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치열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by 황수민

"인생은 더 쉬워지거나 관대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더 강해지고 더 회복력 있게 될 뿐이다."

"Life doesn't get easier or more forgiving, we get stronger and more resilient."

– 스티브 마라볼리(Steve Maraboli)


운동하기에 완벽한 컨디션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달리기하기 좋은 날씨와 체력이 동시에 맞아떨어지는 순간도, 공부에 몰입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갖춰지는 날도 일 년에 몇 번 오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이상적인 조건 바깥에서 하루를 살아낸다.


직장인으로서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지만, 그날의 하루는 결코 같지 않았다. 업무량, 피로, 감정의 결, 생각의 방향은 날마다 달랐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가장 바쁘고 가장 여유 없는 순간을 비집고 들어왔다.날씨조차 예보를 배반하는 일이 잦았다.


삶은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변동을 일으키고, 우리는 그 변수를 감당하는 법을 매일 새로 배워야 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하게 이어진 시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하루하루는 놀라울 만큼 복잡하고 치열했다. 그 속에서 루틴을 지키고, 자격증을 준비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며 나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완벽한 하루’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일 아침마다 나는 작은 내적 갈등과 마주했다. 아침 공부도, 운동도, 일상 관리도, 집 안을 정돈하는 일도 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은 늘 손쉽게 떠올랐다. 피로와 수면의 부족, 날씨의 변덕, 업무의 무게, 기분의 흐림, 타인의 일정, 어제의 수고에 대한 묘한 자기 보상, 집안의 정황, 귀찮음이라는 미세한 저항까지. 오늘 하루쯤 미뤄도 달라질 것 없는 듯한 생각은 늘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핑계를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 감정들을 하기 싫음, 멈추고 싶음, 주저함을 사회적으로 이해받기 위한 그럴듯한 포장, 즉 얇은 합리화라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감정들의 근원이 그보다 더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정지하려는 나’와 ‘전진하려는 나’ 사이의 본질적 진동이었다. 우리는 늘 두 방향으로 끌린다. 하나는 지금의 나를 보호하려는 힘, 익숙한 자리에 머물고자 하는 내면의 중력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미세한 추동력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 떠오르던 수많은 이유들은 사실 이 두 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존재적 몸짓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핑계’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무능의 징표가 아니라, 변화가 시작될 때 인간이 겪는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은 마음은 결코 비겁함의 증거가 아니라, 변화가 우리 안에 도착했다는 조용한 신호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유의 유무가 아니었다. 그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어떤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는지가 나의 삶을 결정지었다. 나는 수많은 저항과 흔들림 속에서도, 아주 작은 ‘전진’의 쪽으로 기울어지는 선택을 반복해왔다. 그 미세한 기울임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매일의 갈등은 나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빚어내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멈추려는 힘과 나아가려는 힘 사이의 흔들림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닌 가장 인간적인 리듬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 하면 언제나 예상 밖의 문제가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약속, 피할 수 없는 돌발 상황, 혼자 감당하기 벅찬 사건들. 예전에는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 주어진 불행처럼 느껴졌다. 왜 지금인지, 왜 반복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삶에 ‘갑자기’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삶은 원래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것을. 계절이 흐르고 날씨가 바뀌듯, 삶도 고요와 파동을 번갈아 내놓으며 우리가 멈추지 않도록 흔들어 깨운다는 것을. 루틴은 자주 깨졌고, 그 실패의 횟수는 셀 수 없었다.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찾아오는 패배감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야말로 다시 시작할 힘을 만들어주었다. 넘어진다는 사실이, 곧 다시 일어설 이유가 되었다.


삶에는 비교로 규정할 정답도, 잘살고 못살고를 가를 기준도 없다. 우리는 단지 주어진 조건 속에서 각자의 태도를 선택하며 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나는 꾸준히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며 깨달았다. 삶의 변덕스러움은 나를 방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율이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 불규칙하고 거친 흔들림 속에서 내가 지켜낸 하루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나날들이 결국 삶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변덕스러운 하루들이야말로 삶이 본래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순간들이었다. 그 시간의 축적 위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의 변덕스러움은 불편한 변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를 재정렬하고 더 단단한 자리로 이끄는 하나의 방식이며,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또렷해지는 선물 같은 과정이었음을. 그리고 그 선물들은, 삶이 생각보다 훨씬 더 다채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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