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여름휴가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

by stamia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5일이라는 긴 휴가를 냈다.

주말까지 합치면 9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이 휴가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설렘반 기대반으로 지난 2주를 버텼다. 전전주엔 휴가를 떠난 동료의 업무를 대행하고, 전주엔 휴가를 떠난 부장님의 업무를 대행하면서 내 일까지 미리미리 해 놓으려다 보니 정말이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만큼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인데 세달전부터 예약해두었던 국내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에서 돌아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지금도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초조함과 불안함도 더해진다.

돌아가면 쌓여있을 여러가지 일들, 계속해서 눈이 가는 단체톡방의 메시지까지.. 어쩌다 나는 휴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된 걸까.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이 시간에 집중해 보자.


휴가철이라 어딜가나 사람이 많을 것이라 걱정했는데 장마가 지속되는 바람에 생각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은 조용한 시골마을에서는 갑자기 내리는 비도 한폭의 그림처럼 운치있게 다가오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출렁이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숙소에선 창문 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아, 이런 시간들을 위해서 그동안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나 보다. 그리고 역시 여행은 어디로 가냐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가 보다. 바다, 커피, 음악,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다.


여행에서 돌아와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고 싶은 욕구를 이기고 오랜만에 전철을 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향했다. 분명 한달전에 만났는데도 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지. 엄마는 내가 오랜만이라 집 오는 길을 잃어버렸을까 봐 라고 농담하시며 전철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표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셨다. 비빔국수를 먹으니 부침개를 부쳐줄까 하셨고 부침개 먹고 수박도 줄까 하셨다. 그렇게 계속 집에 있다가는 배가 터질거 같아서 엄마랑 같이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카페까지 걷자고 했다. 엄마는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돈만 있으면 회사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고 카페라도 하나 차려주고 싶은데..' 하셨고,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으면 일 그만하고 집에서 취미생활하시면서 쉬시라고 하고 싶은데..' 생각했다. 한달전에 사드렸던 화장품이 뜯지도 않고 그대로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걸 보면서, 오늘 저녁 반찬은 이걸로 하라며 들고가기 무겁다는 말에도 바리바리 싸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길 모퉁이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문 앞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엄마를 보면서 기도했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서 엄마와 더 오랜 시간 이런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고.


나에게는 지금은 직장동료는 아니지만 원래부터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편안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가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퇴사를 선택한 그 친구가 참 멋지다. 나와 성격이 정반대인 친구는 내가 보지 못하는 면을 보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준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진심이란 걸 알기에 나와 반대되는 생각도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걱정과 조언으로 들린다. 친구는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냐 보다는 얼마나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아껴주느냐인 것 같다. 다음번에 만날 땐 속상한 일보다는 재밌고 좋은 소식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그동안 미뤄두기만 했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남은 휴가를 알차게 보내야지. 긴 휴가가 끝나면 다시 돌아올 일상을 벌써부터 걱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진 말아야지.


열심히 일한 시간들이 있기에 쉼이 이토록 소중하고 즐거운 거라고,

그리고 그 쉼 끝엔 다시 돌아갈 일상이 있기에 더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지금도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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