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할 기회도 없었다
내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내가 예민한 아이라고 항상 가스라이팅을 했다.
딸,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
"넌 어릴 때부터 예민했어."
"넌 예민한 아이야"
이런 말을 듣고 자란 나는 학창 시절엔 친구들에게 나는 예민한 사람이야 아!!! 하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다.
내가 남편에게 어린 시절 이런 말을 들었었다고 하자 남편은 엥?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진짜 예민한 사람한테는 ‘넌 예민해’라고 여러 번 말 못 하지. 그 예민한 사람하고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끼리 뒤에서 ‘걔 좀 예민한 거 같아’라고 할 수는 있어도.”
남편의 말에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엄마가 평생 내게 했던 말들이 대부분 거짓된 가스라이팅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편의 이 말을 듣고 내 맘이 더 편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었다. 나는 엄마한테 피아노가 재미없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예민한 아이니까 오히려 세심한 악기인 바이올린을 집중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너는 예민하니까 피아노 말고 바이올린을 해야 해."
"엄마처럼 이렇게 악기도 시켜주고 하는 엄마는 많지 않아. 나는 딸들을 고급으로 키우는 거야."
"그렇지만 음악은 취미로 해야 해. 너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건 아니야. 알겠지? 공부 열심히 해서... 너는 좀 예민하니까 치과의사가 되면 좋겠다!"
예민한 것과 치과의사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나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기가 막히게 모든 것을 본인의 욕망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이런 말들이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믿었다.
좋은 유치원을 보내주고, 좋은 악기를 사주고, 최고의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고, 좋은 옷과 좋은 신발 좋은 모든 것을 내 자녀에게 줄 거야! 이렇게 말하며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그걸 해줄 재력과 능력이 있는 엄마를 다른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본다면 얼마나 좋은 부모라고 생각할까?
내 부모에 대한 주변 시선도 마찬 가지였고, 나는 친구 부모님들에 비해 자녀들에게 금전적으로 희생해 가며 모든 걸 "고급"으로 해주는 엄마가 정말 나를 위하는, 희생하는 헌신적인 엄마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이렇게 나와 언니의 사교육에 돈을 쓰는 엄마를 매우 못마땅해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너희 아빠는 너희 교육에 전혀 관심도 없고 딸들이 나중에 좋은 집에 시집가서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고 자녀의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진심으로 아빠는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우리에 대해 무관심하고 우리가 좋은 교육을 받는 것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는 그냥 "애들이 정말 원한다면 해줘라, 너무 많은 사교육은 시키지 마라"라는 말을 본인의 방식대로 표현했던 것 같다. 몇몇 학원과 과외는 오히려 아빠가 우리에게 권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뭐? 너 만큼 좋은 교육을 못 받고, 핍박만 받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자녀도 많아! 너는 그래도 뭘 받았으니 좋을 거 아냐? 나는 내 부모가 나한테 모든 걸 착취해 가기만 했다고!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부모가 나르라고 해도 받은 게 많으면 어쨌든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을 누군가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이걸 기억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를 하고 애정을 쏟는 것은, 반드시 그 투자와 애정에 비례하거나 그 이상의 아웃풋이 돌아와야 한다는 아래 공식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많은 경우 자녀들에게 정서적으로 냉담하고 동떨어져 있는 느낌으로 대한다. 어린 자녀는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차가운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외적 기술들을 연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외적 기술에는 외모를 잘 가꾸거나 운동이나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경우 자녀는 내적으로는 결핍되어 있고 외적으로는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는, 상반되는 두 상태가 공존하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다.
원은수,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토네이도, (2023), p166-167.
나는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했다. 과외를 받은 건 7살 때부터였다. 나는 내가 바이올린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았다. 내가 진심으로 바이올린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근데 엄마가 좋아하는 거였지, 사실 나는 바이올린 연주가 힘들었다. 나는 꾸준히 바이올린 과외를 받으며 선생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예중도 노려볼만하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내 나르 엄마의 눈이 반짝였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예중 준비를 하자고 엄마한테 말한 이후, 내 나르 엄마는 아래 말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돌려가며 말했다.
"너 예체능을 해도 되겠어?"
"내가 보기엔 너는 천재가 아닌 거 같아."
"네가 바이올린 하고 싶으면 응원할게, 선생님은 네가 예중도 갈 수 있다는데 나는 아닌 거 같다. 내가 소리를 들으면 니 연주는 너무 불안정해."
"엄마 아빠가 다 모르는 분야라 그쪽으로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너 예중 가고 싶니? 근데 예중 가면 경쟁이 치열한데 너처럼 심약한 애가 거기서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가봤자 용꼬리 역할을 할 건데, 너는 꼬리로 평생 살아도 좋니?"
"예체능을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너 그만큼 열심히 할 자신 있어?".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예체능을 하는 게 좋은지, 공부를 하는 게 좋은지 몰랐다. 그냥 바이올린이 하고 싶으면 바이올린을 했고, 공부를 잘해야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까 공부를 했다. 즐거워서 공부하는 과목도 있었고, 하기 싫지만 하는 과목도 있었다. 나도 내가 용 꼬리가 될지 뱀 머리가 될지 잘 몰랐다.
엄마는 어느 날부터는 내가 바이올린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너 바이올린 하는 거 어때? 엄마생각에 너는 바이올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태까지 한 게 있으니까 어쨌든 해외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겠지."
"너 공부하는 것보다 이게 나을 수도 있어. 너는 너희 언니만큼 공부 머리는 없어 보여."
"엄마 생각에는 너는 얼굴도 이쁘니까 바이올린을 하면 나중에 유명해지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어."
"나중에 너 시집갈 때 예체능 전공한걸 부자 집에서 선호할 수도 있어."
"너 일반 중이 가고 싶어 아니면 예중을 가고 싶어?"
"엄마 생각에는 너는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전공을 가져가는 게 나아."
한 번도 내가 바이올린을 할 때 행복한지, 평생 바이올린을 하면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와 같은 대화는 없었다. 늘 돈이 얼마나 들지, 커리어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부자 집에 나를 시집보내는데 유리할지, 내가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인지가 내 진로 관련 대화의 주제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이올린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이후 엄마에게 사실 어렸을 때 내가 하고 싶어서 바이올린을 한 게 아니었다고 하면 엄마는 눈을 치켜뜨고 비아냥 거리며 말했다.
"네가 나약해서 그만둬 놓고 누구 탔을 해? 시작도 네가 원해서 한 거고 그만둔 것도 네가 선택해 놓고 남 탓을 하니? 넌 아주 교만해. 너 바이올린 시키는데 든 돈이 얼만 줄 알아?"
나르 엄마는 내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불쑥 들어와 그렇게 소리를 내는 게 아니지 않냐고 충고를 늘어놨다. 나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연습하는 거라 내가 하는 방식이 맞다고 설명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 나르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너보다 내가 클래식은 더 많이 들었어 날 가르치려 들지 마"
"예중 준비 좀 한다고 건방 떨지 마, 너 버릇이 없어. 예중 들어가면 엄마를 아주 그냥 음악도 모르는 어미라고 무시하겠다?"
"너한테 내가 쏟아붓는 돈이 얼만데 내가 한마디 한다고 대들어?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애구나."
"선생 앞에서 나한테 그런 소리 하면 너 바이올린 부숴버릴 거야!"
"내가 엄만데 이런 말도 못 해!"
등등...
나는 그 당시 입시 스트레스와 연습 그리고 과도한 부담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고 매우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입학 실기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점점 받고 불안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 나였을 거다. 하지만 내 나르 엄마는 그 누구보다 본인이 더 불안해했고, 혹여나 자신이 투자한 것을 다시 돌려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내게 실기 전날 까지도 소리를 질러대며 난리를 쳤다. 나는 제발 오늘은 그러지 말라면서 울었다. 그 시기에 내가 터득한 한 가지 인생 꿀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눈이 부었을 때 빨리 부기 빼는 법이다.
'눈이 부어도 악보는 내 머리에 있고, 수백 번 연습한 곡들은 내 몸이 기억해. 퉁퉁 부은 내 눈은 연주에 지장은 없으니, 긴장하지 않으면 입학에 문제는 없을 거야.' 이 생각만 계속 되뇌며 나는 입시를 치렀고. 합격했다.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내 나르 엄마는 내가 예중에 입학한 사실을 알고 나서 온 동네방네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내 딸이 딱 감각이 있는걸 내가 알아차리고 5살 때부터 바이올린만 시켰잖아요."
"제가 손재주가 좋은데 아마 저를 닮은 것 같아요."
"나도 어렸을 때 지원만 받았으면 예체능 쪽으로 잘 됐을 텐데, 그래도 내가 좋은 엄마가 돼서 내 딸한테라도 해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지 뭐야."
"돈이 많이 들지만 어쩌겠어요, 아이의 꿈을 응원해 줘야죠" "전 예전부터 우리 둘째 딸이 특별한 사람이 될 거란걸 알았어요."
나르 엄마 자신이 내 능력을 의심했었던 사실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엄마는 내가 이제 세계 일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일만 남았다는 듯이 여기저기 꿈같은 소리를 떠들고 다녔다. 이때부터 나는 엄마의 최애 자녀로 격상되었다. 언니는 당시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 엄마가 창피하다고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었다. 나르 엄마의 자녀의 일탈을 처리하는 방식은 이랬다. 내 나르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침식탁과 저녁 잠자리까지 따라다니며 내게 끊임없이 압박을 주는 말들을 퍼부었다. "너희 언니는 그래도 이제 미국에 갔으니 정신 차릴 거야. 너는 엄마 실망시키지 말고 열심히 해. 니 선생님처럼 레슨이나 하는 인생 되기 싫으면 피가 나는 노력을 해."
"너한테 매년 들어가는 돈이 얼만지 알아? 힘들다고 하지 마, 징징 대지 마! 정신 차려! "
나는 불안과 긴장 때문에 점점 피폐해졌고, 하루하루 독해 지는 건 오히려 나르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