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할극의 역할 수행자

나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의식하기

by 탐구인간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면서 실험쥐를 훈련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먹이 보상을 주어, 실험쥐가 계속해서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훈련이었다. 훈련을 계속 진행하다 보니 나중에는 실험쥐가 행동을 하고 나서 자신에게 바로 먹이를 달라는 듯, 앞발을 들고 서서 점프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때의 실험쥐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왜 자신에게 먹이가 주어지는지, 인간이 왜 자신에게 그러한 행동을 요구하는지, 언제까지 자신에게 먹이가 주어질 것인지와 같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 채, 그저 먹이를 얻기 위해 인간이 원하는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실험쥐의 모습을 보고, 인간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당한 인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가지는 대전제는 유전자 보존, 즉 생존과 번식이다. 이러한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본능으로부터 개별적인 성격, 신념 등을 반영하여 상황에 따라 사람마다 다양한 감정, 생각, 행동이 파생되어 표현된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본 본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감정, 생각, 행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감정, 생각, 행동은 결국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을 얻어내고, 불리한 것을 피하도록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과 번식 본능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위와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문제는 우리가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며, 생존과 번식 본능을 가질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의 성격은 대체로 선천적 요소에 많은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 관여하는 개인의 신념 형성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삶의 초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의식하고 주도성을 갖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그전에 많은 것들이 정해진 후이다. 즉, 태어남 그 자체를 포함하여 많은 것들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고 '선택당한' 것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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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의해 나의 감정, 생각, 행동이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특정한 방향으로 쉽게 끌려다니고 휘둘리게 된다. 인간은 마치 특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의식할 새도 없이 특정한 반응을 표현하는 '자동 응답 기계'와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구체적인 반응은 매번 달라질 수 있지만, 이는 완전히 무작위가 아니며 여러 유사한 상황에 대한 한 사람의 반응은 큰 틀에서 확률적으로 어느 한쪽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인이 특정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느 정도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하는 것은 얼핏 가능해 보인다.


물론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바꾸어나갈 수도 있다. 자신의 신념을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은 다른 사람을 예측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예측당하지는 않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자리 잡은 자신의 신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수많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성실한 역할 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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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신념을 형성할 때, 직접 경험뿐만 아니라 간접 경험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으며, 그렇게 형성한 신념을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한 가치를 판단한다.


나는 나의 가족(원가족)과 국가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가족과 국가를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나는 이전부터 나의 가족과 국가에 소속되어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나의 가족과 국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과거의 사건을 학습하면서 누구를 좋아하고 존경해야 하는지, 누구를 적대시하고 혐오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감정과 생각, 태도를 집단에 맞추어 그대로 따르게 된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직접 요청한 것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가족이나 국가로부터 정서적 기반, 사회 인프라 등 많은 지원을 받아 일종의 '빚을 진 상태'이다. 알지도 못한 채 빚을 져버렸지만, 그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집단의 감정과 생각, 태도를 그대로 따르게 되는 운명에 처해있다.


반대로, 내가 직접적으로 책임이 없는 사건 때문에 다른 집단 사람들로부터 마음대로 존경을 받거나 혐오를 당하기도 한다. 소속 집단과 연관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과거 사건에 속수무책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 물론 어린 시절을 지나서 나중에 가족과 국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인간은 마치 거대한 역할극의 역할 수행자와 같다. 모두에게 생존과 번식 본능은 공통적인 설정으로 주어지며, 개별적 성격과 신념 등은 캐릭터마다 각각 다른 설정으로 정해져 시나리오가 배부된다. 각각의 사람은 그러한 기본적인 설정을 반영하여 다양한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그러나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우리는 왜 알아야만 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나리오의 설정은 무의식에서 마치 절대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시나리오의 설정 중 어떤 것은 아예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며, 어떤 것은 바꿀 수는 있으나 그 과정이 매우 어울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시나리오의 설정을 굳이 항상 의식하면서 완전히 부정하거나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으며,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주어진 시나리오의 설정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조건 그대로만 따른다면, 당연하다는 듯 계속해서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 무조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상황을 해석하고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만 몰두하여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동일한 패턴 그대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감정과 생각을 주체적으로 조절하여 다른 선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무의식에서 발생하는 심리 작용의 원리를 알고 제대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자신의 무의식을 상세히 알고 의식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불필요한 두려움을 야기하거나, 신속한 상황 대처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도 있다. 즉, 필요할 때만 적절히 의식하도록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감정과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선택권'의 존재 자체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상황에 끌려다닐 것인가? 끌려다닐지 말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 역시 스스로의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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