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나서 차별당한 게 아니었구나
이전 글 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내가 남편에게 나는 엄마한테 항상 "너는 너무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을 때 남편은 이상한 소리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진짜 예민한 사람한테는 '너 예민해'라고 안 하지. 그 사람 없는 자리에서 쟤 너무 예민하지 않냐고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말할 수는 있어도. 가뜩이나 예민한 사람이 그 말 듣고 예민하게 반응할 텐데, 예민한 사람한테 한 번도 아니고 예민하다고 반복해서 어떻게 말해?"
나는 평소에 이 말이 기억나면 피식피식 웃는다.
진짜 너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너는 너무 예민해!”라고 계속 말하는 사람은 제발 나랑 싸워죠!라고 싸움을 거는 거 아닌가 ㅋㅋ
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가 심리적으로 엄마나 언니보다 건강한 면이 많아서 엄마와 언니가 나에 대해 부당하게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지, 내가 무언가 부족해서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게 아니라는 것을 반복해서 각인시켜야 했다.
나는 늘 엄마와 언니가 나에 대해 비난하는 말들에 맞서 싸워왔고, 그로 인해 그들이 던지는 물건과 폭언을 추가적으로 받아야 했다.
나르시시스트는 모든 인간관계를 자신의 필요에 근거해서 맺어 나간다. 자녀들과도 자기중심적으로 자녀가 특정 역할을 맡게 하고 그에 상응하게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녀들의 역할은 크게 다음 유형이 존재한다.
스케이프고트 Scapegoat : 나르 부모의 비난과 학대를 받는 가족 내 펀칭백과 같은 자녀
골든 차일드 Golden Child : 나르 부모의 총애와 사랑과 관심과 특혜를 몰빵으로 받는 자녀
인비저블 차일드 Invisible Child 또는 로스트 차일드 Lost Child : 스케이프 고트도, 골든 차일드도 되지 못한 방치되는 자녀
트루스 텔러 Truth Teller : 나르 부모의 건강하지 않은 측면을 어릴 때부터 감지해서 나르 부모에게 거리를 두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녀
자녀들은 여러 개의 역할을 중복해서 맡기도 하고 성장 과정에서 역할이 바뀌기도 한다. 나도 여러 역할을 믹스해서 맡았었다. 나도 엄마 말에 순종했을 때는 골든 차일드였다. 그때 내 언니는 스케이프고트 역할을 맡았었다.
내가 엄마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거리를 두며, 엄마는 왜 그렇게 못 된 말을 해?라고 하면 공격을 받았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기 시작하자 나는 스케이프 고트가 되어 골든 차일드가 된 언니와 나르 엄마의 듀얼 학대를 받았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펀칭백 같은 스케이프고트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스케이프고팅한다는건 모든 잘못에 대한 탓을 돌리면서 그 대상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이 가진 결함을 마치 자녀가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나의 나르 엄마는 본인의 형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울대학교를 가지 못해서 자격지심을 늘 느꼈었다. 명절에 내 사촌 동생이나 오빠들이 좋은 성적을 받았다거나, 상을 받아 왔다는 말을 들으면 엄마는 늘 집에 와서 나를 비난했다.
"너가 공부를 잘했으면 나도 형제들 앞에서 자식 자랑도 하고 그랬을텐데.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공부도 못하고 성적이 이따위니?"
유전자는 자신이 줘 놓고, 넌 대체 누굴 닮았냐고 따지는 나르 부모에게는 어떤 변명을 하고 따져도 좋은 결말이 나지 않는다.
스케이프고트 자녀는 부모의 가스라이팅과 정신적, 신체적 학대의 대상이 되며 매일매일을 살얼음판 걷듯이 불안한 마음으로 나르 부모 눈치를 살피며 보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주관이 뚜렷했다.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고 하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하고, 엄마가 이상하면 엄마가 이상하고 불편하다고 했었다. 엄마는 나에게 버릇이 없고, 딸인 너가 어떻게 엄마한테 대들 수 있냐고 했다.
책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에 따르면, 스케이프고트 역할은 나르 부모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더 약하거나 만만해 보이는 자녀가 선택된다고 한다. 다른 형제들보다 더 온순하고 침착한 자녀는 나르의 공격에 반격하지 않기 때문에 펀칭백 용도로 활용하기 더 적절하다. 또 자녀가 선천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고 이타적인 성향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르부모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똑똑하고 남들이 인정하고 관심을 가지는 자녀도 스케이프고트가 될 수 있다. 특히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이 평소 저지르는 바보 같은 행동에 대해 자녀가 비판적으로 바라보거나 더 성숙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경우 자녀를 감정쓰레기 통으로 쓰기로 맘을 먹는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너는 부족한 아이다', '너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힘들다'라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인 언행으로 스케이프고트 자녀에게 주입시킨다. 다른 가족 구성원 들은 부모에게 복종하기 위해 이런 괴롭힘에 가담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스케이프고팅은 학교 일진의 학교폭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주 찌질하고 유치한 짓을 자녀에게 행하는 것이다.
내 남편과 시부모님은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고 나에게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일삼았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매우 놀라셨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하던 말이 엄마가 이상한 건 그렇다 쳐도, 너희 언니는 도대체 왜 그러니...? 너희 언니는 나이도 어린데 왜 너를 그렇게 괴롭히는 거야...? 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셨다.
나르 부모에게 자란 자녀들은 스케이프고트 형제가 불쌍하고 안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자신들이 부모의 스케이프고트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괴롭힘에 가담하고 펀칭백 역할을 하는 스케이프고트 형제가 힘들어해도 방관한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르 부모 편에 서서 나르 부모의 말에 복종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만약 스케이프고트 형제가 타고난 자질이 좋아서 자신보다 더 좋은 외모를 가지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까지 하면 질투의 감정이 더해져 오히려 나르 부모보다 앞장서서 스케이프고트 형제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 괴롭힘의 수위는 더 높아지기도 한다.
왜냐면 스케이프고트 형제가 질투가 나고 재수 없는데, 쟤를 괴롭혀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골든 차일드는 나르시시스트적 특성이 강하게 자리 잡아 스스로 나르시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 언니도 그래서 나르시시스트가 됐다.
타고난 기질이 출중해도 지속적으로 펀칭백이 된 스케이프고트 자녀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가장 가까워야 하는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비난을 받으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스케이프 고트 자녀들은 본인 역시 강한 나르시시스트적 특성을 형성하기도 한다고 한다. 진짜 나르시시스트 들은 악의 씨앗 같다.
만약 스케이프고트 자녀들이 부모가 나르여서 천대를 받은 거라고 인지하지 못하면, 스스로 결함이 있다고 믿게 되고, 이로 인해 본인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이후 전반적인 대인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스케이프고트 자녀는 성인이 되면 다시 건강하지 않은 관계들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와 유사한 나르시시스트를 연인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의 부모가 나르라고 판단이 되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아왔다면 반드시 이를 인지하고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은 깨달아야 한다.
만약 부모가 나르시시스트 라면, 여태까지 들어온 모든 말을 부정해야 한다.
"너는 너무 예민하다."
"너는 너무 게으르다."
"너는 끈기와 참을성이 부족하다."
"너는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안다."
"너는 고마워할 줄 모른다."
"나는 예민하지 않다."
"나는 게으르지 않다 나는 부지런하다."
"나는 끈기가 있고 참을성이 있다."
"나는 어른을 우습게 알지 않는다."
"나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다."
나르시시스트 들은 진짜 연을 끊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의 경우에는 언니와 동생 관계였지만, 아들 과 딸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남아 선호 사상 뒤에 숨어서 부모 자신이 나르시시즘을 숨기는 케이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가족들하고 거리를 두거나, 물리적으로 멀어지기에 아직 힘들다면 본인 스스로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스케이프고트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살피거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것이 악용될 수 있으나, 건강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는 자질이다. 나는 이런 나의 자질을 바탕으로 건강한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