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도시를 방문하는 나의 간극
뉴욕은 내가 갓 20살이 되었을 때, 설레는 뮤지컬 꿈나무의 마음으로 방문했던 곳이다. 여름을 온전히 음악으로만 꾹꾹 채워 보내면서, 이 도시에서 계속 노래하고 춤추며 살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종종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30살에 방문한 이 도시는 어느덧 또 다른 낯선 곳이 되어있었다. 그 간극을 느끼며, 이렇게 또 미국이란 나라와 하나하나 이별할 준비를 한다. 지난 일 년 사이에 벌써 3번이나 방문한 곳이지만, 뉴욕은 이렇듯 나에게는 늘 애증의 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 같다.
20살, 여름의 끝자락에서 시끄러운 F선을 타고 친구와 어디론가 가던 중이었다. 이 도시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울적해질 무렵, 그 친구가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쩌면 우리는 이 지하철을 타고 터널을 지나가는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는 거야. 이 도시 속의 우리는 다시 존재하지 않는 거지. 그렇기에 다음 너와 내가 다른 도시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대화가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의 나는 도시와 도시 사이에 달라지는 나의 모습에 대해 꽤나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고민은 오늘날의 나에게도 정체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긴 한다). 그 친구는 이제 성공한 변호사가 되어 베벌리 힐즈에서 나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물론 변함없이 함께 깊은 철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도 민소매를 멋스럽게 소화하는 내 친구였지만, 우리가 앞으로 얼굴을 맞댈 어떤 나날들 속에도 더 이상 2013년 뉴욕의 여름을 함께 맞이했던 그 모습은 볼 수 없으리.
10대의 끝자락에 만났던 대학 친구들은 어느새 어엿한 가정을 꾸린 30대의 부부가 되어 있었고, 꿈을 찾아 헤매며 걸었던 뉴욕의 밤거리는 그들에게는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일상이 되어있었다. 브루클린에서 바라보던 맨해튼의 황홀한 야경도,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식당들도,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들도, 뉴욕의 주민이 된 내 친구들에게는 지극한 현실의, 일상의 유희가 된 것이다. 뉴욕은 그저 나에게만 여전히 꿈과 현실사이의 몽롱한 간극으로 남아있을 뿐. 그래, 그래서 이 도시는 방문할 때마다 그 시절의 나의 꿈과 낭만을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나는 뉴욕을 싫어한다. 갑작스러운 빗줄기에 놀라 모르는 상점에 들어가서 샀던 장화는 이제 유행이 지나 너덜거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고, 열정을 불태우며 말 그대로 "열정페이"로 일했던 인권단체들은 이제 구조적 결함의 답답함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온다. 유니언 스퀘어에서 친구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사 먹었던 자그마한 컵케잌은 이제 기피하는 설탕덩어리가 되어버렸고, 거나하게 한 잔을 마신 날 즐겨 먹었던 기름기 가득한 피자는 이제 두 입만 먹으면 애석하게도 입에 물린다.
그래서 나는 뉴욕을 좋아한다. 어느 모퉁이를 돌면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 자기 방어랍시고 우산을 휘두르고 있는 내가 있고, 어느 공원에서는 잔디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가삿말을 생각하던 내가 누워있다. 이 도시에서는 가슴이 벅찬 공연을 보고 온 저녁 쉬이 가라앉지 않는 흥분에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몇 번이나 재생하는 내가 있고, 또 중요했던 첫 학회 발표를 마무리하고 공허하고 허탈한 심경에 너털거리는 발걸음으로 숙소로 걷고 있는 내가 있다.
뉴욕 - 너는 그 어여뻤던 갓 20살의 나도, 방황하던 20대 중반의 나도, 그리고 30대의 첫 발걸음을 디디는 나의 모습을 다 담고 있구나. 이제 보낼 이가 사라진 6월의 편지를 이렇게나마 늦게 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