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한창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예전부터 막연히 바디프로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면서 그 마음은 점점 구체적인 목표로 변했다. 꾸준히 쌓아온 운동 습관과 전보다 건강해진 몸을 단순히 거울 앞에서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그 마음이 어느 날 선명하게 다가왔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던 일상에 바디프로필은 새로운 자극이자 목표였다. 출근하고,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 식단을 챙기고 잠드는 일상. 반복된다고만 여겼던 하루에 또렷한 방향성이 생기니, 그 단조로움조차 힘을 갖게 되었다.
목표가 있으니 운동은 더 즐거워졌고, 힘든 날에도 발걸음을 헬스장으로 향하게 할 이유가 분명했다. 몸을 만들기 위해 식단은 필수였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정된 식단을 따르게 되었다. 매일 ‘오늘은 뭘 먹지?’라는 고민이 사라지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삶이 더 간결해지고, 불필요한 신경이 줄었다. 마치 하루 전체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발견한 건 하나였다. 몸은 정직하다는 사실이다. 오늘 내가 운동한 만큼, 먹은 만큼, 잠든 만큼 결과가 돌아왔다. 노력한 만큼 드러나고, 게을리한 만큼 그대로 보여줬다. 이 단순하고도 확실한 세계는 그 어떤 말보다 강력했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준비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근육을 키우고 체지방을 줄이는 일은,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체중은 같아도 근육과 지방의 비율에 따라 몸은 전혀 달라진다. 나 역시 ‘마른 비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겉보기에는 말라 보였지만, 근육은 부족하고 체지방은 많았던 몸. 그 원인은 일정하지 않은 식사와 불균형한 영양에 있었다.
그래서 더 철저히 근력운동과 식단을 지켜야 했다. 무거운 무게를 반복해서 드는 낯선 훈련,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신경 써야 하는 집중, 조금만 소홀하면 따라오는 통증과 부상 위험. 몸을 지키려면 유연성과 회복도 챙겨야 했다. 스트레칭을 소홀히 한 날엔, 잘 들던 무게도 들리지 않았고 관절이 삐걱거렸다.
식단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먹어야 하는 칼로리와 탄수화물, 단백질을 계산해가며 저울로 그람 수를 재고, 영양 성분을 일일이 검색하는 일이 반복됐다. 단순해진 식단 덕분에 마음은 편해졌지만, 동시에 먹고 싶은 걸 참아야 하는 고통도 따랐다.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때로는 우울해졌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마음이었다. 컨디션이 무너지는 날에는 운동도 식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졌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라는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때로는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쌓아간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 한 개도 들지 못했던 무게를 몇 번씩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더디었지만, 내 몸이 할 수 있는 힘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근육통을 품은 일상은 고되었지만, 그 통증은 성장의 신호라는 걸 알았다.
조금 지칠 땐, 나를 다독였다. 오늘만 날이 아니라는 마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수도 있다는 다짐. 그래서 때로는 운동을 가볍게 하기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조금 먹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촬영을 앞두고는 스튜디오와 의상을 고르는 과정이 또 하나의 여정이었다.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찾았다. 몸의 선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공간, 과장되지 않은 조명이 있는 곳. 결국 내가 원한 건 ‘꾸민 모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온전히 담아내는 무드였다. 의상은 세 가지로 정했다. 단단한 실루엣이 드러나는 검정색 바디수트, 대비를 주는 하얀색 속옷, 그리고 심플한 검정 의상. 색과 소재는 달랐지만, 공통점은 ‘가장 나다운 옷’이었다. 여러 번 거울 앞에 서 보며 고민했지만, 결국 가장 나다운 선택이 답이었다.
촬영 당일, 낯선 조명과 카메라 앞에 서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곧 묘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포즈를 바꾸며 셔터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지난 몇 달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헬스장의 땀 냄새,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던 러닝머신,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던 손끝의 기억. 닭가슴살과 채소를 씹으며 ‘내가 먹는 게 곧 내 몸이 된다’고 다짐하던 밤. 그 모든 순간이 사진 속 내 몸과 표정에 응축돼 있었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보정본 한 장을 바로 받아볼 수 있었는데, 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화면 속의 나는 낯설 만큼 새로웠지만, 동시에 ‘이건 분명 내가 해낸 나다’라는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오랜 준비와 노력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손에 잡히는 순간,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듯했다.
남들에게는 그저 한 장의 바디프로필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달랐다. 그 사진 속의 사람은 단순히 운동을 열심히 한 누군가가 아니라, 땀과 절제와 시간을 쌓아 만들어낸 분명한 나였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증거였고, 성취의 상징이자 내 생존의 기록이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무모할 만큼 뜨거웠다. 그러나 그 뜨거움 덕분에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내 몸을 믿게 되었다.
처음 보정본 사진을 확인했을 때, 마음속에 울려 퍼진 말은 단순했다.
“그래, 이건 분명 내가 해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