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나를 증명하던 시절

by 황수민

운동을 시작한 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건강해지고 싶었고, 삶의 루틴을 만들고 싶었고, 복잡한 감정을 정돈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목표는 ‘보여지는 나’로 향하고 있었다.

헬스를 꾸준히 하며 몸이 변해가자 주변의 반응도 달라졌다.

“너 진짜 몸 좋아졌다.”
“바디프로필 찍어도 되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꽤 좋았다. ‘내가 변하고 있구나.’ 확신이 생겼고, 그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듯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내가 해낸 걸 보여주고 싶다.”


사실 바디프로필을 찍을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말, 그리고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바디프로필 문화가 나를 흔들었다. 원래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 역시 한때의 유행이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가장 젊은 시절의 몸을, 가장 단단했던 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될지도 몰라.’


그때의 나는 체지방이 줄고 근육량이 늘며, 식단과 운동을 철저히 병행하던 시기였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몰입해 있었고, 의지력이 단단하게 붙잡힌 상태였다. 바디프로필 준비 과정은 의외로 담백했다. 혹독한 다이어트나 극단적인 수분 조절도 없었다. 평소처럼 먹고, 평소처럼 운동했다. 내 목표는 ‘더 마른 몸’이 아니라 ‘더 강한 몸’이었다. 몇 킬로그램을 감량했는지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단단한 자세로 스쿼트를 해내는 것이 더 큰 의미였다.


촬영 날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몰려왔다. 포즈를 바꾸며 사진을 남기는 순간, 지난 5개월이 눈앞에 스쳐갔다. 땀 냄새 가득한 헬스장, 무거운 덤벨을 내려놓던 손끝, 단백질 함량을 꼼꼼히 따지던 식단. 그 모든 시간이 사진 한 장에 응축되어 있었다. 남들은 그저 결과물인 사진만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담긴 땀과 눈물, 나 자신과의 싸움을 알고 있었다. 그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변화의 증거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진을 찍고 나자 긴장감도 함께 사라졌다. 목표가 사라지자 루틴이 흔들렸고, 루틴이 흔들리자 감정이 무너졌다. 운동은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강해 보이기 위해 운동했다.


나는 그 시기를 조용히 “몸으로 나를 증명하던 시절”이라고 부른다. 운동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운동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강해지기 위해 운동하던 때에서, 약해지지 않기 위해 운동하는 시기로 넘어갔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움과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무게로 밀어냈다. 어쩌면 감정이 무거울수록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벨을 들어 올릴 때마다 내 안의 답답함이 함께 솟구쳐 올라오는 듯했다. 감정이 무게로 바뀌어 몸을 타고 흐르는 경험은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운동은 나의 방패였다. 감정의 칼날이 덮쳐올 때, 버티는 내 몸이 그 칼날을 튕겨냈다. 하지만 방패는 언제까지고 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감정을 억누르고 버티는 대신, 그 감정과 나란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헬스를 시작하고 2년 동안, 나는 몸과 함께 마음의 루틴을 배워갔다.


몸을 증명하려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운동은 나를 돌보고 지켜내는 방식으로 남아야 한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믿기 위해서.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무모했지만 뜨거웠고, 무서웠지만 용감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다.


“정말 잘했어. 이제는 조금 너의 시간대로 천천히 걸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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