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가까운 사람들과 정서적 감정적 거리 유지를 위한 기준으로 호의를 사용해 왔다.
가족이나 애인도 포함된다.
우선 배려와 기쁜 마음으로 호의를 베푼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해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거의 다 들어주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을 차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처럼 나에게 조금은 불편하지만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몇 번 진심으로 기쁘게 해 준다.
이럴 때 세 가지의 인간 타입이 있다.
1. 고마워하고, 그 이후에도 저번에 태워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경우. 그러면서 다음에는 내가 태워 주겠다고 하는 사람.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높은 확률로 지능이 높고(자상함과 고마움을 느끼는 등등의 감정도 지능이 높아야 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호의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2. 고마워하고, 그 이후에 혹시 또 차로 데려다줄 수 있냐고 부탁하는 타입. 이런 사람들은 그 이후 몇 번 더 태워주면, 점점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호의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에나 고마워하지, 점점 그 고마움을 잊어버린다. 호구들은 이런 사람에게 끌려 다니며 호구짓을 하다가 나중에 상처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호의를 베풀지 말자.
3. 고맙다고만 하면 될 텐데, 나중에도 태워 달라고 하거나, 내가 다음에 또 태워 달라고 부탁해도 되냐며 자신이 호의를 받을만해서 받는다고 착각하는 경우.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면, (특히 그게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 일 수록) 마치 자신이 당연히 받을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직장 상사라면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비위를 맞추겠지만, 친구나 동료, 가족 또는 연인일 경우 손절하거나 바로 거리를 둬야 한다. 이런 사람들 중 뒤 늦게 눈치채고 다시 연락을 하거나 잘해주려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미 늦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게 곁에 있을때 잘 하지.
이렇게 내가 먼저 처음부터 잘해 주고 그 이후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 굳이 긴 시간과 돈을 들여서 헛 짓 하지 않고 빠르게 초반부터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상대의 좋은 인성 또는 인성의 바닥까지 두루 파악이 가능하다.
손절하기 힘든 가족일 경우 어떻게 하냐고?
나와 시어머니의 일화를 보자.
나는 시어머니와 세 번째 만나던 날, 시어머니를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 드렸다. 결혼 전이었으니 예비 시어머니 었다고 할 수 있다. 목적지는 차로 왕복 40~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냥 알아서 가시라고 할 수 있었지만 태워 드리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운전하는 나에게 “얘 너 앞으로 내가 자주 태워 달라고 하면 어쩌려고 날 이렇게 태워다 주니!” 하셨다. 물론 집 앞까지 운전해서 태워줘서 고맙다고는 하셨다. 나는 그 이후로 남편이 절대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면 시어머니는 가급적 차로 모셔다 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그 이후 시 어머니에게 많은 선물을 드렸지만, 그중 크림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 이후 만날 때마다 저번에 그 크림 잘 썼다고 하시면서 “나는 예전에 겔랑 크림을 썼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라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하셨다. 나중에 출국을 하면서 면세점에서 나와 남편이 산 물건을 합친 금액 보다도 비싼 90만 원짜리 겔랑 크림과 에센스를 사서 선물해 드리자, 시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시면서 그 크림을 쓰셨다. 시어머니는 이걸 왜 샀냐고 하셨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남편이 나에게 “사달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한 거 아니야?”라고 하지 그랬냐고 했던 말을 진짜 시어머니에게 할 걸 그랬다. 그냥 나는 그 크림을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회사 문제로 맘고생하시니까 위로 차원에서 사드린 거였다. 딱히 그녀가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ㅎ
얼마 뒤 시어머니는 나에게 혹시 예전에 사줬던 그 크림을 대신 구매해서 해외에 올 때 가져다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돈은 일단 네가 먼저 사면 나중에 남편을 통해 주겠다면서. 나는 기꺼이 사드렸다. 그 이후에 또 크림 이야기를 하시길래 내 돈으로 사겠다고 말하고 그냥 또 사드렸다.
그 이후에 어머니는 또 나에게 저번에 그 크림 좀 대신 주문해 달라고 하셨다. 부탁하는 기색도 없으시고, 돈을 준다 만다 말도 없으시길래 나는 이제 어머니도 한국에 들어와 사시니, 알아서 주문하시라고 했다. 내가 무슨 시어머니 크림 전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크림을 사드리는 게 무슨 당연한 일처럼 시키시길래 거절했다. 애초에 크림 선물이 고마웠으면 그 크림을 어디서 구매하냐고 나에게 물어서 시어머니 본인이 직접 사셨어야 한다고 본다. 남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무언가를 나에게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결혼 전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시부모님께 잘 했다.
남편도 안하는 연락도 내가 먼저 자주하고 내가 먼저 시부모님과 여행도 하자고 제안했다. 내 친 부모님들에게 하는것보다 더 많이 맘을 쓰고 돈도 더 썼다. 그것들이 시부모님에게 점점 당연해 지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다. 결혼 전 부터 최근까지 진심으로 그분들께 많이 잘 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당당하게 기본적인 일만 할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내가 먼저 시부모님께 호의를 베푸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 나도 물론 시어머니에게 물건을 받았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향이 너무 강해서 시어머니 취향에 별로인 핸드크림, 지인에게 받았는데 색이 너무 강해서 맘에 안 드는 립스틱, 지인이 준 너무 길어서 못 입는 알록달록 앞치마, 지인이 줬지만 시어머니는 안 입을 것 같은 스트라이프 셔츠 등등. 거절하기 힘들어 기뻐하는 척 받아왔지만, 전부 안 쓰고 다 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상대가 나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지를 잘 보고 주변 지인, 가족에게 적용해서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실 나는 내 친엄마와 친언니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 중에 상대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친엄마와 친언니는 나르시시스트니까 그러려니 하고, 시어머니는 3번째 인간 타입이라고 생각하고 그 정도의 거리를 둔다. 타입별로 스스로 편한 심리적 거리를 정한 후 그 거리에 맞춰 지내는게 좋다.
누군가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 복을 걷어 차는 사람들이 많다. 애초에 그들 마음에는 진심으로 고마움은 없었던 걸 수도. 그냥 고맙다고 말만 한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