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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Feb 04. 2023

신춘문예 등단! 본심까지 갔지만 결국 포기한 이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스물다섯 살, 그러니까 대학 4학년 때 신춘문예에 도전했던 적이 있다. 혼신의 힘을 쥐어짜내 국문과에서 4년간 배운 모든 것을 한 편의 글에 남김없이 쏟았고, 후회 없는 글을 완성해냈다. 내 인생의 마스터피스였다.

그 원고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분에 응시했고, 떨어졌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재도전을 통해 같은 원고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투고해 본심에 오르게 된다.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심사평. 본심에 이름이 올라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더이상 새로운 평론쓰지 않았다. 신춘문예 등단을 노리고 썼던 그 원고를 약간 수정해서 여러 차례 공모전에 제출하긴 했지만 진정한 도전은 거기서 끝이었다. 

자신감이 대단했던, 교수님과 주변 문인들에게 나름 인정(?)도 받았던 나는 꾸준히 글을 쓰지 않았을까. 본심에 오르고, 다음에는 최종심에 오르고, 좀 더 매진한다면 분명히 등단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빨리 포기했을까? 오늘은 내가 문학을 더이상 맘놓고 읽고,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도전했던 영역은 '문학 평론' 부문이었다. 문학 평론은 신춘문예에서 독특한 특징이 있는 부문인데, 등단자의 90% 이상이 석박사 학위 소지자이며 대부분 명문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 같은 비명문대 학부생 나부랭이(?)는 신춘문예 평론 등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19년에 굉장한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1년 동안 함께 문학동아리에서 시를 읽고 썼던 과선배 형이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나는 시, 소설 창작보단 이성적인 측면이 강하고 분석을 요하는 평론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성향적으로도, 재능적으로도. 형이 평론으로 등단한 건 내겐 정말로 깜짝 놀랄 사건이었다. 학부생도 글만 잘 쓴다면 평론으로 등단할 수 있는 거였구나,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될 이유가 없었지만, 그때는 당시에는 정말 놀라웠다. 형이 등단하는 걸 보곤,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열심히 시집을 읽으면서 스터디도 하고, 대외활동도 하고, 철학 수업도 들으면서 1년 뒤를 준비했고, 2021 신춘문예에 도전하게 된다.

  


대학생 시절의 나는 상식적인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과도했다. 당시의 나는 단번에 등단에 성공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평론의 경우에는 경쟁률이 훨씬 낮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춘문예 등단은 수백,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데도 단번에 등단할 수 있으리라 확신을 할 정도로 나는 자신감이 무척이나 높았다.

처음으로 도전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낙방하자, 나는 '심사위원들의 안목이 구져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라고 생각했다. 겸손이라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건방진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지만, 매사에 철두철미한 스타일인 나는 떨어졌을 때를 대비한 플랜B, 플랜C를 세워놓고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국 심사평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 때, 프로의 세계에서 응답이 온 것 같아서 기뻤다. 이 일을 계기로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단 한 편의 평론만을 썼을 뿐,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1. 20~30년 전에는 신춘문예 등단이 대단한 동네 경사이고, 등단만 한다면 작가 생활이 어느정도 보장될 정도로 대단한 명예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신춘문예나 공인된 작가에게 별 관심이 없다. 지방 신문, 소규모 문학지 등을 다 합치면 한 해 등단자가 100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들은 등단과 동시에 각자도생의 세계로 들어간다(그리고 상위 5%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등단을 해도 명예도, 권력도, 돈도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신춘문예 등단 작가들의 삶은 너무 고달프고, 가난했다.


2. 그래서 나는 신춘문예 등단에 쓸데없고 비현실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그것을 수단으로, '스펙'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문학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지원할 때 써먹으려고 했다. 문학이 너무 좋고, 재밌고, 읽고 쓰는 게 행복해서 글을 썼다는 것도 30%의 동기를 주긴 했지만, 나머지 70%는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등단보다 취업이 먼저 되어버렸다. 원래 희망했던 문학계가 아닌 교육계 출판사로. 내겐 등단에 도전할 이유의 70%가 사라진 셈.


3. 등단을 하면 문단에 소속된 문인이 된다. 난 문단이 별로 안 좋아보였다. 미투 사건, 저작권 의식 부재, 표절 의혹 등등 고여서 썩은 물에서 발생할 법한 사건사고도 많았고, 패거리 문화나 학연혈연지연 문제도 뿌리 깊어 보였다. 어차피 등단을 했더라도 문단에 맞춰서 살아갈 생각은 없었다. 내 맘대로 마구 글을 쓰고, 비판할 게 있다면 과감히 비판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나는 문학계에 대단한 뜻도, 기대도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4. 독립해서 먹고살다 보니, 그리고 돈공부를 하다 보니 이제는 더이상 문학에 심취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문학이 설파하는 메시지, 비물질적 가치에 대해 예전만큼 동의가 쉽게 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많은 시간과 큰 노력을 요구하는 평론 글쓰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5. 한바탕 원고 투고가 끝나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평론을 다뤘던 시집의 작가이신 시인님이 운영하는 인스타 채널이 있다. 그 분은 거기서 매주 온라인 낭독회를 진행했는데, 그곳에 약간의 후원금과 함께 내가 쓴 미발표 평론을 보낸 적이 있다. 시인님이 내 평론을 낭독하시는데,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텍스트 낭독말곤 사적인 얘기를 안 하던 그 분이 "언젠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그 순간, 아! 이 원고로 등단은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고, 이런 재밌는 체험도 했으니 이제 족하다, 충분히 글의 효용을 다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만족을 했으니, 평론을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에 아쉬움은 없다.



신춘문예 등단에 도전하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 나는 조금 다른 글쓰기를 한다. 창작시를 수십 편씩 쓰고, 날밤을 새면서 평론을 쓰던 시절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어떤 글을 쓰는지는 달라지더라도, 나는 꾸준히 글 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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