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고 어둡고 추악스런 진흙 속에도 연꽃은 핀다.

나의 2025년, 안녕. 차갑고 냉정한 눈꽃속에도 동백꽃은 핀다.

by 황수민


나의 2025년, 안녕.

끔찍하고 어둡고 추악스런 진흙속에도 연꽃은 피더라.

차갑고 냉정한 눈꽃속에도 동백꽃은 피더라.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시계의 째각거리는 시침시간조차 거슬릴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날카로운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내고 있다. 일을 너무 못하고 나아지려 노력하지 않는 사장의 친척이자 회사 후임으로 인해 매순간 너무 시달렸다.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성추행한 회사 상사 때문에 수치스러웠고 곤욕스러웠다. 말이 매일 바뀌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바쁠때 유독 몇 분마다 계속 불러대는 사장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책임은 던져주고 깔려숨막혀 죽어가는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어차피 사람구하면 된다. 이야기를 해도 돌아오는 건 참으라는 말밖에 없다. 그것의 대가는 이미 책임과 참음의 한계를 넘어섰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 된다. 본인이 편한게 제일이다. 정떨어진다. 치가 떨리고 증오와 혐오가 내 심장을 뛰게하고 일의 원동력이 된다.


회사스트레스로 일상이 많이 무너지고 마음은 폐허가 되었다. 여유가 눈꼽만큼도 없었고 괴로움과 숨막힘에 허덕였다. 상황이 어디까지 파국으로 치닫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하루하루를 참 많이 보냈고 존엄성이 추락하는 시간들 속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맞추려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아찔했던 순간순간들이었다. 아직도 내 정신을 거침없이 갉아먹는 구더기 같은 아주 기분나쁜 하루하루는 변함이 없다.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매 순간 숨쉬듯 쫓아오는 고통에 하루종일 시달렸다. 자기통제감을 언제 어디서 잃어버린건지 고통은 또 다른 괴로움과 상처를 불러왔고 그럴때마다 자괴감이 나를 잡아먹었다. 이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그랬다. 언제나 힘든 순간들은 있다. 유독 힘든 날들도 있다.


하지만 나를 채근하고 또 채근했다. 내 고통의 감내의 크기가 줄어들었는지, 내가 나약해진건지, 내가 예민해서 그런건지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너무 많이 참아왔는지, 그래, 많이 참긴 참았지. 참는 법 밖에 몰랐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듯보여도 속에선 천불이 났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끝없는 구렁텅이에 던져진 느낌을 받았다. 글씨를 읽어도 보이지 않았고 글씨를 써도 내가 쓰지 않은 글씨들 뿐이었다.


길이 없는 숲속을 누비듯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그저 걸을 뿐이었다. 사방을 훑어보아도 내가 걸음을 옮겨보아도 보이는 시야는 똑같았다. 내가 걸어왔었는지 계속 서있었던 건지 이제 헷갈리기도 한다. 마음은 이미 죽어있었던 걸까.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바삐움직이고 뇌를 수없이 굴려댔다. 로봇처럼 살다가 진짜 로봇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몸의 감각만 살아있을 뿐 다채롭고 풍성했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점점 흑백이 되어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참아왔던 거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던 거지. 그 무엇이란 답은 평생 찾지 못할 것 같다. 매 순간 의미있게 사는 것도 불가능 하지만 살아있는 것,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오늘 내 할 일을 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안다.


일을 하는 것, 노동을 하는 것. 그것에 의미를 두고 책임을 다하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 여기에 고장이 난 것 뿐인데 내가 고장이 난 것이라고 여기고 나를 고치려하니 나는 점점 병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안받아도 될 치료를 받고 안먹어도 될 독한 약을 계속 먹은 것 처럼 나는 날마다 점점 시들어가고 병들어가고 진짜 고장이 나고 있었다.


영원히 잘될 수도 없고 영원히 불행할 수도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구지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안다. 봄이 되면 새싹이 나고 꽃이 피듯 여름이 되면 뜨거운 태양과 푸르름에 눈이 부시고 때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가을이 되면 무르익은 열매들과 곡식을 추수하고 겨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떤 푸르름도 싹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와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분다. 이것을 이해하고 왜 그럴까, 무슨 의미일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렇듯 삶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계절들이 있나보다. 너무 버티려고 감내하려고 하지 않아야지. 여름엔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에 시원함을 누리듯 뜨거운 태양과 맞서 싸워 끝까지 버티어 타녹아내리지 말아야지. 겨울엔 추위를 피해 두텁게 옷을 입고 따뜻한 곳을 찾아 몸을 녹이듯 찬바람을 이겨내고 강해져보겠다고 동상에 걸리고 감기가 걸리도록 나를 놔두지 말아야지.


때로는 유연함이 강함을. 바다를 항해할 때 불어오는 바람에 돗대를 바꾸어 목적지를 찾아가듯이. 하루 속의 하늘도 매시간마다 달라지듯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순간순간마다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세상도 이토록 다채롭고 다양하고 풍성함하고 아름다운 만큼 살아내는 태도도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함을.


때로는 받아들이는 것도. 나를 스쳐 흘러가게 하는 것도. 그저 그렇게 놔두는 것도. 놓아버리는 것도. 이것도 내가 참 많이 애썼기에 할 수 있었음을. 내가 만든 시간들도 있지만 이제는 시간이 만드는 나를 만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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