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너의 하람(1)
그 애와 함께 먹을 음식을 고르기 전엔 언제나 신중해야 했다. 나는 그 사실이 번거롭기도 못 견디게 재미있기도 했다. 그 애는 한국을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했다. 자기 나라의 문화나 종교 역시 그리워하기도 경멸하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이일수록 단순한 직선의 맛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리면 어릴수록 그냥 달고 그냥 짠맛이면 충분한 혀를 가졌다고 했다. 보고 들으며 살아가는 일은 식사를 맞닥뜨리고 먹고 느끼는 행위와 너무 많이 닮았다. 씁쓸한 고소함이나 아찔한 신맛 같은 걸 좋은 기억으로 덮으려면 태어난 곳으로부터 얼마나 먼 시간을 건너와야 할까? 최소 몇 번의 고뇌와 울음을 깔고 앉아야만 트이는 감각일까?
그 애가 태어난 나라에 법으로 정해진 국교는 없으나 거의 모든 국민이 실질적으로 이슬람 신자라 했다. 모든 국경이 내륙에 접하여 밥 먹듯 고기를 먹고 사막의 갈증이 키운 과실의 당도가 높다고 했다. 신화 속 장면처럼 주렁주렁 늘어져 빛나는 포도넝쿨 터널 대문의 고향 집을 설명할 때면 그 얼굴에서 달콤한 향수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 애가 태어나 처음 만난 연인이자 여자였다.
이슬람 율법은 그들의 백성이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정확히 나누어 놓았다. 허용된 지점을 할랄, 금지된 지점을 하람으로 분류한다. 해당 규칙을 적용하자면 이방인인 그의 존재 자체 역시 자칫하면 한국 사회 속 하람처럼 보였다. 그 애는 나를 통해 서툰 맞춤법을 다듬고, 낯선 식자재의 근원을 파악하고, 자신의 무해를 증명하고자 했다. 한국은 다른 많은 나라들에 비해 대체로 앞섰지만 단일민족의 역사가 너무 길었다. 애석하게도 금발의 파란 눈의 코카시안이 아니어서 젊은 이슬람 남자애는 가끔 울었다.
H는 한국에서 생애 첫 바다를 만났다. 그제까지 봐 온 가장 크고 넓은 물은 호수가 다였던 H에게 바다 비린내가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바다에서 온 거의 모든 것을 먹지만 H의 고향에서는 정확히 반대였다. 생선 살코기만 조금 먹을 수 있고 그나마도 거의 안 먹는다. 걔는 문어의 쫄깃함이나 멍게의 바닷내를 모르고 자랐다. 걔네 고향 사람들이 발굽 동물을 원초적으로 도축하는 장면과 한국인이 해삼, 멍게,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를 펼쳐놓고 한 점씩 음미하는 장면 중 어느 쪽이 더 ‘혐오스러운’ 지? 내가 보기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알라도 하기 힘들 거다. 미지는 우리에게 공포와 배척을 가르친다.
그래서 정석적으로는 대부분의 해산물이 ‘하람’에 들었다. 다행히 H는 21세기 사람이라 적당한 하람을 취하며 다만 꼬박꼬박 사죄 기도로써 상쇄했다. 꼭 부모에 변명하는 어린아이처럼. 그 정도 정성이면 알라도 솔직히 봐 줘야 했다. 그도 그럴 게 이슬람법이 쓰인 시기는 너무 먼 옛날이지 않나. 그땐 비행기도 없었고 한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도 솔직히 몰랐잖아요, 맞잖아요. 이렇게 반성한다잖아요… 돼지고기는 확실히 안 먹으니까 좀 봐줘요, 네? 나는 아래는 청바지에 머리통에만 골무 같은 모자를 쓰고 방구석을 향해 절하는 그 애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며 낄낄댔다. 그리고 햄 대신 할랄 계란과 실제 게살은 들어가지도 않은 맛살을 넣고 김밥을 말아 그 애의 입에 넣어 주었다.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