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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Sep 27. 2023

엄마의 거짓말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늘 진실을 왜곡했다

내가 엄마 언니와 연을 끊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나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다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내가 5살 때, 아빠가 유리장을 주먹으로 쳤던 기억이 난다. 그 유리장은 그 후 한쪽 문이 박살 난 채로 몇 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부모님의 싸움이다.  


엄마 아빠와는 5살 겨울부터 같이 살았다. 내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서울에 있고 나와 언니는 지방에 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돌봐 주셨다.


내가 3 때부터 5살 때까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나를 키워 주셨고 엄마 아빠는 주말에 가끔 내려와 우리랑 놀다가 올라갔었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결혼 전 절연하기 전까지 늘 반복해서 말했다. “너는 언니랑 다르게 매일매일 엄마를 찾으면서 너무 많이 울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셨었지. 그래서 일하느라 지친 엄마가 죄책감이 들게 했어.”

엄마는 늘 나에게 너는 아기 때부터 예민하고 많이 울어서 쉽지 않은 아이였다고 했다.  


아니, 그럼 그 어린애가 엄마 아빠랑 떨어져 있으면 울지 웃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헛소리다. 내가 어릴 때 육아하지 않은 게 미안하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이지 왜 내가 쉽지 않은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딸을 조부모에게 보내 놓고, 그 딸이 엄마를 찾으며 울어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고 말하다니. 정말 한심하다.

엄마의 책임 전가 발언을 듣던 그 당시에는 내가 어릴 때 그냥 모두를 힘들게 하는 예민한 애였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했다. 자녀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예의에 대해 모르고, 부모에게 대들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내가 엄마 아빠에게 유치원 때부터 존댓말을 해서 주변 사람들이 너무 예의가 바르다고 칭찬을 해주면, 엄마는 '오우 저희는 부부끼리도 존댓말을 해요'라고 꾸며낸 우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나하고 언니에게 내가 너희를 존댓말 하는 예의 있는 애들로 키워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걸 봤냐며 기뻐했다.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들 앞이거나, 집에서 서로 기분이 좋아 안 싸울 때는 가끔 서로 존댓말을 했다.  하지만 가끔 존댓말을 하는 부부도 미친 듯이 싸울 때만큼은 서로에 대한 존대 따위는 잊은 듯했다.  


엄마가 꾸며낸 우아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싸움의 원인이었다. 아빠는 너는 너무 가식적이어서 소름이 돋는다고 했고, 엄마는 너는 너무 이미지 생각도 안 하고 교양 없이 막 산다고 했다.  


엄마랑 아빠랑 다시 살게 되면서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부터 엄마 아빠의 싸움을 많이 목격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에도 엄마 아빠의 싸움은 지속되었다. 싸움의 이유는 대체로 의견 충돌이거나 돈 문제이거나 집안일 문제였던 것 같다. 사실 그냥 둘이 서로 대화만 해도 자주 다퉜다.


너의 말투가 맘에 안 든다, 니 눈빛이 기분 나쁘다 등등 이유도 다양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이유가 더 다양해졌다. 언니와 나의 교육문제, 생활비 공유 문제, 술을 마시고 들어왔기 때문에,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널 만나고 내 인생이 망가져서, 그냥 니 존재 자체가 싫어서 등등 서로 욕을 하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모님이 늘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즐거운 추억과 행복한 추억이 있는 가족이었다. 다만 그 비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행한 사건들로 몰빵 되었을 뿐.     


둘이 싸울 경우 아빠는 늘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침묵했다. 엄마는 방문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면서, 방을 향해 서서는 아빠가 들으라는 듯이 울부짖으면서 본인이 화난 이유와 아빠가 얼마나 나쁜 놈 인지에 대해 떠들어 댔다.


아빠가 반응이 없으면 엄마는 엉엉엉 우는 소리를 내며 아빠가 나올 때까지 혼자 말을 해 댔다. 엄마는 실제로 진짜 울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빠가 무슨 짓을 해도 나오지 않자, 엄마는 소리 지르는 것을 포기하고 방에서 숨죽이며 눈치를 보고 있던 나와 언니를 불러 우리에게 본인의 슬픔을 토해냈다. 엄마는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차분해진 목소리로 아빠가 본인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반복해서 우리에게 설명했다.  


"아빠랑 엄마랑 의견이 달라서 싸운 거야. 이렇게 싸우면 안 되는데 너희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해. 아빠가 엄마를 너무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해서 엄마가 너네 아빠한테 소리를 지른 거야."


엄마 아빠가 심하게 싸우는 날에는 서로 욕을 하기도 했다. 쌍욕과 서로에 대한 비아냥 섞인 폭언을 했다. 그러다 서로 감정이 더 격해지면, 서로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빠가 힘이 세니, 서로 때리다가 결국엔 엄마가 벽에 밀쳐지는 등의 모습으로 육탄전이 끝나곤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먼저 물건을 자주 던졌고, 아빠도 지지 않고 물건을 던졌다. 이렇게 싸우고 난 후면 아빠는 집을 나가서 늦게 들어왔고, 엄마는 울면서 우리에게 아까 아빠가 자신에게 얼마나 험한 말을 했는지 들었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엄마는 마음이 힘들 때면 늘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 아빠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나와 언니를 앉혀놓고 얘기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를 얼마나 시집살이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결혼할 때 엄마가 반지 하나 받지 못하고 본인 돈으로 반지를 샀다는 사실에 대해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나와 언니가 어떤 기분일지 엄마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그보다는 자신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고 자녀들에게 말하는 게 제일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엄마 아빠의 싸움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 부모님들은 신경 쓰는 척만 했지 사실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모은 돈으로 신혼집도 사고, 여태까지 너희를 키웠는데 아빠는 고마운 줄도 모른다고 했다. 너희 아빠네 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너희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얼마나 수준 낮은 사람들인지 아냐며 끊임없이 두 딸에게 떠들어댔다.     



"너희 아빠네 집안 때문에 내가 여태 너무 고생을 했어"

"너희 아빠가 지금 저 정도 직업을 가진 건 다 내 덕분이야"

"너희 아빠는 엄마를 존중하지 않아, 너희 아빠같이 끔찍한 사람은 또 없을 거야"

"그렇지만 너희는 너희 아빠니까 아빠한테 깎듯이 하고 아빠를 존경해야 해 알았지"

"엄마랑 아빠가 싸웠다는 거 다른 가족들한테 말하면 안 돼, 특히 외할머니는 걱정하시니까 말하지 마"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신이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고, 아빠는 엄마를 힘들게 한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딸에게 이야기한다. 어려서부터 일방적인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는 딸은 엄마는 고생만 한 힘든 사람이고 아빠는 나쁜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나르시시스트 들은 교묘하게 진실을 감춘다. 실제 있었던 일들과 사실들에 거짓과 나르시시스트의 과장된 생각이 더해져 진실은 왜곡된다.


엄마 버전의 스토리에서 악당은 항상 아빠였고 엄마는 피해자였다.


나는 엄마 아빠가 내가 고등학교 때 이혼하기 전까지 진심으로 아빠가 모든 걸 잘못했고, 엄마는 희생만 하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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