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 이후, 감정은 따라오지 않았다.

by 황수민

바디프로필 촬영이 끝난 날, 나는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욕망을 풀어내듯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먹고 싶었던 빵, 냉동떡, 각종 간식들, 그리고 여전히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에 닭가슴살과 채소, 과일까지. 먹고 싶은 건 많았지만 정작 먹지는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음식들이 나를 반겼지만, 손은 이상하게도 잘 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채소는 시들고 물이 흘러내려 냉장고 바닥을 적셨고, 떡은 얼어붙어 서로 달라붙은 채 딱딱하게 굳어갔다. 꺼내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쌓아둔 풍경은 허기보다는 공허에 가까웠다. 결국 상해버린 채소와 굳어버린 떡과 유통기한이 지난 닭가슴살들 꺼내 버려야 했다. 먹고 싶어 사들였지만, 제대로 맛보지 못한 채 유통기한만 지나갔다. 돈도, 마음도 함께 흘러내린 기분이었다.


사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번째 바디프로필 때는 결과물이 곧 나의 증명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이 달랐다. 메이크업이 잘 나온 날 셀카를 몇 장 찍어 간직했을 뿐, 촬영본은 굳이 꺼내 보지 않았다. 몸은 분명 달라졌지만, 내 눈에는 그저 단순히 마른 몸처럼만 보였다. 근육이 만들어낸 ‘강인한 나’라기보다, 비워진 듯한 껍데기에 가까웠다. 거울 앞에 서서 팔을 들어 보거나 옆모습을 비춰 보아도 낯선 실루엣만 보였다. 사진 속 나는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거울 속 나는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진들은 결국 나 혼자만 간직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걸 다 해냈냐”, “고생 많았다, 수고했다”는 말들을 건넸다. 누군가는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고, 누군가는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내왔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어딘가 어색했고 이상하게도 그 모든 말들이 내게는 제대로 닿지 않았다. 마치 멀리서 메아리처럼 맴돌다 금세 사라지는 것 같았다. 칭찬을 듣는 순간조차 마음 한편이 허전했고, 내가 진짜로 무엇을 해냈는지 스스로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이 모든 걸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이어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원래의 내가 그러했으니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습관이었고, 멈추면 곧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운동과 식단은 분명 나를 지탱해주었지만, 동시에 즐거움과 강박 사이를 오가는 줄타기 같았다. 어느 날은 성취감이 분명 있었고, 또 어느 날은 공허감이 더 크게 찾아왔다.


거울 앞에 선 나는, 건강해진 몸보다는 단순히 ‘마른 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속 내 모습은 분명 성취의 결과였지만, 내가 원했던 강인함과 충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이 보기엔 완성된 몸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껍데기 같은 성취로만 보였다.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만족감 대신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꾸준히 뭔가를 성취해야만 내가 성장하는 것 같았고, 그래야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늘 묘한 괴리감이 올라왔다. 몸은 달라졌는데 마음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쉬는 법을 잘 몰랐다. 나를 다독이는 일도 서툴렀다. ‘조금은 충분하다’고 말해주기보다, ‘아직 부족하다’는 채찍질이 더 익숙했다. 더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칠수록, 오히려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갔다. 그렇게 쌓아 올린 성취 위에, 나는 늘 흔들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을까. 성취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일상을 지켜주는 건 화려한 사진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였다. 완벽한 몸보다 중요한 건 꾸준히 나를 지켜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단단한 마음이었다.


바디프로필은 나에게 성취를 안겨주었지만, 마음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간극을 직면하게 만들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끊임없는 성취’가 아니라, 성취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이제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만 배울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나는 몸을 더 몰아붙이는 대신,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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