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몸이었다.

by 황수민

하루 24시간. 그 안에 후회와 낭비로 가득 찬 시간을 더는 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나 충동적인 선택들. 정작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지나고 나면 별로 만족스럽지도 않은 시간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직한 회사는 다행히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덕분에 퇴근 후의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일정한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고 싶었고, 휘둘리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내 일상은 점차 ‘기상–출근–헬스장–집–취침’으로 고정되어 갔다. 이 루틴을 유지한 지도 벌써 5~6년. 헬스를 시작한 지는 2년 정도 되었고, 그전에는 달리기, 복싱, 영어 공부로 퇴근 후 시간을 채웠다.



이 글을 쓰며 문득 예전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 시절의 나는 약속으로 일주일을 꽉 채우기도 했고, 하루에 두 번씩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정말 심심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바쁘게 지내야 잘 사는 거라고 믿었던 걸까.


이십대 초반의 나는 체력이 넘쳤고, ‘인생 뭐 있어, 즐기자’라는 태도로 살았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삶의 방향 같은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야근과 주말근무가 일상이었고, 건강을 잃고 도망치듯 나온 다른 회사에서도 새벽 첫차까지 이어지는 회식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가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일상은 온통 스트레스와 투쟁으로 가득했다. 몸도 마음도 성치 않았고, 치열하게 버텼지만 끝내 남은 것은 상처와 후회, 무기력뿐이었다. 굳이 남은 걸 꼽자면 투쟁심, 생활력, 눈치 정도였을까.



지금도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말이 너무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연봉을 크게 낮추더라도 ‘먹고살기 위해 일하기’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회사가 지금의 직장이다.


시간이 흐르며 연차도 쌓이고 연봉도 회복됐지만, 무엇보다도 더 큰 걸 얻었다. 바로 루틴이었다.
야근도, 주말 근무도 없는 환경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시간을 진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는 걸.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도 늘 허전하고 공허했는데, 혼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해보면서부터 그 감정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끔 다시 허전함이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루틴에 충실한 하루를 보낸 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흡족해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싶었다. 때때로 몰려오는 우울과 슬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운동이었다.


운동을 하는 동안만큼은 몸이 힘드니 다른 걱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달리기나 등산은 혼자서도 오래 할 수 있었고, 땀을 흘리며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은 명상 같았다. 정신이 맑아졌고, 체력은 덤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나는 유산소 위주의 운동만 하고 있었고, 근육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만들어보자.’ 그렇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집 근처 헬스장에 4개월 등록을 하고, 다음 날부터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집에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다닐 수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오는 것도 귀찮지 않았다. 주말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헬스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인바디 검사를 많이 한다길래 나도 몸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근육량은 부족했고, 체지방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동기가 되었다. 헬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히 몸매 관리나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 삶에 질서를 들이고 싶었다. 운동과 식단을 중심에 둔, ‘다른 일상’을 살고 싶었다.



식단 관리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원래 군것질이나 배달 음식을 자주 먹지 않았고, 먹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성향이라 정해진 식단이 오히려 더 편했다. 단백질 위주의 식사로 바꾸고, 하루 세 끼를 두 끼로 줄였다. 장을 볼 때는 습관처럼 영양성분표를 확인하고 단백질 함량을 따졌다.


먹는 것이 곧 나를 만든다는 말이 실감났다.
헬스와 식단을 중심에 둔 하루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를 정하게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몸과 일상을 바꿀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무언가를 덜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 운동, 식단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활동은 뒤로 미뤘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했다.



운동은 나를 더 낫게 만드는 행위였다. 꾸준히 반복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씩 키워주었다.


처음 3개월은 그저 운동을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으로 보이는 변화가 시작됐다. 피부에 탄력이 생기고, 붓기가 빠지고, 군살이 정리되었다. 다시 인바디를 재보니 체지방은 줄고 근육량은 늘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정직한 결과물이었다.


이 변화와 성취감은 헬스를 더 오래, 더 꾸준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헬스를 시작한 지 5개월쯤 되었을 무렵, 주변에서 바디프로필을 찍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 유행이던 때라, 나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바디프로필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지만, 나는 근육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감량 스트레스도 덜했고 준비 과정도 훨씬 수월했다. 결국 헬스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운동은 내 삶에서 단단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헬스는 어느새 2년이 넘었고,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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