 밖에 못 쓰냐.’며 교정지를 내 얼굴에 던진 일이었다.
그러나 나를 더 경악하게 했던 건.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선배 P가 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건. 그놈 때문이었다. 같이 외근을 나갈 때마다 모텔을 가자고 한다거나. 성적인 농담으로 괴롭혔다고 했다. 그리고 P선배 외에도 다른 팀 여직원에게는 지속적으로 연애편지를 보냈다고….
결국 이 사실을 회사 임원에게 고발한 건 나였다. 다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임원을 찾아가기 직전. C가 나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너 이 바닥에서 매장당하고 싶냐? 내가 너 하나 매장시킬 힘은 있어.”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 막 시작한 사회생활. 이쪽 분야에서 일을 관두면 그만이었다. 아직 많은 시간을 쏟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나는 임원실로 향했다.
회사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C가 자발적으로 퇴사하도록 했고, 피해자들에겐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는 인턴 기간이 끝나고 관두겠다는 내게, 회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 꺼내봐야 회사도 회사지만 너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처음 그놈의 성추행에 대해 고발한 임원이 내게 충고랍시고 했던 말이었다.
몇 년 후. 그 회사에서 일한 경력 증명서를 받으려 연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번호는 없는 번호로 나왔고. 알아보니 폐업한 상태였다. 그 소식에 통쾌함보다 씁쓸함이 더 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을 크게 만들지 마라.
원래도 좀 차가운 사람이었던 나를, 본격적으로 삐딱하게 만든 건 이 말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모두에게 존재할 크고 작은 이런 기억들이, 용기 내어 세상 밖으로 쏟아지고 있는 요즘. 더는
똥 밟은 셈 치자.
그냥 미친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일을 크게 만들지 마라.
하는 식으로 문제를 피해자의 몫으로 방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투 운동이 공평하고, 평등하고, 깨끗한 사회로 성장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이슈 거리. 남자와 여자 또는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계기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같이 잘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