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스럽지 않은 그윽한 온도
손 잡는 것을 좋아한다. 손을 잡고 있으면 어쩐지 그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알 것만 같다.
"오늘 많이 힘들었어?" 그가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오늘 정말 죽을 뻔했는데. 아, 죽을 뻔했다는 건 좀 그렇다. 그만큼 많이 힘들었단 뜻이야."
고양이 발바닥의 핑크젤리 정도는 아니지만 쫀득한 모찌 같다는 말을 종종 들어 탄생한 손바닥 부심은 어느새 과거의 영광이 되었다. 사계절 내내 피와 딱지가 아물지 않는 왼쪽 엄지 손가락만 봐도 그렇다. 여러 해 약을 발라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만을 반복하다가 결국 곪아버린 손가락은 지금의 나를 닮았다. 수년을 방황하다 이제야 그 변덕을 멈췄는데 남은 건 곪은 엄지 손가락뿐이다.
"내가 그때 좀 더 강인한 마음 가졌다면 어땠을까? 조금은 다르게 살고 있었을까?"
"어쩔 수 없어.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소용없어. 다시 돌아갈 순 없으니까."
거의 똑같은 패턴의 진부한 질문이 이어진다. 이런 대화는 되도록 피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술을 마시게 될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하지 않아도 될 생각들을 하느라, 되돌릴 수 없는 질문들을 하느라.
"안 되겠어. 오늘은 정말 마셔야겠어. 참을 수가 없어."
"그럼 내일 아침 손가락 상태가 더 심해질 텐데?"
"상관없어. 피는 원래 매일 나. 그리고 이렇게 아플 거면 차라리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후회할 텐데..."
이제는 색까지 변해버린 붉은 왼쪽 엄지를 그윽이 눌러본다. 이보다 더 아파질 거라 상상하니 너무나도 끔찍하여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억지로 구겨 넣는다. 오늘도 덕분에 유혹을 참았다.
"나 안 아프게 손 잡아줘. 그리고 위로해 줘."
티 나지 않는 온기가 어리광 섞인 심술을 잠재운다. 이보다 더 고요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