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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ngerine Apr 25. 2024

시부모님을 집에 초대했다

3주 전 집들이를 했다.


이번 손님은 남편의 어머니 아버님인 나의 시부모님이셨다.

이전에 아빠가 다녀 가셨지만, 그때보다 몇 배는 더 깨끗하게 집을 치웠다.


10달 전.

전세로 얻은 나와 남편의 두 번째 신혼집은 암울 그 자체었다.

남편은 집의 더러움은 전혀 상관없다고 했지만, 나는 벽에 남아있는 누가 무엇으로 만들었을지 모를 손자국과 얼룩들 때문에 매일 밤 심란했다.


친환경 페인트를 사서 집의 모든 얼룩진 벽을 칠했다.

어깨가 아프고 몸살이 났지만 우리 집이 깨끗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안도했다.

거실 스위치 주변 손자국들이 사라지자, 남편은 확실히 페인트 칠을 한 게 훨씬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전문가 같다며 극찬을 했다.

아픈 날개 죽지가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사 두 달 뒤, 아빠가 집들이를 오셨다.

아빠는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며 내가 페인트 칠 한 것을 보고는 잘했다고 칭찬했다.

아빠는 남편에게 와이프에게 어디 페인트칠 알바라도 하게 일하러 나가라고 시키라고  말했다.

날개 뼈가 시큰했다.


남편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내가 아빠 눈에는 백수처럼 보였다 보다.

아빠 입장에서 딸을 칭찬하기 위한 최고의 유머였을 거야,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려고 해도 기분이 나빴다.


아빠와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집들이 선물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회사를 다닌 지 10주년이 될 때 휴가가 나올 경우, 비행기 값이 얼마가 되었든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아빠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아빠는 밥을 먹고 집에 도착해서 오늘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연락을 해 오셨다.

<좋은 저녁. 다음에 보자.>


 남편에게도 비슷한 카톡이 왔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남편 부모님께서 집들이를 오셨다.

어머니 아버님은 현관 앞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셨다.

밑에서 다른 사람이 올라올 때 같이 올라왔기 때문에, 현관에서 바로 초인종을 누르면 우리가 놀랄까 봐 배려하셨다고 한다.


두 분은 선물을 가져오셨다.

수저 세트와 와인이었다.

남편이 센스를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또다시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님과 식사를 하고, 후식을 먹었다.

어머니 아버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 헤어졌다.  

남편과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정리하고 나니, 아버님께서 연락을 해 오셨다.

아버님 연락을 받고 나는 놀랐다.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아서였다.

너무 고맙다, 매일 가고 싶다, 흐뭇하다와 같은 표현은 나의 부모님은 절대 나에게 하지 않은 표현이다.

(아,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내가 연을 끊기 전 우리 부부 동네로 이사와서 우리를 매일 같이 보고 싶다는 발언을 한 적은 있다.)


정말 고맙다는 표현도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한 적이 없다.


아버님의 카톡을 읽다가 남편에게 보여줬다.

"오빠, 아버님한테 연락 왔어. 이렇게"


남편은 아버님 카톡을  읽어 보더니, "응 집들이 음식이 괜찮았나 보다 다행이네."

라고 말하고 다시 하던 일을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집들이 선물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나는 부모님에게서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자상한 단어와 말들을 듣고 마음이 따듯해졌는데,

남편은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수롭지 않아 했다.


자상한 말을 하는 부모님을 둔 남편이 부럽다.

내 부모님들은 늘 두 딸에게 따듯한 진심을 말로, 글로 전하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나의 부모님은 자녀에게 고마운 일이 있을 경우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표현을 했고, 무언가 부탁한 것을 도와주었을 때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도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퉁명스러운 말투로 "고맙다."라고 했었다.

나의 나르 엄마는 내가 상을 받아 오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칭찬을 받았을 경우 혹은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거나 내가 돈을 줄 경우에만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아니면 나를 때린 다음날도 사랑해서 너를 때린 거야.라고 했었다.

 

아빠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직접 말한 적이 없다.

그럼 너는 부모님께 마음 표현을 많이 했니?라고 누군가 묻는 다면, 예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의 따듯한 표현에 냉랭하거나 읽씹으로 일관하는 부모에게도 나는 늘 사랑한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왜냐면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감사와 사랑 표현을 하지 않으면 예의 없는 것이라고 나르 엄마가 못마땅해하며 강요했기 때문이다 ㅋ.

물론 강요받을 때뿐만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서도 부모님에게 감사와 사랑의 표현을 자주 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했다.


따듯한 진심을 상대방에게 글자로, 말로 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집에서 자란 남편이기에 나에게 행복할때도 힘들때도 그토록 따듯하고 자상한 말을 많이 해주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현재 마음을 말과 글로 상대방에게 담백하게 잘 표현하는 가족을 나는 늘 원했다.

물론 나의 가족들도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표현했겠지만,

예를 들면 용돈을 더 준다거나 비행기 값을 대신 내준다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태어난 가족은 감정 표현에 서툴렀지만,

내가 선택한 가족은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한다.


남편을 통해 마음 표현을 잘하는 가족을 만난 것에 매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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