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역마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한국에서 30년쯤을 살았다고 자각했을 때, 지루하다는 감정을 마주했다. 사람이 어떻게 30년 동안 한 나라에서만 살 수 있지?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의문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스럽다. 사람은 어떻게 한 곳에서 이리도 긴 시간 동안 정착할 수 있는 걸까.
그럴싸한 답을 얻지 못한 나는 ‘내가 역마인가.’라는 또 다른 의문을 품었고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국경을 넘는, 비행시간이 긴 나라로의 여행’이었다.
생에 첫 여행은 미국 뉴욕이었지만 가장 흡족하고 편안했던 동유럽 여행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여행 중에 가장 심심했던 프라하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는 건 아이러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어버린 오스트리아 - 빈에 대한 사려는 최대한 정갈한 꾸밈새로 이야기하고 싶기에.
생생히 기억난다. 일찍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멍하니 앉아 나고 드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며 떠나기만을 기다렸던 시간, 감정, 편안함. 물론, 회사에서 두세 번 정도 연락을 받았지만 그것마저 즐거웠다. 곧 떠날 것이라는 사실 덕분에.
저 하늘색 큰 물체에 나를 실으면 그때부터 이유 없이 모든 것이 새로워지겠지. 편한 옷 까지 입었으니 천군만마와 함께 자유를 향해 간다. 고작 열흘이지만 기꺼이 기쁘리라.
10시간 동안 멀미와의 싸움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두고 굉장한 하이텐션으로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내렸다. 대한항공이 들어오는 게이트여서 인지 모든 표식이 한글로 기재되어 있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덕분에 낯설지 않은 프라하, 그리고 그들에게도 낯설지만은 않을 대한민국 여행객. 이러한 이유로 호의적이고 편안한 공항 분위기에 자동 입국심사였으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여권이 한 번에 리딩 되지 않아서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은 것과 공항 내 마트에서 카드가 읽히지 않아서 이목을 끈 걸 제외하고는.
뭐 그 정도면 됐지. 충분한 프라하에서의 시작이었다.
불현듯 첫날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무드가 스친다. 퇴근 시간대에 도착한 숙소 근처에는 분명 꽤나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많이 이용하지 않던 전동 킥보드 위에 서서 인도를 슉슉 지나가는 기다랗고 높은 사람들. 다들 해가 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달이 있는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아침의 그곳 돌아가는 혹은 또 새로운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움직임이 끊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느껴지는 한가로운 느낌. 느릿느릿 선선한 바람이 손 끝에 가볍게 걸리는 느낌.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여전히 어울리는 표현을 찾지 못한 소중하고 귀한 프라하에서의 처음.
저녁은 테라스가 있는 식당이었다. 노을을 맞이했으니 해가 지는 건 금방이었고 거나하게 저녁이나 먹자, 라는 마음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걱정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공항 내 마트에서 카드가 읽히지 않았던 것 때문에 여행 내내 카드가 긁히지 않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한 마음. 유로화를 출금해서 다니면 됐지만 환전도 결제 과정도 번거로워서 별 탈이 없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면서 어찌나 떨렸는지, 식사를 함께 하는 일행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내 카드 안되면 다들 도와줘요, 제발!' - 떠날 땐 혼자였지만 자유 여행 패키지를 선택했던 덕에 느슨한 일행들이 있었다. 덕분에 다양한 음식을 주문했고 심심하지 않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
프라하 밤거리, 중간에 앉아 흡족한 식사 시간을 갖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워낙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인지 한국어 메뉴판이 따로 있었다는 점. 내심 편리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금 더 낯섦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약간 아쉬웠달까. 원래 여행의 재미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먹고 서투른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 실제 뉴욕 여행 때, 치폴레 직원이 나를 향해 ‘오 마이 갓!’을 외치기도 했다. -
아, 잊을 뻔했다. 코젤 다크.
천지가 개벽할 맛이다. 무엇을 상상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천상의 맛일 테니 살면서 한 번쯤 꼭 경험해보셨으면.
돌아오는 길은 완연한 밤이었다. 야경이 아름답지 않은 여행 도시가 얼마나 있겠냐만은 어쩐지 역동적이고 모든 것이 활기차게 숨 쉬고 있는 듯 북적거리는 광장 앞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 내가 받은 느낌을 어떤 단어 하나 혹은 문장 몇 개로는 절대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감히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상당히 오래 그 밤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되뇌고 고민했다. 이제는 겸손하게 몇 가지 단어를 나열해보고자 한다. 체코, 프라하, 집시, 자유. 마음에 담은 프라하의 밤은 그랬다.
코젤 다크에 취해, 이색적인 도시 분위기에 잔뜩 휩쓸린 여행객이었던 나는 이례적으로 편안하고 깊은 수면에 들었다.
동유럽에 발을 들이고 모든 것이 편안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했던 첫날의 깊은 밤.
동유럽을 사랑하게 된 처음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