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리틀 헝거는 물질적으로 굶주린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난 항상 '삶의 의미'가 너무 중요했다. 의미 없이는 그 무엇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기 전까진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 같다.
긴시간을 별 생각 없이 살아왔다. 초, 중, 고교 동안 반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성적을 유지해왔고, 공부는 늘 하기 싫었다. 재미도 없고, 귀찮고, 노는게 더 좋고, 잘할 자신도 없고.
부모님은 나름 충격 요법을 쓰신다고 반에서 절반에도 못 들거면 공장에 취업하라고 겁을 주셨다. 전혀 무섭진 않았다(아마도). 다만 이렇게 물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진심으로 이유를 잘 몰라서 물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을 거다. 핑계 대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부모님 마음을 이해한다. 남들은 눈에서 불을 켜고 한다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인생에 많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시험날이면 빨리 시험 보고 pc방에서 롤(lol)을 여섯 시간씩 때리는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터닝포인트는 고3 때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면서 찾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입시)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것 같다. 놀던 친구들과 완전히 떨어졌고, 고3 입시가 한창인 새로운 학교로 갑자기 전학을 갔더니 정말 할게 없었나 보다. 덩그러니 있으려니 갑작스럽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20살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내 꿈은 뭐지?' 이런 고민이 나를 급습했다.
난 신문 기자가 되고 싶었다. 어떤 영화를 봤는데 기자가 정말 멋있어 보여서. 독서를 굉장히 좋아했고, 글쓰기로 두각을 나타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음에도 글 쓰는 걸 나름 좋아하기도 했고. 특히 논술을 꽤 잘해서 수시 시험을 논술로 준비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 신문방송학과 or 국어국문과에 진학해서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는 멋진 기자가 되는 것
수능을 9개월 정도 남겨 놓은 시점부터, 미친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평균 6등급이던 모의고사 등급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기초가 약했던 수학은 중학생 동생들과 함께 과외를 받았다. 영어는 기초 영단어부터 차근차근 외우면서 ebs교재를 닳도록 봤다(나중엔 문제를 다 외웠다). 졸업사진을 찍으러 서울대공원에 갔을 때도 벤치에 앉아 국어 자이스토리 문제집을 풀었다. 급식 혼밥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봤다(같은 반 친구들과 대화조차 잘 안 했다). 새벽 1시에 독서실 문 닫을 때까지 공부하다가, 아버지 서재에서 2시까지 더 하다가 잤다.
꿈에 대한 현실성은 잘 모르겠고, 공부의 의미가 생기니 오늘 내가 견디는 시간에도 의미가 생겼다. 생전 처음 맛보는 대단히 기묘한 시간이었다. 아등바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초부터 다져가는 게 할만해졌다. 주변 친구들, 부모님 모두 딱히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레이트 헝거에게 일말의 '의미'가 생기자 마구 힘이 솟아났다.
수능 등급을 가까스로 올려 최저등급을 맞추고, 열심히 준비하던 논술로 소위 말하는 '인서울'을 했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끝끝내 성취해내는 경험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봤다.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났고, 지금은 안다. 그레이트 헝거에게 '의미'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는 것을. 이때의 입시 경험은 평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다. '학벌'을 거머쥔 것에서 오는 이익보단 내가 찾은 의미를 토대로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보는 경험의 가치가 수백 배는 더 소중하다.
대학에 진학하자, 또다시 의미를 찾아야 했다. 왜 대학을 열심히 다녀야(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가? 나는 2학년을 마칠 동안 의미를 전혀 찾지 못했고, F학점 8개를 수집하게 된다. 나는 대학 부적응자, 게으른 학생, 방황하는 청춘, 자퇴 준비생, 열등한 학생 모두에 해당됐다. 정신나간 그레이트 헝거의 습성이 다시 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겠나. <버닝>의 해미(전종서 분)처럼 아프리카라도 갔다올 심정으로 의미를 찾아 춤을 추며 여행을 떠나는 수밖에.
브런치에 연재 중인 '1억 프로젝트'도 돈의 의미를 찾아떠나는 여행이고, 앞으로 내가 할 모든 일도 그럴 거다. 그레이트 헝거는 언제나 '의미'를 찾아 미친듯이 헤맨다. 자동차의 연료가 석유이듯, 내 인생의 연료는 '의미'이다.
내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지고, 황무지에서 스스로 의미를 건져올리는 사람. 그레이트 헝거. 삶의 허무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창조한 '의미'만이 유일한 무기가 된다.
학생에겐 학교 수업이, 직장인에게는 노동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찾아온다. 내가 이걸 대체 왜 해야 하는지 의심하는 순간, 크나큰 회의감에 빠져버리는 순간, 삶의 허무는 아가리를 크게 열고 사람을 집어삼킨다. 『페스트』를 쓴 알베르 까뮈가 주목했던 지점도 여기에 있다.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가는 인간은 무의미를 극복하는 힘을 발견한다고 한다.
세상은 질문에 답해주지 않는다. 내가 주인되어 세상에게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고 믿고, 오늘도 의미를 갈구하는 그레이트 헝거는 멈추지 않는다. 죽지 못해 사는 삶에서 탈피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