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나를 내려놓는 연습

by 황수민

바디프로필 이후 나는 한동안 방향을 잃었다. 몸은 여전히 단단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거울 속 근육은 여전히 나를 증명해 주는 듯 보였지만, 그걸 바라보는 내 시선은 점점 무뎌졌다. 땀을 흘려도 예전처럼 성취의 기쁨이 차오르지 않았고, 식단을 관리해도 뿌듯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게를 들 때마다 느끼던 짜릿함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들 수 있는 무게가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몸을 키우고 싶어 시작한 운동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는 건 나를 끊임없이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일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며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운동에만 모든 시간을 쏟아붓는 게 아니라, 일과 관계, 휴식과 취미에도 체력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헬스는 ‘건강’이 아니라 ‘근육’을 위한 것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헬스장의 분위기도 더 이상 편하지 않았다. 트레이너의 집요한 PT 영업, 회원을 그저 수익으로 계산하는 듯한 시선. 땀을 흘리러 간 공간이 어느새 물건을 강요받는 시장같았다. 한때 그곳은 내게 전부였다. 근육을 만들고, 삶의 리듬을 세우고, 무너질 것 같던 나를 다시 세워 준 곳.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조차 이제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 그만두자. 더는 그곳에 매여 있지 않겠다고. 해방감이 들었다. 오래 묶여 있던 사슬이 풀린 것처럼 시원했다. 동시에, 내게 엄청난 의미를 주었던 공간과 이별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순히 운동을 멈추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지탱해 온 한 축을 내려놓는 결단이었으니까.


운동을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오래, 유연하게, 나답게 이어갈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요가였다. 매트 하나면 충분한 운동,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갈 수 있는 운동. 처음에는 ‘유연성 기르기’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또 다른 바람이 있었다.

‘건강하게 늙고 싶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여전히 나를 챙기고 싶다.’


매트 위에서 처음 마주한 낯섦, 요가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공기는 헬스장과는 사뭇 달랐다. 덤벨이나 철판이 부딪히는 소리는 없었다. 대신 은은한 음악과 때론 적막과 정적이 흐르고, 매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벽면 거울 속에는 운동복을 입은 내가 있었지만, 그 모습은 헬스장에서처럼 당당하거나 강인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어설프고 낯설었다.


첫 수업은 쉽지 않았다. 몸은 마치 기계 부품처럼 굳어 있었고, 동작은 나무젓가락처럼 뻣뻣했다. 동작 하나하나마다 온몸이 긴장했다. 옆 사람은 유연하게 몸을 열어내는데, 내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게 굽고 삐뚤어져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뻣뻣할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 순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지금 있는 데서 하셔도 됩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꾸준히 하면 자연스럽게 유연해질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깨에 걸려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으니 동작이 완벽하지 않아도 숨을 붙잡을 수 있었다. 어설프더라도, 지금 나의 속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었다. 요가는 힘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헬스가 근육을 더 키우기 위해 몸을 몰아붙이는 운동이었다면, 요가는 긴장을 풀고 호흡을 이어가는 수련이었다. 억지로 모양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몸이 닿는 만큼, 숨이 닿는 만큼이면 충분했다.


수업을 거듭하면서 작은 변화를 발견했다. 평소 내 어깨가 얼마나 자주 긴장되어 있었는지 알게 됐다. 다리에 힘을 양쪽에 다르게 주는 버릇도 보였다. 갈비뼈가 습관처럼 앞으로 들리고,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무너뜨리는 자세도 깨달았다. 요가는 단순히 근육을 늘리는 운동이 아니라, 내 몸의 습관을 하나하나 들춰내는 수련이었다.


조금씩 유연성이 길러졌다. 아침에 뻣뻣하던 햄스트링이 전보다 부드럽게 풀리고, 어깨의 긴장이 호흡과 함께 툭 내려갔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마음이었다. ‘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지금 이 자세로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들어왔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설퍼도, 꾸준히 시도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요가는 내게 성취보다 회복을, 완벽보다 수용을 가르쳐 주었다. 헬스가 기록으로 ‘만드는 운동’이었다면, 요가는 돌아보며 ‘돌아오는 수련’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근육 대신, 나에게 돌아오는 감각을 선물해 주었다. 더 강해지는 게 결국 힘을 더 쓰는 기술이 아니라, 힘을 빼고도 돌아올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여전히 안 되는 동작들이 많고, 어떤 날은 마음이 더 뻣뻣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못하는 나를 몰아붙이는 대신, 그 자리에서 숨을 내쉬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돌아오는 데에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태도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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