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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Sep 27. 2023

나르 엄마에게 자녀란 중도해지 불가한 투자상품과 같다2

내가 투자를 제일 많이 한 둘째 딸 상품이 떡락하다니!

힘들게 노력해 들어간 예중에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좋아서 한 전공도, 좋아서 시작한 바이올린도 아니었기 때문에 경쟁과 엄마의 압박 속에서 잘 적응했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나는 연주가 잘 안되면 연습 중 항상 울었고,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엄마에게 어떤 욕을 얻어먹을지,

아빠는 날 얼마나 싸늘하게 쳐다볼지 너무 무서웠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발표와 공연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다.

선생님이 조금만 지적을 해도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바이올린을 보기도 싫었고, 바이올린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송진 가루 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연주를 하다가 활을 부러트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활 총을 전부 뜯어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연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매일 베개가 젖을 때까지 울면서 자다가 아침엔 부은 눈으로 일어나서 학교에 갔었다.

엄마한테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누구나 힘든 거라고 했다. 가뜩이나 워킹맘이라 너무 힘든데 너까지 보태지 말라고 했다.


징징 거리지 말고 참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참았다.


그리고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부모님은 여태 까지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 줄 아냐고 나를 설득했다.  


그동안 고생했겠다고 말하면서도 너의 재능이 아까우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하던 엄마는 설득이 안 먹히자 나를 비난했다.


‘나약해 빠진 것, 조금의 힘듬도 참지 못하는 애’ 라고 하며 나를 비난했다.



엄마는 아빠보고 나를 데리고 정신과에 가서 아동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딸이 정신이 이상한 것 같으니 상담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어떻게 이렇게 나를 배신해!"


엄마는 내게 매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만큼 참고 더 열심히 연습하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세상에서 참는게 제일 싫다. 3n살 될때까지 엄마 때문에 참는 걸 너무 질리도록 많이 해서 이제는 ‘참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마음을 바꾸고 기꺼이 해버리거나, 참을 바에는 아예 안한다.


참긴 뭘 참아.


아빠는 결국 포기했지만, 엄마는 끝까지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두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가 희생하고 노력해서 퍼부은 시간과 돈을 패배자 딸에게 다 빼앗겼다는 사실에 엄마는 분노했다.


여태까지 제일 많이 투자한 둘째 딸 상품이 하루아침에 떡락했다고 판단한 엄마는 망연자실했다.


내가 예중에서 중퇴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가까운 친적, 가족들이 알면 엄마를 비웃고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공격적으로 투자 한 둘째 딸 상품이 떡락하다니!

나르 엄마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부모가 강요하는 여러 활동을 소화해 내기 버거워하면서 "힘들다"라고 표현할 경우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의 감정에 전혀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 또한 자녀에게 이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투자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녀에게 매우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등 돌변할 수 있다.

‘네가 엄마 아빠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면 우리는 너한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보일 테지만, 우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너는 아웃이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 원은수,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토네이도, (2023), p170-171.



나는 진짜 아웃이 되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 한국에서 'out'되어  미국으로 'in' 했다. 


아빠가 때마침 회사일로 미국에 가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 있고 싶었었는데, 사실 엄마랑 같이 지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나마 좀 나은 부모인 아빠를 따라갔었다.

사실 그때 엄마한테 나도 언니처럼 그냥 혼자 홈스테이를 하면서 유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 아빠 둘 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아직도 기억나는 무서운 얼굴로 나한테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너같이 나약한 애가 혼자 공부를 한다고? 넌 언니처럼 여태까지 공부한 적도 없잖아! 너 붙잡고 지금부터 가르쳐도 선행학습한 애들 따라잡을까 말 까야!!!!" "기본도 기초도 안 된 애가 혼자서 공부를 어떻게 하겠어!!! 네가 뭘 알아? 너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지? 너 막 나가려고 수 쓰는 거지!?!"



나르 엄마는 두 딸이 자기가 짜 놓은 루트에서 벗어 날때마다 어떻게 할지 고민 끝에 늘 ‘해외로 유학 보내버리기’ 를 택했다.  나의 나르 엄마 생각에는 다른 사람들이 딸은 뭐해? 라고 물어보면 유학 보냈다고 말 하는게 더이상의 부가 설명 없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에 가장 좋아 보였을 것이다. 자녀가 해외 낯선 땅 에서 적응하느라 힘들거나 외롭진 않을지와 같은 걱정은 나르 엄마가 할 걱정이 아니었다.


나르 엄마는 내게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낯선땅에서 적응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여태까지 방치한 수학 실력을 나의 힘으로 이제 다시 끌어 올릴 수 있을지가 나르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나르 엄마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었는데, 그때는 하도 엄마가 법이고 엄마의 말 만이 진리이며, 엄마의 결정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당연하게 엄마의 짜증과 분노와 막말을 들었었다. 아빠는 엄마가 분노하며 소리 지르면 크흠 하고 방으로 들어가 자거나, 이어폰을 꽂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 독서를 하곤 했다.


이후에 모든 친척들은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둔 이유는, 어차피 바이올린으로 최고가 될 수 없다면 그냥 공부를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엄마가 생각했기 때문인 걸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내가 바이올린을 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금기어가 되었다.


가족들 중 오직 엄마만이 나의 예중 입시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희생해서 투자했는데 너가 그만둬 버리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바이올린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면 안 됐고, 내가 연주를 하면 엄마는 듣기 싫다고 짜증을 냈다.


물론 내가 나중에 공부를 잘하면서부터는 너는 바이올린 한 게 아깝지도 않냐며 가끔 연주하라는 말을 하곤 했다. 정말이지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바이올린 연주를 한 게 열 손가락에 꼽는다.


나중에 내가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나르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내 딸이 바이올린 레슨이나 하는 강사 나부랭이가 될 뻔했는데, 그걸 자기가 미리 구제해 준거라고 떠들어 댔다.


"얘는 어차피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았어.

딸, 너도 인정하지? 내가 그때 안 말렸으면 넌 분명 동네 레슨 강사나 됐을 거야."


학교 강사는커녕 과외 레슨을 하면서 푼 돈을 벌 수도 있었던 내 딸의 인생을, 자신이 미리 선경지명을 가지고 구제해 준 것처럼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저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힘들 던 시기의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고, 나와 레슨 강사라는 직업을 싸잡아 사람들 앞에서 깎아내리면서 본인이 대단하다고 주장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내 엄마는 왜 저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여태까지 나랑 언니에게 조언이랍시고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대표적인 것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자기가 빛나려는 사람만큼 추잡한 사람이 없어"였다. 역시 나르시시스트는 남을 비난 하는 말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결함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우리 엄마의 예시로 또 한 번 증명된다.


나를 예중에 보내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한 엄마는, 해지불가 능한 둘째 딸 상품에 투자한 원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한 물타기 계획을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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