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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Dec 08. 2022

오랫동안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하는 고민들

내가 노동에서 찾고 싶은 가치

삶이란 '노동'이다. 


잠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출퇴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대부분은 노동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삶이란 곧 노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만족스러운 일을 하고 있나요?' 혹은 '당신은 즐겁게 일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당신은 행복한가요?'라는 물음과 거의 비슷한 효력을 가진다.

행복이 별건가. 나는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영위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나의 노동의 결과물에 보람을 느끼는 것. 행복을 이루는 부품이라는 게 있다면, '행복한 노동'은 분명히 핵심적인 부품일 거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를 찾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당 요리사를 생각해 보자. 최근에는 배민이나 요기요 같은 플랫폼이 광범위하게 활성화가 되어 있어 플랫폼 매출이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요리사는 원격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내가 요리한 음식을 어디 사는 누가 먹는지 전혀 모른 채로 판매하게 된다. 누가 배달하는지도 기사가 배정되기 전까진 모르고, 잘 먹었는지조차 모른다. 결제도 대면이 아닌 플랫폼을 경유하여 비대면 결제가 이루어진다. 음식의 생산자-배달자-소비자가 완전히 단절되어 있어, 노동은 파편화되고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계화'된다. 이는 비단 요식업 종사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회가 비대면사회로 갈수록,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수록 심화되는 문제에 가깝다.

한편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 등으로 엄청난 자본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투자가 광범위하게 보편화되면서 '노동소득'의 가치가 폄하되었다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 된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소위 '불로소득' 신화를 만들어내면서 '파이어족(30~40대에 경제적 자유를 이뤄 빠르게 은퇴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들의 이야기를 널리 퍼뜨린다. '정직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짐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심어준다.


결국 노동은 '돈을 버는 행위'로만 빠르게 국한된다. 대한민국의 유난히 긴 노동시간과 상당한 임금격차, 살인적인 경쟁, 남과 비교하는 문화 등은 노동 환경을 크게 악화시키고,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착취당하고 소모되게 만든다. 이래저래 노동은 끔찍하고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고 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작년에 나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행복하게 오래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노동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볼수록 너무 무서웠다. 나는 저렇게 일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행복하게 오랫동안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대학생활 4년을 모조리 투자해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먼저였다. 나는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었다.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돈을 바란다면 절대로 피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고, 출판계가 사양산업이라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지식산업을 선도하고, 지식의 보고이자 물성을 가진 정보 매체인 '책'을 만드는 행위가 너무 고귀하고 아름다워보였다. 내가 책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이었을 거다. 소비자(독자)가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상상하고, 저자와 호흡하며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매우 올드한 '책'이라는 정보매체가 내겐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돈과 직업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 출판 업계가 박봉이라는 사실은 지나가는 사람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었고, 매우 높은 이직율과 산업의 쇠퇴를 간접적으로 지켜보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실제로 출판계는 신입을 거의 뽑지 않았고, 출판계를 이탈하는 인력도 상당히 많은 업계였다. 못 먹어도 고?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된다. 내가 생각한 정답은 이것이었다.


내가 과연 출판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꼼꼼하게 돌아보고, 확신이 든다면 업계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최고'가 되는 것.


대한민국의 출판계 트렌드를 선도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 내 손을 거치면 어떤 원고든 매력적인 책이 되고,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를 시의적절하게 만들어내는 사람. 기획, 편집, 디자인, 유통, 홍보 출판의 전 과정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전두지휘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단단하고 촘촘하게 성장한 편집자가 될 수만 있다면, 물질적 보상 또한 저절로 따라올 것이고, 설령 대한민국 출판계의 절반이 폭삭 망하더라도 나는 최후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대외변수에 상관없이 나 스스로 우뚝 서서,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될 수 있다면 현실적인 고민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취준을 하면서 끊임없이 내게 물었던 질문은, "단순히 독자로서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드는 행위(출판)을 깊이 갈망하는 것이 맞니?"였다. 나중에 돌아볼 때 후회가 없을 정도로 지독하고, 철저하게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답을 찾았다.

스펙을 쌓는다거나, 조건이 좋은 회사를 찾는다거나 하는 것들은 나중 문제였다. 내가 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으려면,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정확하고 솔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치열하게 질문과 씨름하며 6개월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9월, 어느 작은 출판사에 입사하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마음속 깊이 세웠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일생일대의 도전이고, 어쩌면 대한민국 출판업계에서 나만의 판을 새롭게 짜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원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노동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퇴근할 때야 당연하고, 출근할 때도,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기대감에 살짝 부푼, 즐겁게 재밌게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이룩한 '평원'에서 편히 쉬기 위해 열심히 하는 삶. 

오늘 내가 휴식을 취하는 건 내일 출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오늘 출근하는 건 직접 내 손으로 가꿔온 '휴식의 땅'에서 편히 쉬기 위한 것이다. 내게 그곳은 타인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오로지 '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출판계의 새로운 신세계이다.


5년, 길면 10년 안에 반드시. 신세계에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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