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 - 타인과 나를 통과하는 일
EBS Island
사랑하는 일.
기꺼워지고 우스워지며 다만, 해당 현상에 두려움이나 초라함 대신 초연해지는 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순간 일어나는데 사건의 전과 후에 예선전 대기자와 세계대회 챔피언 사이만큼의 간극이 이미 벌어져 있다. 사람의 일이다. 사람은 너무 자주 기꺼이 번거로워진다.
약속의 말들. 지극히 사람스러운 일.
말로 가치를 짓고 그걸 나누면 약속이 된다. 그와 나는 자꾸 약속을 했다.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쉬이 미워지는 거리, 큰 결심 없이 쭉 결속되기 힘든 사이를 정성 다 해 이었다. 암벽에 박힌 길잡이 로프와 같이 유약해 보이는 줄이어도 잡아 보면 질겼다.
적당히 길이 잘 든 낡은 세단에서 보내는 편도 5시간씩 말수 없는 난 종종 라디오와 대화했다. 내 답을 듣지 못하는 상대와의 소모 없는 대화라 괜찮았다. 주파수의 정직함은 좋았다. 위치 기준으로 가차 없이 끊기고 이어지는 신호는 지금 지나는 장소를 기복 없이 알려주었다.
생존과 직결되지 않은 장거리 이동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동물은 사람 말고 아마 없을 것 같았다.
재미로 번거로워지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가치를 믿는 바람에 자꾸만 바퀴 달린 철제 캡슐을 타고 먼 거리를 오가는.
관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시차가 좁혀지는 중이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넘는 내 지직거리던 104.5 MHz가 버벅대며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어김없이 차는 다리를 넘었다. 그 길이 내게 더 이상 초행길이 아니게 될 즈음부터 EBS 라디오는 이 섬의 목소리가 되었다. 대화가 아닌 대화가 목소리 없는 섬의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 때마다 내 몸이 도착한 여기를 알았다.
차창을 뚫고 넘어온 햇살에 맞아 피부는 아직 여름처럼 뜨거웠다. 눈에 비치는 하늘만 조금 앞서 가을이었다. 몸의 감각들 사이 시차 또한 곧 맞춰질 거였다.
사랑은 이해와 회복 사이에서 흔들린다.
멀수록 선명하게. 가까울수록 어렵게.