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랜드 (2016)

영화가 삶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

by 찰쓰

*<라라 랜드>의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꿈은 충치야. 품고 있어도 아프고, 빼버리기도 아파"

MBC 드라마 <메리대구 공방전> 황메리의 대사. 한창 드라마가 방송되던 2007년은 TV 덕후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드라마 풍년이었다. <하얀 거탑> <개와 늑대의 시간> <태왕사신기> <케세라세라> <외과의사 봉달희> <고맙습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 <히트><마왕> <얼렁뚱땅 흥신소> 등 웰메이드 드라마가 쏟아졌고, 스물셋 먹고 대학생이던 나는 디씨 드갤을 들락거리며 거의 모든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이렇듯 잉여력이 충만한 시절이었지만, 꿈, 미래, 취업 같은 단어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슬슬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신문방송학 복수전공과 대학생 기자 활동을 시작하며 나름대로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벌일 때였다. 취업난에 대한 도시전설과 <88만원 세대>가 촉발한 20대에 대한 담론들에 둘러싸여 먹고사니즘에 골몰했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찾겠다며 자기계발서를 뒤적이다 자학만 늘어갔다. 당시의 싸이월드 일기장을 보면 온통 꿈은 멀고 마음은 붐빈다느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어쩌고-하는 푸념들이 가득한데, 막상 그래서 꿈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적혀있질 않다.


뭐 대단한 포부나 신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밥벌이에서 어느 정도 낭만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길 꿈꿨고 존경받을 수 있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 정도를 바랐으니. 때때로 '원하는 것은 비슷하게나마 이뤄왔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처음부터 이룰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욕망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고민의 깊이가 얕거나 불안의 정도가 덜한 건 아니었다. 거창한 꿈은 아닐지언정, 소박한 소망을 나 역시 충분히 아프게 품었었다. 평범함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이지 않은가.


영화 <라라 랜드>는 꿈과 사랑의 관계를 그리며 욕망조차 계산적이었던 그 무렵을 새삼 복기시켰다. 두려움과 간절함, 후회와 미련, 위로와 체념. 그 모든 순간들이 은막 위의 아름다운 로맨스와 고스란히 포개졌다. 꿈을 확신하던 남자가 여자를 위한다는 구실로 원치 않는 무대로 향할 때. 그리고 계속된 실패에 상처받은 여자가 자신의 재능을 믿을 수 없게 됐을 때. 나는 지난 나의 갈등과 실패를 떠올리며 그들과 함께 울었다. 당시의 불안과 헛헛함조차 향수로 다가왔다. 남자의 말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었을' 생략된 5년의 시간을 나의 삶에 비추어 짐작해보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라라 랜드>의 답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꿈과 사랑을 통해서- 꿈은 선명한 이정표가 되고 사랑은 든든한 동력이 된다. 쓸쓸한 낮의 천문대는 로맨스와 함께 황홀한 야경이 되고, 시끄러운 경적 소리조차 사랑의 속삭임이 된다. 영화 속 남녀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스스로를 믿고 지킬 용기를 얻는다. 현실에 타협했던 남자는 꿈꾸던 무대를 일구어내고, 자신을 못 믿던 여자는 진솔한 고백으로 마침내 스스로를 증명한다. 삐걱이는 현실의 부표 위지만 마법 같은 순간들은 기어코 찾아온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남자의 마지막 연주가 끝난 후. 서로를 향한 남녀의 미소마저 달콤 쌉싸름한 우리네 삶을 닮았다. 모든 순간들이 동화이길 바라지만 예고 없이 끼어드는 현실 위에서 살아간다. 그 여정의 어떤 순간들이 때론 간절함을, 후회를, 미련을 배반하더라도 상관없다. 익숙한 음악과 함께 이따금 떠올릴 수 있는 동화가, 되새길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곡성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