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메스 Dec 19. 2022

직장인들 울고 웃기는 최고의 블랙코미디 드라마

<사막의 왕> 아직도 안 본 사람?

돈 받으려고 일하는 거지, 일에 의미니 가치니 그런 게 어디있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일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부던히 애를 쓰는 편이긴 하지만, 저런 말을 쉽게 부정하기는 몹시 어렵다. 누구나 직장생활에 지치고, 번아웃이 오고, 돈 때문에 자존심을 구기거나 억지로 굽혀야 하는 상황을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오함마로 뒷통수를 시원하게 한 대 때리는 드라마를 만나게 되었으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D.P.>의 원작자 김보통 작가님이 감독/각본을 맡은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사막의 왕>을 봤다. 사회의 부조리를 군대에 접목하여 날카로운 비평과 깊은 메시지를 던진 작가답게 차기작도 범상치 않다. 21세기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이토록 처연하고 웃긴 블랙코미디 드라마라니,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6화까지 다 봤다.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자, 사막으로 과감히 발을 딛어라! 내가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본 관전 포인트 몇 개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열정과 긍지가 돈만 바라는 욕심으로 전락하는 과정

"맨홀 뚜껑은 왜 동그랗나요?" 최종 면접에서 나온 질문. 과학적 원리를 설명한 지원자도, 발상의 전환을 한 지원자도 다 떨어졌다. 주인공 이서(정이서 분)는 "글쎄요.. 그냥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죠?"라고 대답하고, 대기업 문 팰레스(moon palace)에 최종 합격한다.

이때부터 싸~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이 기업은 생각이 없는 사람, 의심하지 못하는 사람을 처음부터 원했다. 하지만 당장 먹고살 길 급한 이서가 물불 가릴 쏘냐. 굴지의 대기업에서 뽑아줬으니 무조건 들어간다.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첫 출근을 한다.


출처: 왓챠 오리지날


근데 이 회사 이상하다. 팀명이 '메타버스유비쿼터스NFT디지털컨버젼스딥러닝빅테이터TF'라고? 요즘 유행하는 단어를 죄다 넣어놓어서 뭔가 있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이름이다. 출근하면 시키는 일은 종이에 동그라미만 빽빡하게 채워 깜지를 만드는 일. 다 그리면 지우고 세모를 그리게 시킨다. 이 팀에 속하는 팀원들은 23층까지 걸어 올라와야 하고, 12시 땡 하면 정해진 식사를 정량대로 먹어야 한다. 아무도 왜 이걸 하는지 묻지 않고, 시스템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 월급을 620만 원이나 주니까.

거칠고 투박하지만 현대사회의 회사일에 대한 정확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회사일에서 돈 말고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도 그렇고, 가끔 뉴스를 봐도 시키는 일만 죽어라 하면서 돈만 바라기에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직장인들이 많다.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인생은 아주 매우 몹시 짧다. 1분, 1초가 지극히 소중하고 유한한 내 인생을 회사에 갈아넣으면서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못 느끼는 일을 오로지 돈 때문에 해야 한다? 건강한 인간됨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근데 그건 월급이 적을 때나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게 무섭다. 신입한테 세후 월급 620만 원을 주면, 난 번아웃 안 온다고 본다. 이런 지점을 정확히 꿰뚫는 게 이 시리즈의 묘미다.

이서는 돈만 생각하면서 무의미한 일을 즐겁게 해나간다. 그러다 누군가 CCTV로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자신을 보며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퇴사를 요청하는데...! 이 요상한 팀의 설립 목적과 이를 지시한 사장의 의도는 무엇일까?


출처: 왓챠 오리지날


정규직, 그 몸서리 쳐지는 아름다운 유혹

사장(진구 분)은 천웅(장동윤 분)의 아버지를 운전기사로 고용했지만, 1년짜리 계약이 만료되면 반복해서 재계약하는 방식을 통해 10년을 부려먹고 퇴직금도 없이 짤라버린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된 천웅의 아버지는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자살하고 만다.

어쩌저찌 복수를 할 기회를 마주한 천웅. 사장은 제안한다. 그 칼로 날 찔러 복수를 완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 회사에 입사해서 일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아버지가 받았던 연봉의 두 배를 주겠다고. "아, 그리고 조건은 당연히 정규직입니다." 서른이 되도록 변변찮은 직장을 못 구했던 천웅에게 아버지가 정말 원하는 선택이 무엇일 것 같냐고 사장은 묻고, 천웅은 결국 아버지의 뜻이었을 선택을 하고 만다.

돈이 이유고, 의미예요.


그래. 모든 게 결국 다 돈이지. 인생은 '돈 버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더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계속 벌 수 있을지 하는 고민은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다. 이 지독한 욕망과 생존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이 모든 인물들이 한데 얽혀 파편 같던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순간, 펑!

우리는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나를 위해 살아가지 정의롭고 선한 길을 선택하진 않는다. 왜 그럴까? 인간의 본성은 악하니까? 그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좀 더 현실적이긴 하지만 100점짜리 답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정답은 '정의로운 게 돈이 안 되니까.'이다. 그렇다면 정의 구현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많은 추천수를 받은 사람에게 상금 5억을 지급하면 어떨까.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출처: 왓챠 오리지날


발칙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노동과 돈,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구조를 코믹하게 풀어낸 <사막의 왕>. 때로는 취준생의 시선으로, 때로는 실패한 인터넷 방송인의 시선으로, 때로는 아이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읽어낸다. 이 시리즈, 정말 최고로 웃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웰메이드 투자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