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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Sep 29. 2023

붕어도 아닌데 엄마는 왜 자기가 한 말을 기억 못 할까

'기억 안 나'와 '내가 언제'로 모르쇠 시전하는 엄마

불리한 건 일단 기억이 안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


나는 태어난 지 30년이 되는 나이 때까지 고등학교 시절 엄마에게 들었던 수치스러운 막말들이 문득문득 생각났었다.


결혼 준비를 할 때 화장실에서 마스크 팩을 붙일 때에도 "너처럼 얼굴에만 신경 쓰고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몸 파는 여자가 되는 거야."라고 엄마가 말했던 게 생각났다.


교복을 입을 때나 택시를 보면, "아까 택시에서 너희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택시에서 내리는 걸 봤는데, 그 옆에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었는데 그거 너 아니니? 너 혹시 원조교제하고 다니니?"라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이후에도 위에 언급한 막말뿐만 아니라 엄마가 했던 수많은 폭언들이 떠올랐다.  책을 읽다가도 떠올랐고, 그냥 일상생활 중에서 문득문득 내가 들었던 말들이 생각나서 괴로웠다.


고등학교 때 저 말들을 들은 이후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가족이 모여 티비를 보는데 자녀에게 막말을 하는 부모 이야기가 나왔다. 난 엄마에게 "엄마는 그때 나한테 왜 얼굴에만 신경 쓰고 공부 안 하면 몸 파는 여자가 되는 거라고 했어? 왜 나한테 원조교제 하고 다니냐고 했었어?" 하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르 엄마는 당황하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니? 난 그런 말 한적 없다. 기억이 없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네가 키우기 쉬운 애는 아니었잖니, 너도 인정하지? 네가 문제 많은 학생이었던 거, 네가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안 하고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그런 말까지 했겠니."라고 말하며 내게 2차 모멸감과 빡침을 선사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듣던 당시 전교 50등 안에 드는 학생이었다.



나르시시스트 들은 감정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기 어렵다. 본인이 한 실수나 잘못을 떠올리면서 힘든 감정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자기 방어와 자기 합리화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는 자책감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슬프고 진심으로 엄마가 미웠다.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엄마와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은 게.

뭐 물론 엄마는 훨씬 이전부터 이상했지만 이때부터 나는 엄마와 점점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후 성인이 되고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내가 다시 너무 화가 나서 엄마에게 왜 그런 말들을 나한테 했냐고 물어보니,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본인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본인이 만약 그랬다면 그 당시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아빠랑 이혼을 했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니 네가 이해하라며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당시 그 말을 듣고서 어이없어하며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하라고 했다. 옆에서 언니도 내 편을 들며 (이때까지 새끼 나르는 그나마 정상이었다.) 나르 엄마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얘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두 딸이 사과를 요구하고 계속 기다리자, 나르 엄마는 갑자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엉엉엉' 하더니, 무릎을 꿇고 바닥에 한 팔을 팡팡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엉엉엉!!! 내가 이렇게 석고대죄를!!! 해야!!! 네가!!! 속이 풀리겠냐!!!!!!"  


바닥 팡팡  


"엉엉 내가 죽일 어미다!!! 내가 엉엉!!! 형편없는 엄마야!!!! 됐니? 미안하다!! 내가!!!! 엉엉엉!! 이렇게 해야 네가 날 용서하겠니!!!!!"


바닥 팡팡


엄마는 "내가 이렇게 사과하게 만들면 너가 속이 편해지겠니!!!?" 하며 울부짖었다.

그때 나르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인위적이고, 낯설었다. 나와 언니는 너무 당황해서 엄마에게 일어나라고 하며 그만 울라고 하며 엄마를 달래줬다. 엄마를 일으키면서 보니 눈 주위에 눈물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내가 다시 꺼낸 엄마의 과거 발언 때문에, 엄마가 부끄럽고 미안해서 우는 줄 알았다. 내가 놀라서 들고 간 크리넥스 한 장이 내 손에서 애처롭게 파닥파닥 거렸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위로를 받는 순간이었다.


나는 나르 엄마의 반응에 본능적으로 위협과 두려움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는데,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이후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느낀 그 감정이 수치심과 불쾌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르 엄마의 '엉엉엉 바닥 팡팡' 이후 난 엄마한테 고등학교 때 들었던 수치스러운 말들에 대해 절연 순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엉엉엉 바닥 팡팡' 행위가 의도치 않게 내 입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언니의 반응을 나르 엄마는 기가 막히게 파악했다. 본인이 수틀리면 빠져나갈 구멍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알아낸 것이다.


이후 나르 엄마는 자신이 불리할 때마다 이 작전을 사용하게 된다. 


'엉엉엉 바닥 팡팡'은 '엉엉엉 가슴 치기', '엉엉엉 바닥에 실례하기', '엉엉엉 뛰어내려 버릴 거야' 등으로 변형되었다.


이후 절연하기 몇 달 전 나르 엄마와 새끼 나르 언니와 다투던 중 내가 그들에게 들었던 폭언들을 다시 언급하며 사과를 요구하자, 새끼 나르는 비아냥 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과거에 매몰돼서 살면서 기억도 안나는 옛날 일로 엄마랑 나를 괴롭히니? 좀 발전 좀 해라, 과거 상처에 매달려 있지 말고'



악성 나르시시스트 들은 상대방을 자신에게 굴복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꾸준히 죄책감을 안겨준다. 그들은 강약약강을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외면적으로 보면 매우 사랑스럽고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성 나르시시스트 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죄책감을 안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엄마 언니와 절연을 선언하던 때 내 엄마와 언니가 악성 나르시시스트 들이라는 걸 몰랐지만,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한 지금은 두 사람이 악성 나르시시스트라고 강하게 믿는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자기가 한 일이나 말을 기억 못 하지? 하고 생각이 들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그때 엄마가 그랬잖아요"라든가 "그때 그런 말 했잖아요"라고 해도 엄마는 늘 "기억 안 나", "내가 언제?" 또는 "넌 왜 엄마를 나쁜 엄마로 몰아가니?"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엄마가 모르쇠를 시전 할 때마다 정말 내가 잘 못 기억하는 건가? 하고 생각한 적이 많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폭언 같은 건 내가 잘못 기억할 수가 없다. 자신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하는 엄마에게 나는 늘 말했다.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시는데, 그럼 제가 미쳤거나 엄마가 거짓말하는 거겠네요."



근데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나르 엄마는 이후 정말로 거짓말과 말 지어내기로 나를 더 독하게 괴롭혔다.


새끼 나르로 변해버린 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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