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비자가 취소된 순간
그래, 20년 넘게 산 이 땅에서 - 나는 영원히 집이라고 부를 이 도시에서의 거주비자가 오늘 취소되었다.
한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나를 더 약하게 만든다.
이곳이 만일 미국이었다면. 이곳이 만일 프랑스였다면. 내가 아는 나라들의 정책들을 머릿속에 열거하며
복잡함 속에 씩씩대어 보지만, 결국 정해진 답은 같다. 오늘 나는 이 도시에서의 거주비자가 취소되었다.
사실 예견한 일이었다. 몇 달 전부터 이곳의 비자를 갱신하려고 한다면 부산하게 움직이며, 필요한 서류들을 얻으려 이 나라 저 나라 사이에 바지런하게 움직였었겠지. 그 시간 속에 더디게 체념이 되었은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맞닥뜨려진 현실은 조금의 괴리가 있다. 아, 물론 긍정적 괴리를 뜻한다.
몇 달 전, 내가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기에 (아니, 이 망할 박사생활이 도움이 되었다니...?) 더 이상의 거주비자를 영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우 쉽게 특별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정책적으로 나는 그 비자를 신청할 자격이 있다, 다만 행정적으로 실행되지 않았을 뿐... 한 시간이 넘는 전화문의를 넘겼을 때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정부님, 사랑합니다), 결국 나도 여타 다름없이 집을 집이라 부를 수 없는 이민자인 것이다. 감히 나는 다를 거라 우쭐대던 나 자신을 더 크게 비웃고 싶다.
하지만 그 괴리는 분명 긍정적이다. 아냐, 이건 정신승리가 아닌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흘릴 눈물은 몇 개월 전 흘렸고 (물론 오늘도 난... 어느 정도 울 것이ㄷr...),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임을 알기에 마음을 더더욱 다잡았기에, 막상 맞닥뜨리는 오늘은 그 어느 하루와도 다름이 없다.
육체적인 공간과 감정적인 충만함의 거리는 대체 무엇일까. 이 묘한,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충만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다만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가득 차고, 나쁘지 않다. 비록 관광비자로 밖에
연명할 수 없는 몸일지언정, 내가 20여 년을 집이라고 부른 곳이 나를 이방인 그리고 여행자로 취급할지언정, 생각보다 일상은 견딜만하고 나의 오늘은 무탈하다. 물론 분하긴 하다. 허나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어릴 적 심취했던 카뮈의 대사보사 이방인의 삶은 더욱 근사하며 (que "tout le monde sait que la vie ne vaut pas la peine d'être vécue"? quelle connerie), 오늘 - 또 내일은 또 이어져 갈 것이라는 것.
복잡한 하루 속, 적당히 울고 일어나려고 한다.
"내일 아침은 떡만둣국을 해 먹을까?"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기꺼이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