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ngerine Apr 09. 2024

엄마는 언니만 교정을 해줬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오늘 치과에 가서 교정기를 부착했다.

나도 이제 교정인이다.


대학생 때부터 앞니 하나가 계속 슬금슬금 앞으로 뻐드러져 나왔는데, 10년 뒤 결혼을 한 이후로 근 1년간 급격히 앞으로 돌진해 나와 보이기 시작했다. 귀여워 보인다고 애써 외면하고 그대로 두다가는 입 벌리고 웃는 것조차 신경 쓰일 판이라 교정을 결심했다. '그래도 결혼사진 찍을 때는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며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의사는 이전 방문에서 내가 찍었던 정밀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왜 앞니가 자꾸 튀어나오는 건가요?"

"사람들은 원래 성인이 되면서 이가 앞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혀를 입천장이 아니라 앞니에 대고 있을 경우에도 앞니가 튀어나오기도 하고요. 근데 환자분은 아랫니도 많이 틀어지셨는데 어렸을 때도 이가 튀어나오셨었나요?"

"그때는 그냥 가지런하지 않기만 했어요."

"부분 교정으로 진행하고 관리만 잘해주면 튀어나온 앞니가 들어갈 거예요."


 골프장에 도착해 스윙 연습을 하며 생각에 잠긴다. 엄마 생각이 나서 화가 치민다. 스윙에 힘이 실린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엄마에게 앞니가 튀어나온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마주 보고 식사를 하던 나르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쳐다보며 튀어나온 이를 보여달라고 했다. 내가 튀어나온 앞니를 보여주니 그녀는 왜 이렇게 앞니가 튀어나왔냐며 너 혹시 빨대로 음료를 많이 먹냐고 했다.


"요즘 아이스 음료 마시면서 빨대로 안 마시는 사람이 어딨 어요."

"그래? 빨대로 음료를 마셔서 그쪽만 힘을 주니까 튀어나오는 거 아니니?"

"아니면 젓가락을 너무 세게 씹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어릴 때 나는 교정을 안 했으니까 삐뚤던게 이제 튀어나오는 거죠."


"아냐, 너 어릴 때는 이가 가지런했어. 너 생활 습관 때문에 그래. “

“나 중학교 때부터 이가 고르지 않아서 교정해달라고 했었잖아요.”


“엄마는 어릴 때 혀로 계속 들어와 있는 이를 앞으로 밀었더니, 이가 조금 앞으로 나갔어. 너도 혀로 열심히 밀어봐 봐 안으로 들어가게."


그럼 언니도 혀로 이를 밀라고 하지 왜 언니만 두 번이나 교정을 해준 거야? 그게 엄마라는 사람이 할 변명이니?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어차피 엄마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댈 테니 더 묻지 않았다. 혀로 치아를 밀면 치아가 움직인다니... 엄마는 박사 수료를 할 만큼 공부를 했지만, 이상한 비과학적인 소리를 유독 나와 관련된 일들에 많이 적용시켰다.


취업한 후 앞니가 눈에 띄게 튀어나왔다. 이제는 살짝 고개를 들면 앞니가 튀어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르 엄마는 내 튀어나온 앞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다.


"너 이제 취업해서 돈 버니까 니 돈으로 교정해! 연봉도 높으니까 하면 되겠네! "


"그래야죠. 근데 어릴 때 언니는 교정해줘 놓고 왜 나는 안 해 줬어요? 내가 예전부터 치아가 틀어졌으니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때는... 엄마가 이혼해서 너희 둘 혼자 키우느라 돈이 없었어! 네가 이해해라."


"이혼 전부터 계속 나도 교정해달라고 했잖아요. 언니는 대학생 때도 엄마가 카드 주면서 생활비 필요하면 긁으라고 해서 그걸로 교정도 하고 그랬잖아요." 언니는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대학생 때인데도 재교정시켜줘 놓고 왜 나는 안 해줬어요? 가만 보면 엄마 진짜 언니랑 날 차별했어. 그렇죠?"


"무슨 소리야! 언니는 엄마 힘들까 봐 대학생 때 과외하면서 생활해서 안쓰러워서 엄마가 카드를 준거지! 너는 용돈 받으면서 대학 생활했잖아!"


나도 대학교 때 알바와 과외를 하며 부족한 용돈을 벌었다.


"그 용돈도 아빠가 줬지 엄마는 정기적으로 용돈 준 적 없잖아요. 언니가 받던 용돈의 절반이었어요.

내가 대학생 때 엄마한테 크라운 치료 해야 한다고 하니 돈 없으니까 아빠한테 받으라고 해서 겨우겨우 아빠한테 연락해서 부탁해서 치료할 때도 엄마는 언니한테 용돈필요하면 쓰라고 카드를 줬었죠. 이거 말고도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늘 아빠한테 받으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왜 인정을 안 해요?"


"시끄러워! 뭘 자꾸 해준 게 없다는 거야 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너 고마운 줄을 모르는구나! “


나르 엄마는 내가 교정 얘기를 할 때면 자신은 나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소리 질렀다. 나에게 있어서 교정은 엄마와 아빠가 언니에게만 준 특혜이다. 두 번이나.


지금 와서 교정이야 그냥 내 돈으로 하면 될 일이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은 기분이 나쁘고 슬펐다.


언니에 비하면 너는 치아가 가지런한 편이야!

언니에 비하면 너는 예쁜 편이라 피부과 안 가도 돼!

언니는 몸이 약해서 빈혈이 심하니까 보약을 먹는 거지, 넌 건강하잖아!


언니에게는 용돈으로 쓰라며 카드를 줘놓고, 두 딸을 케어하기에는 힘들다며 나에게 크라운 치료비는 아빠에게 말하라며 도끼눈을 뜨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오늘은 털어 버리려 한다.  


누가 봐도 차별인데 자꾸 차별이 아니라며 언니에게 잘해주는 걸 질투하면 못쓴다고 가스라이팅 하던 엄마.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 못난 엄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차별을 당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더 이상 서운해하지 않으려 한다.


한 번도 나르엄마에게 사과받지 못했고, 이제는 연을 끊어서 사과를 받을 일도 없지만, 나르 엄마가 행하던 차별을 떠올리면 고개를 들던 서럽고 섭섭한 감정을 오늘 나는 떨쳐버린다.


그나저나 앞으로 햄버거는 나이프로 잘라먹어야 한다. 그래도 드디어 교정해서 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르시시스트 엄마로부터 진정 자유해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