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는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길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데드리프트 100kg을 들 수 있을 만큼 몸은 강해졌고, PT를 받으며 올바른 자세도 배워갔다. 꾸준히 운동을 하며 건강을 챙기는 단순한 반복은, 어느새 나를 지탱하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중 트레이너가 제안을 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다이어트를 해서 바디프로필을 찍어보는 게 어때요?”
처음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일이기도 했고, 또다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솔직히 나는 다시 찍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곧장 “싫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괜히 어색한 관계가 될까봐, 트레이너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주저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너는 목표가 있어야 다이어트가 성공한다고 했다. 바디프로필은 그 목표를 확인하는 장치였다. 나 역시 ‘제대로 된 다이어트’라는 말에 흔들렸다. 단순히 마르기만 하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라인을 선명히 만드는 다이어트. 그 말이 귀에 남았다. 결국 나는 다시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선택은 분명 첫 번째 때와 달랐다. 사진에 대한 설렘이 아니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과 애매한 동의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작부터 내 안의 불씨는 약했다. 식단을 지키고 운동을 해도 마음이 쉽게 흔들렸다. 억누르면 억눌릴수록 음식에 대한 집착은 커졌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잔뜩 주문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끝나면 꼭 이걸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식단뿐이 아니었다. 운동 강도는 높았고, 몸은 늘 지쳐 있었다. 공부할 때 필요한 체력과 집중력은 바닥을 쳤다. 준비 중이던 자격증시험도 결국 미룰 수밖에 없었다. 운동과 식단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다 보니, 다른 일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촬영 준비도 첫 번째 때만큼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 의상이나 컨셉을 신중히 고르지 않았고, 스튜디오 역시 헬스장과 연계된 곳을 선택했다. 비용이 덜 들고 절차는 간단했지만, 그만큼 내 마음도 대충 흘려보낸 셈이었다. 촬영 당일, 카메라 앞에 선 나는 스스로 낯설었다. 조명 아래 서 있었지만, 내 안은 비어 있었다. 첫 번째 촬영 때는 긴장 속에서도 설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표정도, 포즈도 남의 것을 빌려 쓰는 듯 어색했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나도, 어떤 이야기도 담고 있지 않았다.
결과물을 받아본 순간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사진 속의 몸은 분명 더 다듬어져 있었고, 기술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딘가 미완성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몇 장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많은 바디프로필 사진 중 하나에 불과했다. 첫 번째 사진을 보며 느꼈던 감정의 몰입과 충만함은 없었다. 성취 대신 공허가 남았다.
문제는 사진이 아니었다. 내 마음이었다. 애초에 충분히 내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결과물 앞에서도 만족감은 따라오지 않았다. 내 모습이지만, 나 같지 않았다. 성취라 부르기엔 껍데기 같은 결과였다.
돌아보면 나는 운동을 삶의 일부로 만들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삶을 온전히 운동에 바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헬스에. 근육과 기록에 매달리며, 마음은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갔다.
두 번째 바디프로필은 그래서 ‘성취했지만 공허했던 기록’으로 남았다. 설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솔직한 설명이었다.
다만 이 경험이 남긴 것이 있다면, 앞으로의 다짐이었다. 이제는 더 무겁게 드는 기록보다, 내 호흡과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운동을 하고 싶다. 숨이 막히도록 고된 훈련 대신, 나를 오래 지켜줄 수 있는 운동. 단단한 근육만 쌓는 것이 아니라, 굳은 몸을 풀어주고 유연함을 길러주는 요가. 뇌와 마음까지 맑아지는 달리기. 사진 한 장의 성취보다, 매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평온한 일상을 붙잡고 싶다.
성취의 순간보다, 그 안에서 숨 쉬는 나를 잃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