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다.

by stamia


내가 직접 겪고 느낀 나의 이야기를 특정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익명으로 쓰는 것인데도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일 수 있구나를 브런치를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돼서 알게 되었다.

내가 다른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은 것처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한두사람에게라도 공감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난하는 소수의 사람 때문에 글쓰는게 무서워지는 걸 보니 나도 한참 멀었구나 싶다. 차마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한 글들을 보며(적당한 때에 그러고 싶을때 하나씩 용기내리라) 그냥 전처럼 다 비공개로 하고 나 혼자만 볼까 하다가 '에잇 내가 뭐 죄 지은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제 한 TV 프로그램에서 자수성가한 스타트업 대표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집에서도 가족들과 밥 먹을 때 업무 얘기를 많이 하면 식대를 제공해주고 그 판단은 오로지 직원의 몫이다. 그 정도의 직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되겠느냐의 대표의 말이 참 멋지면서도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졌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가 더 많지 않냐는 질문에 '애초에 목표가 도전이었기 때문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다.'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 10번 도전해서 9번 실패하고 1번 성공해도 그 도전은 의미있는 것인데 그리고 사실상 그 성공도 실패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성공가능성이 낮은 일에는 아예 시도조차 안 하려 했구나. 전부터 나의 자기소개서에서 장점 3가지를 꼽을 때 한번도 빼지 않고 적었던 게 '도전정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한 도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도전이 모 그리 대단하다고 우습게 생각될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일이 자신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까(그냥 그렇다고) 이렇게 되짚어 보다 보면 앞으로도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내 유년시절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싶은데 그때 그러길 정말 잘했다 싶은게 바로 악기를 배운일이다. 어렸을 때 피아노나 현악기, 사물놀이 등 하나씩은 누구나 배우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나의 어린시절은 악기를 배우기 위해 음악학원을 다닐만큼 그리 녹녹지 않았고 피아노 학원 가기가 너무 싫다는 친구의 하소연이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까지 했다. 중학교 1학년 말에서 2학년 즈음(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사춘기가 아니였나 싶다) 노래 듣는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악기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한 건물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드럼비트 소리였다. 그때만 해도 드럼은 남자들이나 치는 주변에 배우는 사람이라곤 극히 드문 악기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감정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을 들을때 유독 드럼소리만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그래서 몇달간 힘들게 모은 용돈을 들고 나는 드럼학원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은 한참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무슨 드럼이냐고 야단이셨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그럼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3개월만 보내주기로 약속하셨다. 3개월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고 난 거의 기초만 배우고 학원을 그만둬야 했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 밴드 동아리에 가입도 하고, 전체 채플시간(학교가 미션스쿨이었다)에 반주도 하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족히 10년은 더 친 것 같다. 누군가 취미나 특기가 뭐냐고 물을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 한가지 있다는 게 참 그때 시도하길 잘했구나 싶다.


대학시절 학부로 입학해서 2학년이 되던 해 전공을 선택하는 시기가 되었다. 입학 전부터 내가 생각해오던 길이 있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전공을 선택했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동기들 중에 하나둘씩 복수전공을 생각하거나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도입하거나 취업을 하기 위한 일종의 스펙 쌓기를 위해 대외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전공 공부만 하기엔 나만 혼자 뒤처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자기소개서란 걸 쓰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운 좋게 합격해서 시작한 일이 세계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구호전문가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대외활동이었다. 나 말고도 열명남짓의 다양한 지역의 대학생들이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는데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대학의 재학생이거나 유학경험, 3개국어가능자, 인턴십 등 이력이 화려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면접심사를 하셨던 팀장님께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제가 왜 뽑혔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물었는데 그때 그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면접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릴만큼 엄청 긴장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본인 생각을 꿎꿎히 말하는 걸 보면서 아 얘는 뭘 시켜도 열심히 하겠구나 싶었다'라고 하셨다. 그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시절 2년간 휴학을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실패하게 되더라도 꼭 한번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학을 하고 6개월 정도는 오전에는 알바를 오후에는 영어공부에 집중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영포자였던 내가 목표가 생기니 하루에 5-6시간은 영어공부를 하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때 한참 미드를 자막없이 보면 귀가 빨리 트인다고 해서 한편을 수십번 반복해서 보기도 하고 팝송을 여러번 반복해서 따라 부르기도 하고, 영어스터디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온갖 방법은 다 해본것 같다. 돈도 어느정도 모으고 영어도 초급은 벗어낫을 무렵 자기소개서를 거짓말 안하고 족히 30군데는 넣어 본 것 같다. 그중에는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한 곳도 있고 아예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고베를 마신곳도 있었다. 그렇게 휴학한지도 1년이 다 되어 갔을 때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지원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것도 내가 지원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도 세계지도에서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몰랐었던 나라로의 파견 소식이었다. 난생처음 여권을 만들고 국외 비행기를 타고 공항 입구부터 냄새도 들리는 언어도 생김새도 모든게 낯설었던 곳에 도착해 생활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꿈을 꾼 것만 같다.(그때 이야기는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할 것 같으니 다음에 자세히 쓰기로 하자)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나때는 말이야..라고 하는 사람들을 비꼬아 라떼꼰대라고 한다더라.

나도 그땐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어. 앞뒤 생각안하고 일단 저지를 때가 있었지.

그땐 그래도 되는 나이었거든. 실패해도 용서가 되는 나이.


실패해도 되는 나이란 없다. 우리는 살면서 죽기까지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크건 작던 도전을 멈추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결말을 이미 알고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일처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일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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