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아니라 나에게 애교 떨면서 효도하는 무언가가 필요한 거겠지
나는 어릴 때부터 역시~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해 딸이 최고야!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내가 엄마가 하는 말에 무언가 공감을 하거나, 부모님이 하는 말을 잘 듣고 부모를 챙기는 언행을 할 때 이런 말들을 했다.
전화 통화를 끊고 부모님이 전화가 와서요,라고 말을 하거나 주말에 부모님과 어디를 다녀왔다고 말을 한 경우에도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들들은 전화는 커녕 카톡도 별로 없다니까~ 역시 딸이 최고야!"
"나는 아들만 있어서 카톡도 단답인데 그 집은 딸이 둘이나 돼서 연락 자주 해서 좋겠다!"
"역시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 아빠랑 수다도 떨고 여행도 같이 다니네~!"
"이거 봐 딸이 있어야 해, 아들들은 결혼하면 남이라니까?"
라고 말하는 친척이나 엄마 주변 어른들을 만날 때면 나는 매우 불쾌했다.
사람들이 딸이 최고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딸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제일 짜증이 났다. 늘 딸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 뒤에는 그 딸이 무언가 어떤 행위를 하기 때문에 좋겠다는 조건이 따라붙었었다.
딸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나니까 그렇게 한 거다. 내가 딸이어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으니까 부모에게 카톡도 하고 전화도 하고 수다도 떨고 여행도 다니는 거다. 엄마가 늘 폭언과 폭력으로 날 힘들게 하고, 나를 비난하며 내 자존감을 깎아내려도 엄마에게 “효녀”처럼 잘했던건, 엄마가 나를 가스라이팅 하는 나르시시스트였기 때문이고.
자녀가 결혼을 하면 아들은 남이 돼서 너무 슬프고 딸은 역시 그래도 우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예전보단 많이 적어졌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어른들을 가끔 볼 때면 진짜 머리가 지끈 아프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여자는 남자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가? 딸들은 아들들보다 연락하는 걸 좋아하고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태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아들보다 더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위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매우 의문스럽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날 때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내가 살갑게 말을 하는지, 애교가 많은지, 부모님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지 그리고 효도를 할지 말지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향 + 내 선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딸이면 아들보다 애교가 많고 부모에게 관심이 많고 나중에 자신들을 더 살뜰히 챙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24년이 된 지금도 많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다. ㅋㅋㅋ 무슨 옛날 쌍팔년도에나 유행하던 "남자가 무슨 부엌일을 한다고!" 같은 개소리랑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이 낳아서 키우지도 않은 남의 집 딸이 갑자기 자기 아들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드디어 나도 수다 떨 사람이 생겼어!라고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며느리는 자기 아들보다 살갑고 자상하고 자기 말에 네~ 네~ 하면서 공손할 거라고 생각하는 시 부모님들이 있다.
그런 서비스를 원하면 말 잘 듣고 상냥한 서비스를 제공할 알바를 돈 주고 고용하는 게 어떨지?
왜 남의 집 딸이 자신들에게 상냥하게 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아들에게도 하기 힘든 말들을 왜 며느리한테 하는지 모르겠다ㅎ 어차피 다 아들 귀에 들어가거나 시부모가 자꾸 아들말고 자기에게 연락해서 빡친 며느리가 본인들 아들에게 한소리 할텐데ㅋ
연락 한번, 살가운 언행 한번 할 때마다, 돈을 준다면 그 금액을 들어보고 해 줄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이상한 사상은 요즘 살가운 사위, 장인 장모에게 잘하고 용돈 많이 주는 싹싹한 사위가 최고라는 사상으로 발전되어서 장서갈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살갑고 싹싹은 개뿔.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엄마 아빠가 우리 둘을 소개하면 딸이 있어서 부모님이 노후때 너무 좋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딸이 있는 게 노후랑 무슨 관련이 있지?
평생 본인 손으로 돈 한푼 안벌다가 자식들에게 용돈과 효도만 바라면서도 서운한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던 할머니를 30년 넘게 돌본 울 아빠는 자신이 나이들어 병이 심해지면 요양원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셨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의 기준과 기분에 따라 맞춰주기를 바란다. 나중에 자식들이 자신을 버리고 혼자가 될까봐 너무 두려운 나머지 나르시시스트 들은 이상한 생각을 하며 자녀들이 자신들에게 늘 상냥하고 살갑게 효도하고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우리 엄마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 나르 엄마는 너는 딸인데 왜 이렇게 무뚝뚝하냐고 나에게 다그친 적도 있고, 언니는 살갑고 엄마 생각을 늘 해서 연락도 자주 하는데 너는 왜 딸이 돼서는 연락도 자주 안 하냐고 이상하다고 한 적도 있다.
나는 매일 카톡을 했다. 나르 엄마가 매일 단톡방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내 나르 엄마는 내가 자신에게 매일 전화를 해주기를 바란거였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2주에 한번씩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차를 몰고 가던 때에도 내 나르 엄마는 자기는 회사다닐때 매주 부모님을 만나러 갔었는데, 매주 오지 않는 너는 불효녀라고 나를 비난했었다.
어쩌다가 내가 가겠다고 하다가 너무 몸이 힘들고 지치거나, 약속이 생겨서 내려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날에는, 나르 엄마는 내가 핸드폰 전원을 꺼야 할 정도로 연락을 해댔다. 내가 내려오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루저이고, 부모 알기를 개 똥으로 아는 애라며 나에게 악담를 퍼부었다.
나르 엄마는 늘 나에게 부모알기를 똥으로 안다고 하면서도 내가 용돈을 주거나 엄마가 아파서 병간호를 할 때는 역시 아들 보다는 딸이 최고라고 했다. ㅋㅋㅋㅋ
예전에 아들을 낳지 못해서 아빠는 물론 시댁에게 구박을 받았었다며 나보고 “너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 너가 아들이 아니라서 모든 가족이 실망했어” 라고 말하며 나를 힘들게 하던 나르 엄마.
아마 나르 엄마는 용돈 주고 병 간호 해주는 아들이 있었다면 다른 집 딸에게 뺏길까 봐 아들이 여자 친구가 생길 때마다 불안해서 부들부들했을 거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좀 많이 줄었으면 좋겠다. 내가 양가 부모님에게 안부를 묻고 선물을 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것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내가 딸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꼭 물질적인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딸이 하는 어떤 행위에 초점을 맞춰서 딸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게 딸들의 시간도 자신들의 시간처럼 생각한다.
아들하고 딸을 둔 부모들 중 어떤 일이 있을 때 딸이 아들보다 더 편하기 때문에 딸에게 전화해서 자신의 힘든 상황을 계속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부모들은 딸이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니까 편해서 더 의지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 딸의 의견도 좀 물어봐 가면서 그런 의지도 했으면 좋겠다.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다. 성별을 떠나서 부모 연락을 잘 받고 통화를 길게 하는 자녀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나르 엄마는 두 딸이 나중에 시집가도 친구를 잃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아들 가진 친구들이 부러워 해서 너무 좋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아니 왜 자식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친구는 무슨 친구야, 말 잘 듣고 애교 떨고 효도하는 무언가가 필요한 거겠지.
결혼 후에는 자신에게 자주 찾아오고 매달 50만 원 정도는 용돈을 줄 거냐고 당당하게 요구하던 나르 엄마랑 나는 손절했다. 넌 내 딸이니까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줄 거냐고 요구하는 엄마가 소름 끼치게 싫어서.
일단 나는 딸이기 때문에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해~!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글을 적었는데, 이래서 아들이 있어야 해~! 를 듣기 싫은 아들들의 입장도 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