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위로하는 철학' 등의 제목을 달고 나오는 철학서들이 참 많아서 이런 류의 책들이 내겐 익숙하다. 많은 철학 대중서들은 아래와 같이 철학의 쓸모를 설명한다.
철학은 삶의 무기다
어떤가? 공감이 되는가?
난 책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내 삶을 통해 공감이 되는 문구이다. 나는 다양한 철학적 시도를 삶을 통해 실험하면서 얻은 바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지극히 주관적이고 좁고 편협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철학과 나의 삶이 관계 맺어온 시간 속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생긴 현재의 감상과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 쓴 글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이 글을 일기장처럼 다시 읽을 때 어떤 회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난 철학을 잘 모른다. 전문가는커녕 철학 애호가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난 그냥 철학이랑 친구이고, 내 멋진 친구를 소개한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끄적여본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철학과 제대로 만났다. 때는 2016년,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던 때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바탕이라거나 여성학 같은 내용은 전혀 몰랐다. 그냥 생전 처음 보는 세계를 만난 느낌이었고, 당황스러웠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친구의 권유로 연합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강남역 살인사건과 세월호 등 사회문제에 관한 발제문으로 토론도 하고, 각종 소모임도 하면서 조금씩 사건을 체감해갔던 것 같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장에 직접 찾아가보기도 하고, 추모 공간을 취재하기도 했다(사진을 찍고 짧은 글을 써서 페북 페이지에 올렸다). 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 믿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론보도나 특정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기보단 내 시야로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이 될 때까지 내가 만난 미지의 페미니즘을 파고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1살 남자애는 그제서야 '바깥 세상'을 조금씩 더듬어 익혀가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내게 페미니즘은 무척 실용적인 학문으로 보였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의 절반(여성의 세계)을 알려주는 통로 같았달까. 나는 특정 대상 혹은 현상을 페미니즘의 렌즈를 통해 보는 방법을 배웠다.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최고의 입문서가 되어주었고, 각종 페미니즘 예술은 치열한 여성의 내면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예컨대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 같은 시집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다양한 사건을 직접 마주하고, 사람들과 토론했던 경험을 통해서 특정 철학, 혹은 이념(이데올로기)를 삶을 통해 체화하고 그것을 하나의 '도구'로 휘두르는 연습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나는 끝도 없이 실패하고, 많은 좌절을 겪었다. 스무살 첫 연애를 처잠하게 실패했다. 난 여성의 세계를 전혀 몰랐고, 그 세계를 배우는 일은 이론과 거리가 멀었다. 자괴감이 많이 들었고, 군대에 가면서 오랫동안 이성을 만나지 않으면서 과거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다음 연애는 훨씬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 예쁘고 만났고, 성숙하게 헤어졌다. 페미니즘은 분명히 나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켰다. 머리로만 알던 어떤 '이론'이나 '철학'을 나의 삶과 버무려 '철학 무기'로 벼렸던 첫 경험이었다.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전 여자친구가 알바를 갔다와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 걔는 회전 초밥집에서 일을 했었는데, 작은 실수를 하거나 재료를 조금만 낭비해도 팀장이라는 덩치 큰 남자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그딴 실수를 왜 하냐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욕설도 내뱉고, 다른 직원과 사내 연애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했다나. 독불장군에 인성불량자 같은 사람이었다고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그곳 알바생이었다면 그 남자가 그렇게 쉽게 위협을 가할 수 있었을지부터 생각해보았다. 아마 못 했을 거다. 난 평균 신장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20대 남자니까. 그딴 식으로 나한테 하면 그건 실수를 지적하는 게 아니라 맞짱 뜨자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게 뻔하니까. 실제로 그 초밥집에서 일했던 다른 남자애들은 그 팀장을 "형님 형님" 하면서 잘 지냈다고 한다. 그 팀장이란 사람은 전형적인 강약약강 인데,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비열해질 수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았다.
남성성의 결핍
내가 생각한 답은 이렇다.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건강하게 유지할 만한 다른 건수가 없으니까. 나이가 찼는데 프랜차이즈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자격지심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안에서 그럴듯한 직함 달고 대장 노릇하면서 그 역할에 심취했을 수도 있다.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나이 어리고 왜소한 여자애가 아니꼽게 보였을 수도 있다(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자신보다 지위가 낮으니 손쉽게 위협을 가하고 가스라이팅 할 수 있는 대상임을 알고 졸렬한 방식으로 행동에 옮기는 모습이 상상됐다.
남자애들이 형님 형님 하면서 패거리를 형성해 주니 더 기세등등 했을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이 가진 알량한 권력 안에 숨겨져 있는 빈약한 자존감이 보이는 듯했다. 이렇게라도 남자 노릇 못하면 약해보일 거라는 심층의 두려움 같은 것들(우린 그것을 '맨박스'라고 부른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불쌍해졌다. 타인에게도 그렇게 가혹하고 화를 잘 내는데, 스스로에게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을지.
초밥집 알바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다. 그 팀장이란 사람을 욕했고, 우리 그 사람을 불쌍히여기자고 말했다. 너가 당했던 폭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고 했다.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두려움은 총에서 발사된 총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총'에서 온다. 그러니 내가 당한 폭력의 정체가 저 사람의 약함과 비열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전처럼 그 폭력이 두렵지 않게 된다. (당연히 그렇다고 폭력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 미친놈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 분명하다.)
내 말이 걔한테 조그마한 위로라도 되었더라면, 그건 온전히 페미니즘을 배우고 삶에서 겪어가면서 체감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덕분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